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왕 신춘호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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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왕 신춘호를 기리며
  • 박준환 기자
  • 승인 2021.03.30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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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신춘호 농심 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92세였다. 천수를 누린 그이지만 그를 보내는 마음은 안타까움이다.  신 회장과는 일면식도 없지만 그의 언행과 그가 남긴 족적은 후대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치고 라면을 모르는 이가 없고 그 중에서도 신라면의 매운맛을 맛보지 않은 이가 없는 것도 고 신 회장 덕분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고 신 회장은 유별난 사람이다. 하늘은 인재를 빨리 데려가 천상의 천재로 만드려고 하는 데 고 신 회장 역시 다르지 않다고 본다.

라면왕 고 신춘호 농심 회장. 사진=농심그룹
라면왕 고 신춘호 농심 회장. 사진=농심그룹

그는 1965년 창업해 신라면, 짜파게티, 새우깡 등 우리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여전히 받고 있는 제품을 개발한 주인공이다. 그는 특히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라면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 2조 6000억 원의 매출을 자랑하는 농심도 고 신 회장의 이런 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1930년 12월 1일 오늘날 울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형이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다. 그는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고 신격호 명예회장을 도와 제과 사업을 시작했으나 1963년부터 독자 사업을 모색했다. 신춘호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는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보았고 그는 옳았다.  

신 회장은 "한국에서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1977년 변경한 사명 (주)농심
1977년 변경한 사명 (주)농심

그는 56년간 농부의 마음으로 제품을 만들었다. 농심이다. 그는 끝까지 품질 제일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다운 맛'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확고하게 유지한 경영자로 소비자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두고 농심만의 한국인 입맛에 맞는 제품 개발에 힘을 쏟았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졌다.

농심 신라면. 사진=농심
농심 신라면. 사진=농심

소고기 육수를 사용한 '소고기 라면'으로 라면 시장에 변화를 일으켰고 이후 '너구리' '육개장 사발면' '안성탕면' '짜파게티' '신라면' 등 히트 상품을 연이어 출시했다. 농심이 국내라면 시장에서 1위 기업 농심은 그의 두뇌가 낳은 옥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남긴 유산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크고 많다.

그는 농심홀딩스라는 지주회사 외에 율촌화학,메가마트, 태경농산, 농심엔지니어링, 엔디에스,농심기획,호텔농심, 농심개발, 농심미분, 율촌재단을 남겼다. 고인은 장남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과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 신현주 농심기획 부회장,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 부인인 차녀 신윤경 씨, 고인의 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 등  훌륭한 경영자도 키웠다. 

고인은 과보다는 공이 큰 경영자라고 말해야 옳을 듯 싶다. 고인은 한국 라면의 세계화를 선도한 경영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의 역작인 신라면은  세계 100여 국에 수출돼  신라면의 세계화를 이뤘다. 고 신 회장은 미국 시장에서 '한국의 맛'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현지 제품을 모방하지 않고 농심의 맛 그대로 시장에 선보였다. 미국 시장을 독점한 일본 라면과 철저한 차별화 전략을 택했고 그것은 적중했다.

농심이 해외 매출은 지난해 9억 9000만 달러(1조 1261억 원)였다. 농심은 세계 5위 라면 기업으로 도약했다. 미국 시장에 법인을 세우고 24년 만에 주류시장(백인·흑인 중심의 미국 현지 소비자) 매출이 아시안 시장을 앞질렀다. 2019년 기준 주류시장 점유율이 62%로 아시안 시장(38%)을 압도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2018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신라면을 선정하고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가 2020년 '신라면 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선정한 것도 그의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고 신춘호 회장은 30일 오전 5시 빈소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떠났다. 중국발 미세먼지도 바람이 다 걷어내면서 그가 가는 길을 열어줬다. 그를 운구한 차량은 용산 자택을 들른 후 동작구 신대방동 농심 본사에서 임직원과 이별했다.  그가 영원히 라면왕으로 기억되길 빈다.

박준환 기자 naulb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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