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파이터' 한은의 '용'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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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파이터' 한은의 '용' 길들이기
  • 박태정 기자
  • 승인 2022.06.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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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국제유가와 곡물 등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결과다.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위해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고 있다. 금리를 올리면 물가는 안정될 지 몰라도 소비지출이 위축되어 경기를 냉각시킬 소지가 있다. 경제가 성장할 때는 금리인상의 충격을 견딜 수 있다. 그렇지 못할 때는 경기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금리카드는 조심스럽게 휘둘러러야 한다. '인플레이션 파이터(fighter)'를 선언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 주목을 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0일 창립 72주년 기념식에서 "글로벌 물가 상승압력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면서 "인플레이션 파이터(fighter)로서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이 다시금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한은의 첫 번째 임무인 물가 관리에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는 기준 금리를 인상해 물가를 잡겠다는 뜻이다. 그는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쳐 인플레이션이 더 확산되면 피해는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시사했다.

이 총재의 이런 발언은 한은이 9일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밝힌 향후 통화정책방향과 궤를 같이 한다. 한은은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으나 국내경제가 회복세를 지속하고 물가가 상당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당분간 물가에 더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와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 방향은 5월 소비자 물가가 5.4% 상승하는 등 물가상승 흐름을 보면 시의 적절하다고 본다.더욱이 물가상승의 방아쇠를 당긴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웃돌고 있고 앞으로도 공급부족으로 상당기간 고공행진을 할 것이며,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운송비 상승과 작황부진,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차질이 맞물려 곡물가격 역시 상승세를 지속해 물가 상승 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런 점들을 두루 살핀다면 선제대응 즉 미리 금리를 올려 물가 압력을 낮추는 것은 한은의 당연한 임무라고 할 수 있다. 이 총재는 "소비자물가가 5%를 웃돌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정상화(금리 인상) 속도와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시점에서는 더 이상 우리가 선제적으로 조정해 나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꼬집었다. 

이 총재의 이런 지적은 한은이 경기변화에 제대로 선제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자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금리를 려야 할 때 올리지 않고 경기부양을 한다며 저금리 정책을 편 탓에 막상 경기가 나빠져 더 낮출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성장은 부진한데 물가가 급등하니 금리를 올려야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과거 금리조정 실기를 한 탓이 크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이라는 용(dragon)과 벌인 싸움에서 승리를 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도 용과 벌인 싸움에서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의 소비자물가도 5월 8.6%나 상승했다. 미국 중앙은행이 지난달 금리를 0.50%포인트 올리는 '빅스텝(Big Step)'을 밟았지만 용은 여전히 비상하고 있다.  Fed의 '금리인상 실기론'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이달 15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0.50%포인트가 아니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미국의 물가상승 압력이 크다는 뜻이다. 지난달 에너지가 1년 전에  비해 34.6%, 식품 물가가 10.1% 오르며 전체 지수상승을 견인했다.에너지 상품은 50.3% 상승했는데 특히 휘발유 가격은 48.7% 급등했다.

에너지와 식품은 우리나라에서도 물가상승의 주범 노릇을 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달 26일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의 3.1%에서 4.5%로 연간 4%대로 대폭 높였다. 연간 4%대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은 2011년 7월(연 4% 전망)과 11월(연 4% 전망 유지) 2차례 있었다.

그렇기에 이 총재의 생각은 분명하다. 조기에 금리 인상을 시작했지만 현재 앞서나가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금리 인상 속도를 높여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지난달 26일 기준금리를 1.75%로 0.25% 상향조정했다. 앞으로 금통위 전체회의는 7월과 8월 10월과 11월 4차례 남아 있다. 매번  0.25%포인트씩 올릴지, 미국처럼 0.50%포인트 올릴지는 한은만 알 것이다. 0.25%포인트만 올려도 앞으로 1%포인트가 더 올라 연말 기준금리는 2.75%에 이른다. 만약 한 번이라도 0.50%포인트 인상한다면 기준금리는 3%에 이른다. 

 한은이 고려할 사안은 물가뿐이 아니다. Fed의 금리인상 행보도 눈여겨 볼 것이다. Fed는 지난달 5일 금리를 1%로 0.50%포인트 올렸다. 이달 회의에서 0.75%포인트 올린다면 우리나라와 동일한 수준이 된다. 7월에 0.50%포인트, 9월에 0.50%를 올린다면 2.75%, 7월에 0.50%포인트, 9월 0.25%포인트를 올린다면 2.50%가 된다. 한미 금리 역전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금리역전에 따른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한은은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은이 어느 수준까지 금리를 올릴지 단언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박종석 한은 부총재보가  9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말 기준금리를 2.50~2.75%로 보는 시장 전망에 대해 '합리적 기대'라고 한 답변은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박 부총재보는 "앞으로 빅스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지만, 현재는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은이 고려해야 할 다른 중요한 사안이 있다. 가계빚이다  우리나라 가계빚은 올해 1분기 기준 1856조4000억 원으로 집계된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2년 전보다 250조원 넘게 늘었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부담이 18조원 이상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자부담이 늘어나면 소비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경기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제의 한 축인 소비가 부진한데 경제가 제대로 성장할 리는 없다. 금리가 오르면 투자도 위축되기 마련이다.미국에서도 Fed의 급속한 금리인상이 경기침체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이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음도 들린다.세계 경제가 인플레라는 용의 제물이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세계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용을 길들이기 위해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들고 있지만 쉽사리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호주 통계청은 지난 2020년 10월 소비자물가가 0.7% 상승했다고 밝혔고 유력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인플레이션 용이 살해됐다'는 만평을 게재했다. 사진=시드니모닝헤럴드
세계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용을 길들이기 위해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들고 있지만 쉽사리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호주 통계청은 지난 2020년 10월 소비자물가가 0.7% 상승했다고 밝혔고 유력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인플레이션 용이 살해됐다'는 만평을 게재했다. 사진=시드니모닝헤럴드

한은은 이런 점들을 두루 살펴야 한다. 물가안정을 위해 선제 대응하되 신중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지표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 외에 경제주체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금리 정책이 시장과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인상폭을 결정하는 노력을 기울여 경제가 침체(recession)의 나락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조건 일정한 폭으로 인상할 게 아니라 금리 인상폭에 반응하는 반응을 보고 유연하게 대응함으로써 물가를 잡으면서 경제도 살리는 두 마리 토끼 몰이를 해야 한다. 이것이 물가상승이라는 용(dragon)과 싸우고 길들이며 안정시키는 '인플레이션 파이터'의 진정한 면모 아닐까? 금리인상만이 능사는 아니다.

박태정 기자 tt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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