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8년 만에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면서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 부담이 커졌다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한미간 금리 역전이 발생해 자본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금리를 올릴 수도 없다. 가계부채가 많은 탓이다. 진퇴양난에 빠진 한은이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기조에 따라 7월에 0.50%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17일 금융계에 따르면, Fed가 15일(현지시각)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결정하면서 금리 상단 기준으로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1.75%로 같아졌다.
한은이 내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Fed가 예고대로 다음 달 26~27일(현지시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최소한 빅 스텝에 나선다면 한미간 0.50%포인트라는 '금리 역전'이 현실화한다. 자이언트 스텝을 결정한다면 금리격차는 더 벌어진다.
Fed는 금리전망을 나타내는 점도표에서 올 연말 미국 기준금리가 3.4%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만큼 Fed는 앞으로 계속 금리인상에 나설 뜻을 분명히 했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를 네 차례(7·8·10·11월) 남겨놓았다. 매번 0.25% 올린다면 앞으로 1%포인트 올라가 기준금리는 연 2.75%가 된다. 한번 0.50% 포인트 올리고 나머지는 0.25% 올린다면 연 3%가 된다. 그렇더라도 미국 보다는 낮아 금리역전은 불을 보듯 훤한 결과다. 미국과 금리수준을 맞추려면 빅스텝을 여러 번 단행해야 한다.
양국 기준금리가 역전되면 대규모 자본 유출이 일어날 수 있다. 국내 자본시장이 요동치는 것은 불가피하다. 미국 금리가 우리보다 높아지면 고금리를 뒤쫓는 외국인 투자 자금이 국내 시장을 이탈할 수 있다. 이 경우 원화가치 약세,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주가 하락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기준금리보다는 미국과 한국 채권금리 역전 가능성을 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외국인 자금 유출은 한미 양국 국고채 10년물 금리 차이가 거의 없거나 역전될 경우에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이날 기준 만기 10년짜리 한국과 미국 국고채 금리는 각각 3.767%와 3.391%로 아직 여유가 있다. 그렇더라도 미국이 기준금리를 대폭 올리면 양국 채권금리 격차도 급격히 좁혀질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한은도 빅 스텝을 포함해 기준금리를 잇따라 인상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한국도 7월에 빅스텝 결정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민지희 연구원은 16일 "Fed는 올해 기준금리 전망치를 3.4%로 상향했다"면서 "7월 FOMC에서 75bp를 추가로 올릴 것으로 전망하지만 4분기에는 Fed의 금리인상이 신중해질 듯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 국채금리는 이미 3%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미리 반영했다면서 인플레 경계심이 높은 상황이나 긴축 속도 관련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미국 채권시장도 완정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민 연구원은 6월 중 국고3년 금리는 3.65%까지 상승했는데 이는 기준금리가 3.35%까지 인상된 2011년 6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금통위는 2011년 상반기에 기준금리를 세차례 인상해 2.50%에서 3.25%로 올렸고 국내 경기가 둔화한 하반기에는 금리동결로 전환했다. 금통위의 금리인상 기조가 이어진 당시 국고 3년 금리 평균은 약 3.7% 중반을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국내 단기금리는 당분간 하향 안정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고 수익률 곡선도 평탄화 압력이 우세할 것으로 전망했다.
민 연구원은 "한국 금통위도 7월에 50bp를 올리고 8월에 25bp를 연속으로 올릴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국내도 4분기에는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민 연구원 예측대로라면 미국의 기준금리 상단은 7월 2.5%, 한국의 기준금리 상단은 8월 말 2.50%로 같아진다.
JP모건은 최근 "한은이 7월 빅 스텝을 단행한 뒤, 남은 세 차례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즉 올해 추가로 1.25%포인트 더 올릴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기준금리 상단은 3%가 된다.
한은은 대단히 신중하다. 말을 아낀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빅 스텝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다음 금통위까지 한 달 정도 남은 시간에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면서 "금리 격차 자체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국내 시장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외환·채권 시장 영향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반응을 보면서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게 복안인 셈이다.
박태정 기자 ttchu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