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렴주구'와 조세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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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렴주구'와 조세저항
  • 이정숙 기자
  • 승인 2021.04.2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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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렴주구(苛斂誅求)라는 말이 있다. 사전은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거나 백성의 재물을 억지로 빼앗음'이라고 풀이한다. 이말은 중국 당나라 왕조의 정사인 구당성에 나온다고 한다. 공자와 제자들의 일화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부동산 가격 폭등 후 재산세와 종부세 폭탄이 날아들고 있어 국민들의 불만이 높다. 사진은 대만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엑스칼리버 초정밀포탄. 사진=레이시온
부동산 가격 폭등 후 재산세와 종부세 폭탄이 날아들고 있어 국민들의 불만이 높다. 사진은 대만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엑스칼리버 초정밀포탄. 사진=레이시온

일화는 대충 이렇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길가 무덤 세 개 앞에서 한 여인이 매우 슬피 우는 것을 봤다고 한다. 우는 이유를 물으니 "이곳은 아주 무서운 곳입니다. 오래 전에 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물려 돌아가시고 얼마 전에 남편이 물려죽었는데 이번에는 자식이 죽었다"고 답했다.

왜 떠나지 않느냐고 물으니 "이곳에는 가렴주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말을 들은 공자는 "잘 기억해 두라. 가혹안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선 법"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나온 말이 '가렴맹어호'이며 이것이 가렴주구의 뿌리라는 주장이 많다. 

혹자는 중국 역사서인 <구당서> 목종기에 나오는 '가렴각하(苛斂刻下)'이라는 말과 <춘추좌싸전> 양공에 나오는 '주구무시(誅求無時)'를 합친 말이라고 한다. 각각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는 것이 아랫사람 옷을 벗기듯 하다', '시도 때도 없이 죽일 듯이 공물을 요구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유래야 어찌됐든 요즘 이 말은 세금을 가혹하게 거둔다는 말쯤으로 통하고 있다. 가혹한 세금은 민란과 왕조멸망으로 이어졌음을 역사는 생생하게 증언하고있다. 그런데 요즘 이런 말이 부쩍 많이 나돈다. 아마도 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른 보유세인 재산세, 부동산을 살 때는 취득세와 등록세가 많이 뛴 탓으로 보인다. 한둘이 이런 말을 하면 그 사람의 편견 혹은 오해라고 할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이 이런 말을 하면 그것은 사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세금과 관련된 불만을 예사로 볼 일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은 세부담이 높은 수준이라고 본다는 한국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결과가 나왔다. 사진=한국경제연구원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은 세부담이 높은 수준이라고 본다는 한국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결과가 나왔다. 사진=한국경제연구원

재계를 대변하는 전국경제연인연합회 산하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원이 21일 내놓은  '조세부담 국민 인식 조사'는 우리 국민들이 정부의 세금에 대단히 큰 불만을 갖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은 최근 5년간 조세부담이 증가해 버거워하고 있다는 게 뼈대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우선 응답자의  74.6%는 최근 5년간 조세 부담이 늘었다고 답했다. 부담이 가장 많이 늘었다고 생각하는 세목은 취득세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가 32.0%로 가장 많았다. 최근 부동산 가격 폭등이 반영된 설문 결과로 보인다.

응답자의 65%는 현재 소득에 비해 체감하는 조세부담이 높은 수준이라고 대답했다.  세 부담이 큰 세목은 취득세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28.9%), 근로 및 사업소득세(28.6%), 4대 보험을 포함한 각종 부담금(24.2%) 등의 순이었다.소득 수준별로는 소득 1~2분위는 평균 62.7%가 세 부담이 높다고 응답했지만 4~5분위는 이 같은 응답률이 평균 74.8%까지 치솟았다. 고소득층이 더 큰 세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현 조세제도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응답률은 74.7%에 이르렀다. 소득 수준별로는 중산층에 해당하는 소득 3분위에서 조세제도를 불공정하게 생각하는 비율이 83.9%로 가장 높았다. 

최근 논의가 제기된 증세에 대해서는 응답자 64.6%가 반대했다. 증세를 반대하는 이유는 '세금이 낭비되거나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아서'(50.1%)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증세 외 건전한 재정 유지 방법으로는 '조세제도 및 조세 행정 투명성 강화'(32.4%), '각종 복지 지출 효율화'(21.5%), '세출 구조조정'(20.7%) 등이 꼽혔다.

조세제도와 행정개선 과제. 사진=한국경제연구원
조세제도와 행정개선 과제. 사진=한국경제연구원

복지제도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걷는 것은 불가피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좀 넉넉한 사람한테서 좀 더 많은 세금을 거둬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고소득층은 소득을 많이 올릴 수 있는 사회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기꺼이 세부담을 지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그동안 그래왔다.특별히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국민들의 불만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세금이 과하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고 현행 조세제도가 불공정할뿐더러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국민들이 많다. 정부는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고 보유세를 대폭 인상했다.그러면서도 인상 기준은 공개하지 않는다.

공급억제와 저금리 정책 등 정부 정책 실패가 부동산 가격 폭등의 근인인데 국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꼴이다. 가많이 앉아 있는 국민에게 세금폭탄을 던젼 정부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불만이 쌓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아파트 공시가를 재조정하라는 조제저항 연명부가 등장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재산세와 종부세 등 늘어날 세금부담에 대한 반발은 비싼 아파트가 몰린 서울 강남권을 넘어 서울 강북과 세종, 부산 등 지방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심지어 홍준표 무소속 의원 등 일부 정치인은 종부세와 재산세는 중복과세라며 조세저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증세보다는 세금을 더 알뜰히 쓰고 투명하게 관리한다음 국민에게 손을 벌리는 게 순서다. 정부는 복지제도의 시행을 위해 가장 손쉬운 증세 유혹을 많이 받겠지만 섣부른 증세는 독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렴주구'라는 4자성어가 가진 교훈을 곱씹어봐야 한다. 정부는 혹시라도 증세를 논의하려고 한다면 조세제도를 정비해달라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정숙 기자 kontra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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