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우리나라의 내년 성장률을 1.8%로 제시했다. 내년 성장률이 1%대로 내려간다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0.9%)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 된다.
■KDI, 내년 성장률 1.8%, 물가상승률 3.2% 전망
KDI는 10일 발간한 ‘2022년 하반기 KDI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내년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1.8%로 전망했다. KDI의 전망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2.7%, 원유 도입단가(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84달러 안팎, 원화가치가 올해보다 4% 정도 절하(환율상승)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
소비자물가는 국제유가가 안정되면서 상승폭은 축소되겠으나, 여전히 물가안정 목표(2%)를 웃도는 3.2%의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취업자 수는 양호한 고용 여건이 유지됨에도 기저효과와 고령화로 증가폭이 올해(79만1000명)에 비해 크게 준 8만1000명이 될 것으로 KDI는 내다봤다.
민간소비는 실질구매력 저하와 시장금리 상승으로 재화소비가 둔화함에 다라 올해(4.7%)보다 낮은 3.1% 증가하고 설비투자는 반도체 경기 둔화와 대외 불확실성 증가로 올해(-3.7%)에 이어 내년에도 0.7%의 낮은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건설투자는 주택시장 부진과 자금조달 여건 악화로 올해(-0.3%)에 이어 내년에도 0.2% 증가하는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KDI는 전망했다.
수출은 국가간 이동이 확대되고 서비스 수출이 회복됨에도 글로벌 경기 둔화로 올해보다 5.7% 줄어든 6590억 달러에 그치지만 수입도 6.7% 감소하면서 무역수지는 올해(114억 달러)보다 더 늘어난 17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KDI는 내다봤다.
KDI는 "미국 금리 인상 가속화가 지속되거나, 글로벌 경기가 크게 위축되면 우리 경제의 성장세도 수출과 제조업을 중심으로 더욱 둔화할 것"이라면서 "대내적으로는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거나 금융시장에 신용 경색이 발생할 경우 심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KDI는 "우리 경제가 경기둔화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면서 "내년에도 이런 둔화 국면에 계속 머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내년 경기흐름은 '상저하고'의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KDI는 예상했다. 상반기 성장률 1.4%, 하반기 2.1%다. KDI는 "년 상반기에 경기가 가장 많이 둔화하고 그 수준에서 서서히 하반기에 회복되는 정도로 보는 것"이라면서 "내년 1·2분기 상당히 낮은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으나, 일단 현재 베이스라인 시나리오에서는 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릴 위험 요인으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속화와 중국 경기의 급락,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 등 대외 요인과 회사채 시장을 중심으로 한 기업 자금조에 따른 금융시장 신용 경색, 기준금리의 가파른 상승이 꼽혔다. KDI는 "빅스텝(기준금리를 한번에 0.5%포인트 인상) 단행이 있었는데,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우리 경기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천천히 금리를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 2020년대 이후 인구감소와 급속한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로 우리 경제의 성장세는 점차 둔화되고, 2050년에는 경제성장률이 0.5%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우리 경제의 구조개혁을 적극 추진하며 생산성을 개선함으로써 인구구조 변화의 부정의 영향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규철 실장은 "대외 개방, 규제합리화 등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하는 정책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면서 "높은 생산성에도 출산과 육아 부담으로 경제활동 참가가 저조한 여성과 급증하는 고령층이 노동시장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외국인력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노동공급 축소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국내외 기관 대부분 1%대 전망...한은 24일, 정부 다음달 내년 전망 발표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1%대로 전망한 것은 KDI만이 아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피치(Fitch)는 1.9%, 한국금융연구원은 1.7%로 전망했다. 하나은행 산하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달 1.8%를, 대신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은 최근 각각 1.6%, 1%를 제시했다.
금융연구원은 지난 8일 "대외불확실성에 의한 성장의 하방 위험과 물가의 상방 위험이 높다"면서 "내년 주요국 정부가 긴축적인 통화·재정정책을 이어가고 경기 반등 모멘텀도 약화해 성장률이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좀 후하게 봤다. 두 기관은 지난달 우리나라의 내년 성장률을 2.0%, 2.2%로 제시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지난 6월과 8월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각각 2.5%, 2.1%로 제시했는데 이를 낮출 가능성이 있다. 한은은 오는 24일 금통위에서, 정부는 다음 달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해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내년은 지난 전망치인 2.1%를 하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의 특파원 간담회 자리에서 “내년도 (경제 성장률) 정부 전망치가 당초 2.5%였는데 분명히 그보다 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라고 발언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초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자리에서 2.1%를 내년도 전망치로 직접 언급했다. “최근 금리 상승 추세 등으로 인한 성장 둔화세를 반영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박태정 기자 ttchu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