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업체인 SK이노베이션이 니켈 함량을 90% 이상으로 높인 'NCM(니켈·코발트·망간)9½½'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다. 니켈 비중이 90%에 이르는 고밀도 배터리를 상용화하는 것은 SK이노베이션이 처음이다. 이 배터리가 탑재되면 전기차 주행거리가 700㎞까지 늘고 충전 시간도 대폭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업체 포드는 오는 2023년 출시 예정인 전기 픽업트럭 F-150에 SK이노베이션의 'NCM9½½'구반반 배터리를 탑재한다.포드 F-150은 미국에서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잘 팔리는 픽업트럭이다. 지난해에는 90만 대에 이르는 판매 실적을 올릴 만큼 인기 모델로 자리 잡았다.
미국 워싱턴DC를 비롯해 15개 주가 2050년까지 내연트럭을 전기트럭으로 전면 교체할 예정이어서 SK이노베이션의 수주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NCM9½½'배터리는 NCM 양극재를 적용한 배터리로 코발트 사용량을 5%로 줄여 제조단가를 낮추고, 니켈 비중을 90% 이상 높여 주행거리를 끌어올린 배터리다.
코발트는 구리와 니켈광산에서 부산물로 얻는 금속으로 '하얀석유'라고 부른다. 희소성이 높아 값이 비싸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지난 7일 1t에 3만3100달러에 거래됐다.
여기에 세계 코발트 물량의 60% 이상을 생산하는 콩고민주공화국(DRC)이 올해 초부터 코발트 시장에 대한 국가 독점을 강화하면서 공급난이 심하다. 또 코발트 광산에서 아동 노동 착취가 자주 발생하면서 코발트가 ‘분쟁 광물’로 지정돼 국제 거래에서 제한을 받는 점도 공급난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전 세계 배터리 업체들은 에너지 밀도 향상을 위해 니켈 비중을 높이는 것을 최대 과제로 삼고 있다.
LG화학은 올해부터 미국 GM 전기차 볼트EV에 니켈 비중을 70%로 높이고 코발트 비중을 10%로 내린 ‘NCM712’ 배터리를 적용하고, 2022년형 볼트EV부터 얼티움을 탑재할 계획이다. 얼티움은 니켈 비중을 85~90%까지 높이고 코발트 비중을 10% 미만으로 낮추는 대신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알루미늄을 추가한 배터리다.
그러나 니켈 비중이 높아지면 배터리 안정성이 훼손되는 단점이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독자 분리막 기술로 니켈 함량을 높이면서 안정성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SK이노베이션은 포드의 신차 출시 일정에 맞춰 NCM 배터리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에 하이니켈 NCM 배터리 전용 생산시설을 짓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자회사 SK배터리아메리카(SKBA)가 총 25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조지아주에 21.5GWh 규모의 배터리 1, 2공장을 짓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와 관련해 “미국 전기차 배터리 공장은 일자리 6000여 개를 만드는 최대 5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미국 공장은 지난달 착공했다. 이 가운데 2공장은 포드 전기차 20만 대 분량의 NCM 배터리를 생산한다. 1공장의 경우 폭스바겐 전기차 20만 대에 들어갈 NCM811(니켈 80%, 코발트 10%, 망간 10%) 제품이 생산된다.
SK이노베이션은 1·2공장 건설이 모두 완료되는 2023년이면 미국에서 총 21.5GWh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되고, 글로벌 생산 규모는 71GWh까지 늘어난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수주 실적은 500GWh에 이른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1, 2공장이 가동하는 2023년부터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 기반 확보와 함께 추가 수주도 기대했다.
SK이노베이션은 NCM구반반 양산을 위해 국내 최대 양극재 업체로부터 양극활 물질을 공급받는다. 에코프로비엠 포항 캠5(CAM5) 공장에서 하이니켈 NCM 양극재를 독점 공급받고 있다. 엘앤에프로부터는 하이니켈 양극재를 공급받는다.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 양극재를 섞어 니켈 비중이 90%가 넘는 양극재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박준환 기자 naulboo@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