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격 인상 전에 국민 납득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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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격 인상 전에 국민 납득시켜야
  • 박준환 기자
  • 승인 2020.10.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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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에 대한 말이 많다. 정부는 말로는 주택시장을 안정화하겠다고 떠들면서도 정작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지않고 세금만 왕창 거두는 사실상 '증세'에 나섰다는 혐의가 짙다는 것이다. 정부가 해온 것을 보면 이런 말을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서울의 초고층 아파트 전경. 사진=픽사베이
서울의 초고층 아파트 전경. 사진=픽사베이

정부와 여당은 2030년을 목표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시가격을 시가의 90%로 올리는 방안27일 내놨다. 현재 부동산 공시가격은 시세의 50~70% 수준이다. 올해 1월 기준으로 시세의 얼마인지를 나타내는 비율인 현실화율은 토지가 65.5%, 공동주택 69.0%, 단독주택 53.6% 등으로 시세에 크게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유형 간 격차도 커 형평성 논란도 많았다.

국토부 산하기관인 국토연구원은 현실화율 도달 목표를 80%, 90%, 100% 등 3개 안으로 제시했다. 연구원은 또 단독주택과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현실화율을 높이기 위해  서로 다른 3가지 방안도  제시했다. 모든 주택의 현실화율을 동일한 기간에 달성하게 하는 방안, 기간은 다르게 하되 같은 폭으로 오르게 하는 방안, 9억 원을 기준으로 나눠 가격대별로 다른 속도로 현실화율을 올리는 방안 등이다.

현실화율 80%를 적용하는 1안은 1~5년 안에 현실화율을 연 7~12%포인트씩 상향하는 방식이다. 공동주택은 5년, 단독주택 10년, 토지 5년 동안 단계별로 한다.

금액대별로는 공동주택을 기준으로 ‘15억 원 이상’은 내년부터 현실화율 목표 달성이 가능하며, ‘9억~15억 원’은 2022년, ‘9억 원 미만’은 2025년에 현실화 목표에 도달한다. 단독주택은 표준(단독)주택 기준 각각 2027년, 2029년, 2030년에, 토지(표준지 기준)는 2025년께 현실화율 목표 달성이 가능할 전망이다.

두 번째 안은 중기 방안으로 5~10년 동안 현실화율을 90%로 올리는 방식으로 유력하다고 한다. 연 3% 포인트씩 높이는데, 유형별로는 공동주택이 10년, 단독주택이 15년, 토지가 8년 등이 걸린다.  금액대별로는 공동주택 기준 ‘15억 원 이상’이 2025년에 현실화율 90%에 도달한다. ‘9억~15억 원’은 2027년, ‘9억 미만’은 2030년에 90%대에 도달한다. 단독주택은 금액대별로 각각 2027년, 2030년, 2035년 순이다. 표준지는 2028년쯤 목표 현실화율에 도달한다.

장기 방안인 ‘현실화율 100%’ 안은 9~15년 동안  현실화율을 해마다 2.5~2.7% 포인트씩 높이는 계획이다. 유형별로는 공동주택이 15년, 단독주택이 20년, 토지가 12년 등 걸린다.  금액대별로는 공동주택 기준으로 ‘15억 원 이상’이 2029년에, ‘9억~15억 원’이 2032년에, ‘9억 원 미만’이 2035년에 각각 목표 현실화율에 도달한다. 단독주택은 금액 구간대별로 각각 2033년, 2035년, 2040년에 목표 현실화율을 달성한다. 토지는 2032년에 현실화율에 도달한다.

공시가격은 부동산 보유세와 각종 부담금, 복지수급 등 60여 가지 행정제도의 기준인데도 신뢰성을 의심받았다. 시세보다 턱없이 낮게 책정됐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렇기에 이를 현실화한다는 데 반대할 명분은 별로 없어 보인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는 집권초부터 추진해온 만큼 새로운 일도 아니다. 이미 예고된 일이다.

결정은 국토부가 한다. 국토부가 어느 방안을 낙점할지 몰라도 현실화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대목이 문제다. 정부가 공시가격을 정하면 국민 부담이 높아지는데 부담을 지는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취득세 등 각종 세금의 산정 기준이 되는 것은 물론 지역 건강보험료와 기초연금대상자 등 60여 가지 행정 업무의 기준이 된다.

예를 들면 공시가격이 오르면 건강보험료가 급등한다. 일자리를 잃어 소득이 없는데도 집을 보유하고 그 공시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건강보험료를 더 많이 내야 하는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는데 그 정도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공시가격을 한꺼번에 대폭 조정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국민 피해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사정이 이렇고, 부동산 공급억제 등 부동산 정책 실패, 저금리정책 지속 등으로 부동산 가격을 올려놓고 공시가격을 현실화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더 큰 문제는 공시가격 조정으로 사실상 세금이 오르는데도 국회의 심의를 전혀 거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헌법에 조세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법에 근거에 없으면 과세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공시가격 조정은 국회의 법률 심의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정부가 일방으로 정해 버린다. 이는 헌법에 어긋난다.

세금을 조정하려면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 심의를 거쳐야함은 굳이 말이 필요없다. 정부는 국회 심의나 국민 합의를 피하면서도 세금을 더 걷기 위해  공시가격 조정이라는 편법을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세금폭탄을 터뜨리는 이 같은 행위는 헌법이 정한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난다.

현실화율 숫자보다 공시가격 산출 근거 공개와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 현행 부동산공시법에 따르면 공시가격을 적정 가격으로 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적정 가격이란 시장에서 정상 거래가 이뤄지는 경우 성립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인정되는 가격이다. 아주 애매모호한 규정이다. 무엇이 적정 가격이란 말인가?

가격을 객관적으로 산정할 방안 마련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다. 정부는 2005년 공시가격 도입이후 가격의 산정 방식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산출 근거에 대한 자료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통치하며 국민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아래것, '졸'이라는 권위주의 시대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과세형평과 부동산 투기억제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좋은 의도에서 나온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부담을 져야 하는 국민이 고개를 끄득이고 납득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돈을 퍼주는 표퓰리즘 정책으로 곳간을 비운다는비판을 받는 정부 아닌가. 겉으로는 집값을 잡는다면서도 사실은 잡지 않은 채 세금만 올리려는 꼼수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금을 더 걷기 위한 행정편의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박준환 기자 naulb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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