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통화국 논란 둘러싼 걱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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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국 논란 둘러싼 걱정들
  • 이정숙 기자
  • 승인 2022.02.22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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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첫 법정 TV 토론회에서 적정 국채 발행 규모를 놓고 토론을 벌이다 "우리가 곧 기축통화국으로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 발언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낳고 있다.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과정에서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개념과 그 발언이 나온 이유, 예상되는 후과를 곱씹어보면 입맛이 영 개운치 않다. 국민 표를 얻겠다는 공약이 결국 국민의 등골을 휘게 하는 단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이재명 경기도지사 페이스북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이재명 경기도지사 페이스북

 왜 '기축통화'라는 말이 나왔을까. 이 말은 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한 방송 토론회에서 이재명 열린우리당 후보가 꺼냈다. 윤 후보는 이 후보에게 "국채 재정 건전성이라고 하는 것은 대통령의 굉장히 중요한 이슈"라면서 "그런데 이 후보는 '국채는 한 나라의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돈이 왼쪽 주머니로 가는 것'이라고 해왔다. 그러면 국채는 얼마든지 발행해도 된다는 뜻인가"라고 물었다.

이 후보는 "우리나라 가계부채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반면 ,국가부채 비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면서 "국가가 방역 부담 등을 개인에게 떠넘겼기 때문인데 지금은 충분히 (지원) 여유가 있다"고 답했다.

이에 윤 후보는 "질문에 자꾸 딴 얘기를 한다"면서 "국채발행을 얼마든지 해도 된다는 뜻이냐. 국내총생산(GDP)의 몇 퍼센트를 발행해도 된다는 것인가"라고 거듭 물었다.

이 후보는 "얼마든지 하면 당연히 안 된다. 제가 언제 그렇게 말했나"라고 언성을 높이면서 "그럼 본인은 국채 발행 비율이 몇 프로인 게 적정하다고 보느냐"고 되물었다. 윤 후보는  "비기축통화국인 경우는 50~60%를 넘어가면 어렵다. 스웨덴은 40%를 넘어가면서 이자율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응수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우리나라는 국채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만큼 경제력 수준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국채발행 규모를 기축통화국을 기준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 후보의 발언 취지는 수긍할 점이 적지 않고 사실도 적시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국채를 발행해서 지원하자. 현재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낮으니 충분히 여력이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국제금융회(IIF)가 지난해 7월20일 내놓은 '세계부채 모니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97.9%로 조사대상 39개국 중 가장 높았다. 

둘째 정부의 방역부담을  개인에게 떠넘겼기에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도 충분히 정당성을 갖는다. 문재인 정부가 처음부터 코로나19 방역을 철저히 했다면 오늘날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근거나 기준없이 자영업자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조치를 취했다.

남은 것은 지원방식이다.그가 말하는 지원방식은 정부가 지원하되 그 재원을 국채를 발행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서 지원하자는 뜻으로 읽힌다. 부동산 가격 상승 등에 따른 부동산 세수 증가로 세수가 늘어났지만 재원을 넉넉히 확보하려면 국채발행은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도대체 얼마를 발행하는 게 적정하느냐이다. 국민 혈세로 재원이 마련되는 만큼 꼼꼼히 따져보는 것은 납세자인 국민들에 대해 대통령이 가져할 최소한의 자세라고 본다. 더욱이 국채 발행을 늘리면 채권 매수자를 모으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 채권금리 상승은 시중금리 상승과 불가분이다.

미국 달러 지폐 더미.미국달러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통화로 기축통화다. 사진=육도삼략DB
미국 달러 지폐 더미.미국달러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통화로 기축통화다. 사진=육도삼략DB

지난해 국채와 특수채의 발행잔액은 1100조 원에 육박했다.이중 국고채 발행 잔액은 843조7000억원으로, 120조원 이상 급증했다.또 국채를 발행한다면 후세대가 갚을 나라빚이 더 늘어난다. 후세대 부담을 덜 주려면 되도록이면 발행규모를 줄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윤 후보의 질문은 정당하다. 그는 추경 50조 원 편성을 주장한 만큼 이게 적정한 수준이라고 보는 듯하다.

이 질문에 이 후보는 답하지 않았다. '한국이 기축통화국이 편입될 가능성이 있으니 얼마든지 발행해도 된다'는 식으로 답했다. 기축통화국은 채권을 발행해도 전 세계 수요자들이 사들이니 충분히 소화되고 국내 금리는 올라가지 않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이 후보의 논리는 맞아 떨어진다.

더욱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비슷한 취지의 보고서를 냈으니 이 후보를 이해못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며 기축통화국 편입 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게 문제다. 기축통화란 국제결제나 금융거래의 기축이 되는 특정국의 통화로 보통 미국 달러를 가리킨다. 기축통화국이라고 하면 보통은 미국을 말한다. 미국 달러는 전세계에서 거래되는 통화의 87%를 차지한다.  적어도 기축통화, 기축통화국이 되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 한다. 이 정도로 많이 사용할 정도로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세계 외환시장에서 많이 거래되는 통화는 달러에 유로,일본 엔, 영국 파운드 스털링, 호주달러, 캐나달러,스위스프랑,중국위안, 스웨덴 크로나, 멕시코페소,뉴질랜드달러, 싱가포르달러, 홍콩달러, 노르웨이 크로네에 이어 한국 원화는 15번째로 거래되는 통화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 원화가 기축통화가 되고 우리나라가 기축통화국이 되려면 가야할 길이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인다.

전경련이 주장한 것도 기축통화가 아니라 국제통화기금 특별인출권(SDR) 통화 바스켓에 편입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게 골자였다.

그런데도 이 후보는 기축통화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하면서 채권발행을 해도 된다는 논리를 폈으니 '해괴하다'는 비판을 받아도 싸 보인다. 

이 후보는 국채발행 규모의 적정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답하기 곤란해서 '기축통화국' 이라는 말로 변명했는지도 모른다. 사람 속을 누가 알겠으며 말꼬리를 붙잡는 정치권 풍토에서 수준 높은 토론을 누가 기대하기는 하는가?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물가의 지속상승)을 잡기 위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예고되는 등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국채 발행량 증가는 채권금리를 상승시키고 시중금리를 올려 결국 서민과 기업의 이자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정부가 올해 국고채 발행 한도를 166조원으로 다소 축소했지만 대선 이후가 더 큰 걱정거리다. 새 정부가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한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나설 게 뻔하기 때문이다. 올해 국채발행액은 200조 원에 육박하면서 금융시장을 교란하고 서민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걱정은 더더욱 크다.

국고채 발행을 늘리면 회사채 시장이 타격을 받아,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이 늘면서 투자위측 등 경기회복에 찬물을 키얹을 수 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보험사와 은행 등 금융기관이 보유한 채권 가치가 떨어지면  금융사들의 재무건정성이 악화된다. 금융사들이 고육지책으로 대출이자를 올린다면 국민들의 이자 부담이 오를 것임도 훤히 짐작할 수 있다.

국가부채가 늘어나면 국가신인도가 떨어지고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경제위기가 올 수도 있다. 1997년 말 발생한 외환위기를 보라.

서민지원을 한다는 명분에 따른 정책이 결국 서민의 등골을 휘는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다. 대통령 후보들이여 이를 알고 있는가 모르는가?

이정숙 기자 kontra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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