크루그먼 "신흥시장 금리 내려도 효과 못보는 '유동성 함정'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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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그먼 "신흥시장 금리 내려도 효과 못보는 '유동성 함정' 확산"
  • 이정숙 기자
  • 승인 2020.05.1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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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시장에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 확산되고 있다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CUNY) 교수가 경고했다. 

폴 크루그먼 교수. 사진=CUNY
폴 크루그먼 교수. 사진=CUNY


16일 미국 경제매체 야후 파이낸스에 따르면 크루그먼은 지난 8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 전화 인터뷰에서 라틴 아메리카 주요 경제국들이 2개월째 수십년 만에 가장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금리인하가 시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유동성 함정이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페루, 칠레는 이미 기준금리를 제로금리 수준으로 낮췄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해 새로운 정책대응을 고심하고 있고, 브라질과 콜롬비아 역시 조만간 같은 처지가 될 전망이다.

유동성 함정이란 금리가 제로 수준에 가까워지면서 통화정책이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 경제학 용어이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즈의 추종자인 존 힉스(John Hicks)가 이 이론을 만들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금리가 0%보다 훨씬 높은 수준 유지한 2차 대전 이후 이 문제를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크루그먼은 1990년 일본이 거의 제로금리 수준에도 경제를 되살리지 못하는지에 대한 책을 쓴 이후 유동성 함정을 경제학의 주류로 만드는데 일조한 인물이다.

미국과 유로지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리를 거의 제로 수준으로 인하했지만 신흥시장에서 이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는 예상되지 않았다. 

크루그먼은 유동성 함정 문제가 이제 신흥시장 일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8일 전화 인터뷰에서 "개발도상국에서 유동성 함정이 나타날 수 없다는 어떤 논리도 없다"고 지적했다.

페루 중앙은행은 코로나19에 대응해 수요를 지속하기 위한 여러 종류의 통화정책을 활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고, 칠레 중앙은행은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이 같은 종류의 대응은 정책금리를 낮추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덜한 경기부양책이다.

많은 신흥시장 국가들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도 낮고, 달러 표시 채무 수준도 높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난관에 봉착해 있다. 이는 전통적인 신흥시장 위기, 즉 통화 매도세가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부르거나 외채를 상환하기 어렵게 되는 채무위기를 부르는 상황에 덜 취약하게 만들어주고는 있지만 이들 신흥시장을 완전히 새로운 어려움으로 빠뜨리고 있다.

크루그먼은 "터키나 아르헨티나의 경우 자본유입 감소에 따른 전형적인 신흥시장 위기를 겪고 있다"면서 "그러나 전세계의 많은 신흥시장은 이 문제에서는 큰 진전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12년 전 세계금융위기 중에 브라질, 콜롬비아, 칠레, 페루 중앙은행은 금리를 각각 5%포인트 또는 그 이상 낮춰 대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닥쳤을 때 이들 4개국 금리는 모두 5% 미만이었다. 현재 금리 수준은 0.25%인 페루를 비롯해 가장 높은 콜롬비아도 3.25%에 불과하다. 파라과이, 과테말라 같은 더 작은 나라들은 아예 제로금리에 가깝다.

아시아와 동유럽 일부 신흥시장들도 이 수준이다.

주요국 기준금리 수준. 미국은 연방기금 목표 금리 상단. 사진=블룸버그
주요국 기준금리 수준. 미국은 연방기금 목표 금리 상단. 사진=블룸버그


브라질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더 낮출 경우 금융시장 불안을 부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브라질의 기준금리는 연 3%다.

크루그먼은 부채가 적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로 여겨져온 칠레가 브라질보다는 운신의 폭이 훨씬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시장 불안 가능성은 미국, 영국, 일본 등과 대조적이다. 이들 중앙은행은 시장에 막대한 돈을 풀어도 금융시장 불안으로 연결되지 않지만 신흥시장들은 금융시장 불안 우려로 재정지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크루그먼은 "신흥시장들이 현재 어떤 제약조건에 놓여 있는지에 관계없이 정책 담당자들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숙 기자 kontra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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