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금리 못올리는 이유...1000조 엔국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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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금리 못올리는 이유...1000조 엔국채 탓?
  • 이수영 기자
  • 승인 2022.09.25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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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145엔 뚫리자 24년 만에 외환시장 직접 개입
미일 금리차로 엔화 약세 불가피

일본 외환당국이 지난 22일(현지 시각)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가 1달러에 145.89엔까지 치솟자 외환 시장에 개입했지만 약발이 오랠 수 있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장개입으로 엔달러 환율은 140엔까지 떨어졌다가 하루 만인 23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142엔대에서 거래됐다. 일본 언론들은 "금리 인상과 함께 하지 않는 외환 개입은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엔저의 근본 원인인 미국과 일본 간 기준금리 차를 그대로 두고는 아무리 달러를 풀어도 엔저를 막기 힘들다는 뜻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며 기준금리를 인상해 현재 연 3.0~3.25%까지 올린 반면, 일본은 -0.1%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엔화가치가 달럴당 145엔을 돌파하자 일본정부와 일본 중앙은행 일본은행(BOJ)가 23일 시장에 직접 개입해 달러를 풀고 엔을 사들였다. 그럼에도 엔화가치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일본의 1만엔권, 5000엔권, 1000엔권 지폐. 사진=CNews DB
일본 엔화가치가 달럴당 145엔을 돌파하자 일본정부와 일본 중앙은행 일본은행(BOJ)가 23일 시장에 직접 개입해 달러를 풀고 엔을 사들였다. 그럼에도 엔화가치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일본의 1만엔권, 5000엔권, 1000엔권 지폐. 사진=CNews DB

그렇다면 왜 일본은 금리를 올리지 못할까? 바로 1000조 엔이 넘는 국채 이자 부담 때문이다.금리를 올리면 국채를 발행한 일본 정부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국채의 절반은 일본중앙은행 일본은행(BOJ)이 사들인 만큼 BOJ 부담도 급증한다. 일본은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을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펴면서 막대한 국채를 발행했는데 이 정책이 일본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도록 하는 발목을 잡은 '덫'이 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5일 기시다 후미오 정부가 구로다 하루히코 BOJ 후임자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지난 10년간의 양적완화로 엔화 약세와 재정준칙 상실 등 왜곡이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재정준칙과 시장왜곡 정상화를 차기 총재의 책무로 꼽았다.

일본은 경기부양을 위해 지난 10년간 국채를 발행해 통화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양적 완화 정책을 폈다.아울러 기준금리를 0% 수준에서 관리하는 '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했다. '아베노믹스 정책'의 골자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 중앙은행 '일본은행' 총재. 사진=아사히신문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 중앙은행 '일본은행' 총재. 사진=아사히신문

구로다 총재는 2012년 12월 재선출된 아베 신조 총리의 추천으로 일본은행 총재가 돼 '아베노믹스'를 실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금융 완화, 재정 완화, 구조 개혁이라는 아베가 쏜 '세 개의 화살' 중 가장 중요한 금융 완화 정책을 담당했다. 그는 당시 본원통화를 2년 동안 2배로 늘리는 대담한 통화 완화 정책을 폈다. 중앙은행인 BOJ가 국채는 물론, 회사채·기업어음까지 사들이며 통화량을 늘렸다. 2016년에는 마이너스 기준금리 정책까지 도입했다.

구로다는 돈을 과감히 풀어 2년 이내에 2%의 물가 상승률을 달성하겠다고 장담했다. 이처럼 전례없는 현금 경기부양을 금융시장은 '구로다 바주카포'라고 환영했다. 돈이 엄청나게 풀리면서 엔화 가치가 떨어지고 주가는 급상승했다.

국가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0년 전 500조엔대인 국채는 1065조 엔(약 1경 560조 원)으로 두 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아울러 국채 이자 부담도 크게 증가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 예산안에서 국채의 일부 원금 상환과 이자 부담을 위해 약 24조 엔을 책정했다. 일본 재무성은 최근 금리가 1% 오를 경우 국채 이자 부담은 2025년 기준으로 3조7000억 엔이 증가한다는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엔화 약세를 잡겠다고 금리를 인상하면 일본 정부의 국채 이자 부담을 늘리는 직격탄이 된다. 일본 국채가 일본 정부의 목을 조르는 상황이다. 

금리를 결정하는 BOJ도 국채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국채 수익률을 0%(0%에서 0.25~~-0.25%)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 국채의 절반인 540조 6000억 엔어치를 BOJ가 사들였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은 "정부가 엔저를 저지하는 외환 개입을 단행한 마당에 BOJ는 엔저를 유발하는 금융 완화를 지속하는 정반대 정책이 진행 중"이라면서 "이런 모순된 대목을 악용해 해외 투자자들이 엔화 매매로 돈을 벌려고 달려들 위험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23일 일본 당국이 24년 만에 단행한 외환 개입으로 엔화 가치 하락이 일시 멈췄지만 앞으로도 금융 당국의 저지선이 환율 시장에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엔화가 145엔까지 밀릴 때마다 당국이 엔화를 사들이며 하락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일본 정부가 외환 개입할 때마다 일시적인 효과만 있었을 뿐 엔저 추세를 막진 못했다. 1997년 12월에 외환 개입을 단행, 131엔을 125엔으로 떨어뜨렸지만 1998년 초에 다시 130엔으로 복귀했다. 그해 6월에 다시 146엔일 때 개입해 135엔까지 붙잡았지만 같은 해 8월에 147엔으로 치솟았다.

외환 개입만으론 역부족이지만,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비둘기파(통화 안화 선호) 정책 안내를 발표했다. 구로다 총재는 22일 "금융 완화를 지속하고,'당분간' 금리를 올릴 일도 없다"면서 "당분간은 수개월이 아닌 2~3년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여전히 경기 침체 상황이고, 물가상승율도 2%대인 만큼 기준금리 인상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일본의 물가상승률은 1월 0.5%에서 4월 2.5%로 껑충 뚜 뒤 6월 2.4%로 하락했닥, 7월 2.6%, 8월 2.8%로 상승 속도가 빨라졌다. 이는 2014년 10월 2.9%를 기록한 이후 7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물가 상승률이다.

그럼에도 BOJ는 9월 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 -0.1%, 10년 만기 국채(JGB) 수익률 0% 수준(0.25%)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23일 10년 만기 JGB 수익률은 0.24%를 나타냈다. 이는 BOJ가 상한선으로 정한 수익률 0.25%가 넘는 국채가 시장에 나오면 BOJ가 무제한으로 국채를 사들이고 있는 결과로 풀이된다. BOJ는 지난 20일에는 만기 10년짜리 국채 8361억 엔 어치를 매수했는데 이는 6월20일 이후 최대 규모였다. 

결국 미국이 경기 침체를 각오하고 금리를 올려 시중의 달러를 회수하는데도일 일본은 1000조엔 이상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국채 부담에  정반대로 제로 금리를 유지하며 엔화 공급량을 늘리는 정책을 고수하니 엔화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엔화 약세에 따른 고물가가 일본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고 경제의 목을 조를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이수영 기자 isuyeong20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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