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국제유가와 곡물 등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결과다.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고 있다. 금리를 올리면 물가는 안정될 지 몰라도 소비지출이 위축되어 경기를 냉각시킬 소지가 있다. 경제가 성장할 때는 금리인상의 충격을 견딜 수 있다. 그렇지 못할 때는 경기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금리카드는 조심스럽게 휘둘러러야 한다. '인플레이션 파이터(fighter)'를 선언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 주목을 끈다.
이창용 총재는 0일 창립 72주년 기념식에서 "글로벌 물가 상승압력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면서 "인플레이션 파이터(fighter)로서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이 다시금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한은의 첫 번째 임무인 물가 관리에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는 기준 금리를 인상해 물가를 잡겠다는 뜻이다. 그는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쳐 인플레이션이 더 확산되면 피해는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시사했다.
이 총재의 이런 발언은 한은이 9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밝힌 향후 통화정책방향과 궤를 같이 한다. 한은은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으나 국내경제가 회복세를 지속하고 물가가 상당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당분간 물가에 더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와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 방향은 5월 소비자 물가가 5.4% 상승하는 등 물가상승 흐름을 보면 시의 적절하다고 본다.더욱이 물가상승의 방아쇠를 당긴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웃돌고 있고 앞으로도 공급부족으로 상당기간 고공행진을 할 것이며,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운송비 상승과 작황부진,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차질이 맞물려 곡물가격 역시 상승세를 지속해 물가 상승 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점들을 두루 살핀다면 선제대응 즉 미리 금리를 올려 물가 압력을 낮추는 것은 한은의 당연한 임무라고 할 수 있다. 이 총재는 "소비자물가가 5%를 웃돌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정상화(금리 인상) 속도와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시점에서는 더 이상 우리가 선제적으로 조정해 나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꼬집었다.
이 총재의 이런 지적은 한은이 경기변화에 제대로 선제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자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금리를 려야 할 때 올리지 않고 경기부양을 한다며 저금리 정책을 편 탓에 막상 경기가 나빠져 더 낮출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성장은 부진한데 물가가 급등하니 금리를 올려야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과거 금리조정 실기를 한 탓이 크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이라는 용(dragon)과 벌인 싸움에서 승리를 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도 용과 벌인 싸움에서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도 5월 8.6%나 상승했다. 미국 중앙은행이 지난달 금리를 0.50%포인트 올리는 '빅스텝(Big Step)'을 밟았지만 용은 여전히 비상하고 있다. Fed의 '금리인상 실기론'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이달 15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0.50%포인트가 아니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미국의 물가상승 압력이 크다는 뜻이다. 지난달 에너지가 1년 전에 비해 34.6%, 식품 물가가 10.1% 오르며 전체 지수상승을 견인했다.에너지 상품은 50.3% 상승했는데 특히 휘발유 가격은 48.7% 급등했다.
에너지와 식품은 우리나라에서도 물가상승의 주범 노릇을 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달 26일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의 3.1%에서 4.5%로 연간 4%대로 대폭 높였다. 연간 4%대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은 2011년 7월(연 4% 전망)과 11월(연 4% 전망 유지) 2차례 있었다.
그렇기에 이 총재의 생각은 분명하다. 조기에 금리 인상을 시작했지만 현재 앞서나가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금리 인상 속도를 높여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지난달 26일 기준금리를 1.75%로 0.25% 상향조정했다. 앞으로 금통위 전체회의는 7월과 8월 10월과 11월 4차례 남아 있다. 매번 0.25%포인트씩 올릴지, 미국처럼 0.50%포인트 올릴지는 한은만 알 것이다. 0.25%포인트만 올려도 앞으로 1%포인트가 더 올라 연말 기준금리는 2.75%에 이른다. 만약 한 번이라도 0.50%포인트 인상한다면 기준금리는 3%에 이른다.
한은이 고려할 사안은 물가뿐이 아니다. Fed의 금리인상 행보도 눈여겨 볼 것이다. Fed는 지난달 5일 금리를 1%로 0.50%포인트 올렸다. 이달 회의에서 0.75%포인트 올린다면 우리나라와 동일한 수준이 된다. 7월에 0.50%포인트, 9월에 0.50%를 올린다면 2.75%, 7월에 0.50%포인트, 9월 0.25%포인트를 올린다면 2.50%가 된다. 한미 금리 역전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금리역전에 따른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한은은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은이 어느 수준까지 금리를 올릴지 단언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박종석 한은 부총재보가 9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말 기준금리를 2.50~2.75%로 보는 시장 전망에 대해 '합리적 기대'라고 한 답변은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박 부총재보는 "앞으로 빅스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지만, 현재는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은이 고려해야 할 다른 중요한 사안이 있다. 가계빚이다 우리나라 가계빚은 올해 1분기 기준 1856조4000억 원으로 집계된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2년 전보다 250조원 넘게 늘었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부담이 18조원 이상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자부담이 늘어나면 소비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경기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의 한 축인 소비가 부진한데 경제가 제대로 성장할 리는 없다. 금리가 오르면 투자도 위축되기 마련이다.미국에서도 Fed의 급속한 금리인상이 경기침체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이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음도 들린다.세계 경제가 인플레라는 용의 제물이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한은은 이런 점들을 두루 살펴야 한다. 물가안정을 위해 선제 대응하되 신중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지표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 외에 경제주체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금리 정책이 시장과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인상폭을 결정하는 노력을 기울여 경제가 침체(recession)의 나락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조건 일정한 폭으로 인상할 게 아니라 금리 인상폭에 반응하는 반응을 보고 유연하게 대응함으로써 물가를 잡으면서 경제도 살리는 두 마리 토끼 몰이를 해야 한다. 이것이 물가상승이라는 용(dragon)과 싸우고 길들이며 안정시키는 '인플레이션 파이터'의 진정한 면모 아닐까? 금리인상만이 능사는 아니다.
박태정 기자 ttchu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