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기피와 '공복(公僕)' 실종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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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기피와 '공복(公僕)' 실종한 한국
  • 박준환 기자
  • 승인 2021.01.2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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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선배를 만났다.자식농사를 잘 한 그는 행정공시를 통과한 아들의 진로를 두고 고미아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서울 명문대학을 나오고 그 어렵다는 행정고시를 통과했다면 으레 기획재어부를 택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들의 생각은 영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 성적표라면 기재부에서 어렵지만 사무관생활을 하고 서기관과 과장을 거친다면 '관치금융'의 힘이 강한 한국에서는 어렵지 않게  금융회사 수장 자리는 따논 당상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아들은 그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세종시에 내려가는 게 싫고 어려운 업무도 싫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겠다는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결국 선배의 아들은 옛날 같으면 한직인 부처로 가기로 했다고 한다.

1월 27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8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 겸 2021년 제1차 혁신성장전략회의' 모습. 사진=기획재정부
1월 27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8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 겸 2021년 제1차 혁신성장전략회의' 모습. 사진=기획재정부

좋게 말해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 할 수 있다 안좋게 말한다면 기재부의 위상 추락의 단면이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총명한 젊은 공무원이 힘들지만 미래를 걸어볼 가치가 충분한 부처를 피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요즘 공무원들은 국민의 공복이 아니라 정치인, 정권의 꿈을 이뤄주기 위한 '수단'이 된 지 오래라는 탄식이 많다. 

100조 원 이상 들어가는 자영업자 손실 보전을 놓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정치권에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홍 부총리는 나라빚을 걱정하자 정세균 총리를 비롯한 정치권은 그를 '개혁 저항 세력'이라면서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윽박질렀다. 홍 부총리는 결국 정치권의 압박에 두 손을 들었다. 그래서 '용두사미'란 말을 빌린 '홍두사미'란 비아냥까지 나오지 않았는가?

홍두사미는 과거라면 상상도 못할 기재부의 추락한 위신, 소신 부재를 적나라라게 하게 보여준다.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수사 외에 그것을 뒷받침할 수치,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게 오늘날 기재부라고 질타하는 비판론자도 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기재부가 가장 잘 알 것이다. 공무원이 소신을 지키면 저항세력이라고 매도당하고 인사불이익을 당하거나 궁극으로는 수사로 보복을 당해 감옥에 가야하는 데 누가 이런 부처를 선택할 것이며 누가 감히 정책을 준비할 것인가?

사정은 산업부도 마찬 가지다.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전 장관은 버티는 담당 공무원에게 "너 죽을래"라고 협박했다. 공무원들은 밤에 몰래 들어가 증거를 없앴다. 시키는 상사나 따르는 부하나 똑 같다. 비정상이 정상이 돼 버린 공무원 사회에서 줏대나 기백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정치권 줄을 타고 부끄러움을 모른 채 장차관으로 내려오는 일만 있는 상황에서 그저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만 생기는 것은 지극히도 당연할 것이다. 

이 모든 게 거짓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지 않다"고 분연히 일어서는 기개 넘치는 공무원도 적지 않을 수 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공무원은 가뭄에 콩나는 듯할 정도로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기에 서울의 한직을 택한 젊고 유능한 초임 공무원에에 험로가 예상되는 부처로 가라고 권유할 꼰대가 될 수 없고 그를 탓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모든 것은 잘못된 정치에 그 뿌리가 있다고 자책한다. 그리고 그 '잘못된 정치' 가 현실에 구현되도록 한 것도 유권자인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고 불의가 정의 노릇을 하는 세상이 돼 후보자를 꼼꼼히 살피지 않고 표를 던지거나 외면했다는 이유로 유권자들만이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 참으로 못마땅하다. 

박준환 기자 naulb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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