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성장률의 역설, '과유불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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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성장률의 역설, '과유불급'
  • 이정숙 기자
  • 승인 2022.01.2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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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성장률을 두고 말이 많다. 과속 성장이라는 말이 나온다. 과속은 과열을 낳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중앙은행은 돈줄 죄기 즉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려는 태세다. 성장의 역설이다. 정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형국이다. 미국 정책 당국의 지나친 욕망이 미국 경제에 '화(禍)'를 불러일으킨다고 하면 과장일까?

미국 상무부 발표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1위 국가인 미국이 지난해 4분기에 6.9% 성장하고 연간으로 5.7%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1984년 7.2%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여기에 물가를 더한 명목 GDP는 전년 보다 10%(2조 1000억 달러)가 늘어난 22조 9900억 달러로 집계됐다.  한 해 한국 GDP(IMF 기준 1조8239억 달러)보다 더 많이 늘어났다.

전분기 대비 미국의 분기별 국내총생산(GDP) 추이. 사진=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
전분기 대비 미국의 분기별 국내총생산(GDP) 추이. 사진=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

더 놀라운 것은  4분기 성장률이 3분기 경제성장률 2.3%보다도 4.0%포인트 이상 더 올라갔다는 사실이다. '다운 존스'가 전망한 미국의 4분기 경제성장률은 5.5%였는데 이보다 1%포인트 이상 더 높게 나왔다. 그만큼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미국 성장의 원동력은 GDP의 약 70%를 차지하는 개인소비였다. 미국 개인소비는 4분기에 3.3% 증가율로 3분기 2.0%에서 크게 상승했다. 미국 상무부는 "이는 수출 증가, 재고투자와 소비지출 가속화가 주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임기 첫해 GDP 수치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일자리 증가 등 거의 40년 만에 가장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21세기를 위한 미국 경제를 건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자평했다. 

미국의 성장률을 보면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 걱정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속성장이며 과열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성장률은 미국의 잠재성장률(2.1% 추정)을 크게 웃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잠재성장률이란 인플레이션을 가속화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을 말한다. 적정성장의 기준이 되는 성장률이다.

과속성장의 부작용인 인플레이션은 벌써 가시화하고 있다. 수요가 공급 능력 이상으로 과도하게 늘어나 생산이 수요를 충족하지 못해 물가가 지속해서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해 8월과 9월 각각 5.3%, 5.4%였으나 10월부터 내리 3개월 연속 6%를 웃돌았다. 10월 6.2%, 11월 6.8%에 이어 12월에는 7%로 상승폭이 커지고 있다. 

2021년 1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전체와 주요 물가 상승률. 사진=미국노동통계국
2021년 12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전체와 주요 물가 상승률. 사진=미국노동통계국

지난해 12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를 기록했다. 이는 40년 만에 최대 상승폭이었다. 에너지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29.3% 상승하고 식품이 6.3% 올랐으며 주거비가 4.1% 뛰었다.특히 중고차 가격은 전년 동월에 비해 37.3%, 전달에 비해 3.5%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의 핵심 요인으로 꼽혔다.

물가가 뛴 요인은 여러 가지다. 공급망 차질이 지속되면서 제품 가격이 뛰었다. 여기에 고용주들이 노동력 확보를 위해 임금을 올렸고 소비여력이 높아진 소비자들의 지출이 늘어났다. 돈이 풀리고 가격이 오르니 물가는 자연스레 뛰게 마련이다.

인플레이션 소방수라는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고 나설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26일(현지시각)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이틀 일정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노동시장을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금리를 올릴 수 있는 여력이 꽤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3월부터 금리 인상이 시작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은 지난 2020년 3월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하자 금리를 0.00%~0.25%(제로금리) 수준으로 낮췄다.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금리를 올리지 않았고 1월 회의에서도 금리를 동결했다. 돈을 빌려줄 때 받는 이자를 크게 나눠서 시중에 돈을 풀어줌으로써, 코로나로 움츠러든 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가 치솟는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되자 금리카드를 꺼낸 것이다. 파월 의장은 "조건이 합당하다고 가정한다면, 3월 회의에서 금리를 올릴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Fed는 기자회견 이후 발표한 성명에서 금리 인상 시점은 '곧'이라고만 명시했다. 또 금리 인상폭과 관련해서는 0.25%포인트  수준이 될 것으로 시장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올해 3월 이후 최소한 3차례 이상, 5차례 이상의금리 인상도 가능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Fed는 또  자산매입도 축소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노동시장과 물가의 진전을 고려할 때, 미국 경제에 있어 높은 수준의 정책적 지원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Fed는 2월 월간 채권 매입 규모가 300억 달러로, 자산 매입 프로그램이 3월에 종료될 것이라고 밝혔다.또 Fed는 대차대조표 축소와 관련해서도 금리 인상 이후, 조정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대차대조표 축소는 긴축 정책에 나선다는 의미다.

코로나19→경기침체→금리인하+자산매입→경제성장→물가상승→인플레이션 악화→금리인상+자산매입 축소의 사이클이 진행되는 모습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더 길게 지속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금리를 더 많이 인상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GDP가 잠재 GDP를 넘어서 경기가 과도하게 상승하고 인플레이션과 경상수지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한 미국 정책 당국이 경기를 진정시키기 위한 긴축정책 시행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금리인상은 미국 경제에서는 '상수'가 됐다. 예상된대로 금리인상이 3차례에서 5차례 이뤄진다면 대출이 많은 차입자들은 개인이건 기업이건 이자부담에 시달릴 것임은 불을 보듯 훤하다. 반면 자산가들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며 표정관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양극화가 극심해질 것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금리인상은 당장 부정의 반응을 받았다.상승세를 이어온 뉴욕 주식시장의 주요 지수들이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서고 일부 종목이 10% 이상 떨어진 것을 보면 그렇다. 과속성장의 부작용은 지독하다.

미국의 과속성장과 금리인상 공식화를 보면서 소비나 투자와 같은 수요를 짧은 기간에 늘려 경제성장률을 높이기보다는 기술 개발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잠재 성장률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고 바람직한 해법이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한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사회간접 자본의 확충과 보수 유지도 중요하다는 점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세상만사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이정숙 기자 kontra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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