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 선박, '신원세탁'해 제재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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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제재 선박, '신원세탁'해 제재피해
  • 박태정 기자
  • 승인 2021.09.11 2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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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진안보연구소 보고서 발간
유조선 빌리언스18호,' 킹스웨이', '슌파' 등으로 신원세탁...부산항에 억류돼 조사받고 있어
한국정부는 억류사실 공개하지도 않아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대상 선박들이 허위 등록정보를 이용한 '신원세탁' 수법으로 제재 감시망을 교묘히 회피하고 있다는 미국 연구소의 최신 보고서가 나왔다. 이런 선박들이 한국 항구를 드나들다 부산항에서 적발돼 억류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정부는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에서 허위로 받은 등록번호를 이용해 합법선박인 것처럼 운항하다 적발된 킹스웨이호. 화학물과 원유운반선인 이 선박은 유엔안보리의 제재대상 '빌리언스 18호'다. 사진=베슬파인더
국제해사기구(IMO)에서 허위로 받은 등록번호를 이용해 합법선박인 것처럼 운항하다 적발된 킹스웨이호. 화학물과 원유운반선인 이 선박은 유엔안보리의 제재대상 '빌리언스 18호'다. 사진=베슬파인더

미국 민간연구기관 C4ADS(선진안보연구소)는 지난 9일(현지시각) 선박 신원세탁(vessel identity laundering)을 통한 대북제재 위반 선박들의 제재회피 수법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전했다. 

보고서는 제재 대상 선박들이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에서 허위로 받은 새로운 등록번호를 활용해 합법 선박처럼 항해하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소는 대북제재 위반 혐의 선박 11척의 행보를 분석한 결과 '킹스웨이(Kingsway)'와 '서블릭(Subblic)'호가 허위 IMO 등록번호 발급을 통한 신원세탁 수법을 쓴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가 지난 2017년 12월 대북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빌리언스 18(Billions No.18)'호는 '킹스웨이'로 선박명을 바꾸고 다른 선박 '트윈스 불(Twins Bull)'과 함께 선체 외관을 개조한 후 2018년 10월 '알파(Alpha)'와 '유니 웰스(Uni Wealth)'라는 새로운 선박으로 가장해 IMO 등록번호를 발급받았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선박 2척, 즉 알파(Alpha)호와 유니 웰스(Uni Wealth)호에 2개의 IMO 등록번호가 생성된 것이다. 

유엔제재대상 선박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슌파'라는 함명을 써놓은 킹스웨이호(옛 빌리언스18호).사진=NK뉴스
유엔제재대상 선박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슌파'라는 함명을 써놓은 킹스웨이호(옛 빌리언스18호).사진=NK뉴스

이후 유니 웰스 호의 IMO등록번호를 사용한 킹스웨이 호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선박 자동식별장치(AIS)를 조작해 몽골선적의  '슌파(Shun Pa)', '에이팩스(Apex)' 등 다른 선박 이름으로 신호를 보내며 운항을 계속해 오다 올해 5월10일 부산항에서 한국 정부에 억류돼 제재 위반 혐의 조사를 받고 있다. 북한전문 매체 NK뉴스는 지난 8월20일 이같은 사실을 보도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공개하지도 않았다.한국 외교부는 당시 NK뉴스 질의에 "언급할 게 없다"며 답을 거절했다.

NK뉴스는 지난달 20일 기사에서 아산연구소의 고명현 펠로의 말을 인용해 인용해 한국정부는 이 유조선이 억류되기 전인 지난 4월 남북 정상간 여러 서신 교환 탓에 억류가 주목을 끄는 것을 피하기를 원했을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선박추적 사이트 베슬파인더에 따르면, 킹스웨이호는 1998년 건조됐으며 길이 115m, 너비 19m이며 총톤수 5827t,화물중량톤수 9224t으로 나타나 있다. 

2017년 3월 여수항에서 촬영되고 2018년 11월 선박추적 사이트 마린트래픽 사이트에 올려진 빌리언스18호.사진=마린트래픽
2017년 3월 여수항에서 촬영되고 2018년 11월 선박추적 사이트 마린트래픽 사이트에 올려진 빌리언스18호.사진=마린트래픽

킹스웨이처럼 제재 대상 선박 자체를 개조해 새로운 IMO등록번호를 받는 수법과 달리 서블릭은 제3의 선박, 즉 중개선박을 활용해 새로운 IMO등록번호를 만든 후 제재 회피에 나섰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2월 제재 대상이 된 서블릭 호는 중개선박으로 쓰인 태국 국적의 '스무스 시 28(Smooth sea 28)'호의 IMO등록번호를 도용해 사용했고 스무스 시 28호는 선박 외관을 개조해 중국에서 '스무스 시 22(Smooth sea 22)'호란 위장 선박명으로 새로 IMO 등록번호를 발급받았다.

'스미스 시 28호'로 불린 '서블릭' 호는 이후 밀리안 알 국제무역회사(Milyan R Trade International Co. Ltd.)에 인수돼 선박명을 '하이저우 168(HAI ZHOU168)'로 변경하고 지금까지도 합법 선박으로 위장해 항해하고 있다.

보고서의 공동 저자인 로렌 성(Lauren Sung) C4ADS(선진안보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9일 RFA 통화에서 "킹스웨이 호 사례와 같은 새로운 신원세탁 수법은 과거 대북제재 혐의 선박들이 다른 선박의 정보를 단순히 도용하는 것과 달리 가상의 새로운 선박을 위조 등록해 발급받은 IMO번호를 활용하는 복잡성 때문에 추적이 훨씬 더 어렵다"고 말했다.

보고서의 또 다른 저자인 루카스 쿠오 선임 연구원은 IMO선박 등록의 제도적 취약점 때문에 제재 회피 선박들이 손쉽게 허위로 등록번호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에 따르면, IMO 등록번호 신청 선박이 실제 선박인지, 신청서에 제출된 선박의 세부 정보가 실제 선박과 일치하는 지에 대한 확인 절차가 제대로 없어 페인트칠과 같은 외관 개조만으로도 새 선박으로 둔갑이 가능하다.

쿠오 연구원은 선박들이 IMO 등록번호 신청 시 구체적인 선박 정보들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정기로 외관과 세부사항을 보고하는 강화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쿠오 연구원은 "제재 위반 선박들이 보안체계가 부실한 AIS, 자동선박식별장치를 조작해 마음대로 선박명을 변경할 수 있는 것 역시 문제점"이라면서 "기계 변조 방지를 위한 통일된 국제 기준과 국제적으로 공유되는 AIS 등록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을 비롯해 각 국가들이 대북제재 혐의가 있는 선박과 잠재적인 연관이 있는 그들의 관계망(네트워크)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태정 기자 tt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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