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행궁에서 400년을 반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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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행궁에서 400년을 반추하다.
  • 박준환 기자
  • 승인 2020.12.13 2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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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남한산성을 찾았습니다. 가까이 있는 곳이면서도 좀체 가기 어려운 곳입니다. 산성까지는 가지 않고 산성초입에 있는 행궁을 다녀왔습니다. 집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가면서 저 옛날 우리 조상들이 걸어다녔을 먼 거리, 살을 에는 추위 등을 상상했습니다.

더욱이 남한산성은 작가 김훈이 소설을 썼고 영화로 만들어져 제게는 의미가 컸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에 그 산에 무거운 바윗돌로 성을 쌓은 우리 조상들의 의지와 고초를 생각했습니다.

남한산성은 반정으로 집권한 인조가 쌓았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은 둘레 12.4km에 이르고 면적은 2.15제곱킬로미터인 산성입니다.남한산성의 본성은 신라 주장성 옛터를 기초로 인조2년인 1624연에서 인조4년 1626년까지 축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남한산성 행궁은 축성과 함께 인조 3년인 1625년 상궐과 하궐이 건립됐다고 합니다. 행궁이란 왕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거쳐하는 곳을 말합니다. 조선시대 행궁은 20여개로 능행, 전란,휴양 등을 목적으로 건립됐다고 합니다.

남한산성 행궁은 외행전과 임금의 침전인 내행전, 상궐과 하궐,재덕당, 좌승당,이원정,관료의 방인 일장각 등의 건물로 구성돼 있습니다. 가보면 아시겠지만 크지 않습니다. 내행전도 온돌방과 마루로 돼 있습니다. 임금이야 온돌에 자겠지만 그를 수행하는 관료와 내시들은 추운 밤에 찬 마루에서 온몸이 얼어붙은 채로 서 있었을 것으로 상상해봤습니다.

인조는 인조14년인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남한산성으로 피난해 47일간 항전했습니다. 작가 김훈이 쓴 '남한산성'의 배경입니다. 

남한산성 행궁 남한루. 사진=박준환 기자
남한산성 행궁 남한루. 사진=박준환 기자

그의 후손인 숙종은 37년(1711년) 좌전과 우실건립을 비롯해 남한산성 시설물을 보수했다고 합니다. 숙종과 영조, 정조, 철종, 고종이 능행길에 남한산성 행궁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특히 정조는 남한산성의 사대문의 이름을 짓고 과거시험을 시행하면서 남한산성에 지대한 관심을 표시했다고 하죠.

남한산성 행궁안내도. 사진=박준환 기자
남한산성 행궁안내도. 사진=박준환 기자

날이 차면 김훈이 소설에서 읊조린 글귀가 생각납니다.나루에서 뱃사공을 베고 그 딸을 데려가 돌본일, 추위에 덜덜 떨면서 청나라에 대치한 일들이 마치 본듯이 기억이 생생합니다. 작가 김훈의 필력이 힘을 발휘한 탓이겠죠. 

남한산성도.. 사진=박준환 기자
남한산성도.. 사진=박준환 기자

남한산성은 지금이야 자동차로 가면 서울에서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합니다. 꼬불꼬불한 2차 선도로도 거침없이 달리면 길어야 20여분이면 올라갑니다. 근 400년 전이라고 생각해보세요. 한강 나루를 건너 벌판을 지난 비탈진 성까지는 결코 가깝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외진 곳에 돌을 정으로 쫗아 단을 쌓고 나무를 다듬어 행궁을 짓는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산세 또한 걷거나 뛰기에는 험난합니다. 

남한산성행궁 전경. 사진=박준환 기자
남한산성행궁 전경. 사진=박준환 기자

 

남한산성행궁의 큰 느티나무. 사진=박준환 기자
남한산성행궁의 큰 느티나무. 사진=박준환 기자

병자호란때 이곳에서 47일을 버텼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갔습니다. 터를 잡은 권력자, 등뼈가 휠정도로 중노동에 시달린 백성들의 숨소리, 청나라 군대와 싸우느라 북풍한설의 냉기를 이기며 밤을 샌 병졸들의 얼어붙은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행궁을 나와 동네 식당에서 막걸리 한 통을 마시고 돌아왔습니다.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는 말입니다. 저 낙랑장송만이 알겠죠.

남한산성 행궁 후원 뒤 울창한 소나무숲. 사진=박준환 기자
남한산성 행궁 후원 뒤 울창한 소나무숲. 사진=박준환 기자
남한산성 행궁내 신라시대 건물지. 사진=박준환 기자
남한산성 행궁내 신라시대 건물지. 사진=박준환 기자

돌아오는 길에 영화에서 주전론자 김상헌(김윤석)의 주장에 대해 주화론자 최명길(이병헌)이 피를 토하듯 한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저들이 말하는 대의와 명분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옵니까.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실 수 있는 것이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시옵소서. 삶이 있은 후에야 비로서 대의와 명분도 있는 것이 아니옵니까"

박준환 기자 naulb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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