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한적한 산골마을 '오하라'에서 보낸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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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한적한 산골마을 '오하라'에서 보낸 겨울
  • 이수영 기자
  • 승인 2023.01.23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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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추위에 몸과 마음이 지쳐갑니다.이럴 때 따뜻한 물에 몸을 깊숙이 담그고 머리를 비운다면 활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한 각국의 규제도 풀리고 있으니 훌쩍 떠나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한국에서 가깝고 한적한 데다 온천도 있는 교토 근교 오하라가 제격일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의 무게를 덜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 교토 외곽 오하라 사찰 산젠인 아래 있는 사하촌의 단풍. 사진=이수영 기자
일본 교토 외곽 오하라 사찰 산젠인 아래 있는 사하촌의 단풍. 사진=이수영 기자

오하라로 가는 길은 간편합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간사이 공항으로 갑니다. 거기서 하루카라는 기차를 타고 교토역으로 갑니다. 다시 거기서 시외버스를 타고 바로가거나  지하철을 타고 국제회관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가면 그만입니다. 지난해 12월14일부터 17일까지 오하라와 교토를 둘러봤습니다.

오하라의 한적한 시골마을 전경. 사진=이수영 기자
오하라의 한적한 시골마을 전경. 사진=이수영 기자

12월14일 오후 도착한 오하라는 한적한 시골이었습니다.산맥으로 둘러싸인 오하라는 예로부터 귀족들의 안식처라고 합니다.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우리나라의 자그만 읍 시외버스 터미널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작고 조용했습니다. 어려울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일본어를 모르면 그냥 걸기만 하면 됩니다다. 일본어를 조금 아는 터라 전화를 걸어 도착했다고 하니 잠시 뒤 료칸 직원이  손수 차를 몰고 왔습니다. 가는 길은 채 십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하라의 민박 료칸 오하로노사토 모습.노랗게 물든 단풍이 객을 맞이했다. 사진=이수영 기자
오하라의 민박 료칸 오하로노사토 모습.노랗게 물든 단풍이 객을 맞이했다. 사진=이수영 기자

민숙(민박) 오하라노사토 료칸 입구, 현관의 안내 데스크에서부터 고풍스런 분위기가 물씬 났습니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녹색 공중전화기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어항 위에는 낙시하는 조그만 고향이 인형들이 앉아있었습니다. 여권을 주고 방 열쇠를 받으면 알아서 방으로 가는 게 전부였습니다. 2인실 다다미 방을 배정받았습니다. 방은 아늑했고 방 한 가운데는 코다츠라는 일본식 난방기구가 있었습니다. 일종의 담뇨를 두른 테이블 아래 뜨거운 바람이 나오도록 된 난방기구입니다. 일본이 따뜻한 나라라고 하지만 온돌이 없고 습한 기온에 체감하는 기온은 훨씬 낮아 이런 난방기구를 발명한 듯 했습니다.

오하라노사토 료칸 뒷마당의 고요한 저녁. 사진=이수영 기자
오하라노사토 료칸 뒷마당의 고요한 저녁. 사진=이수영 기자

창밖으로 료칸 전경이 들어왔습니다. 료칸 뒤 빽빽한 삼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나무향과 새소리들이 실려왔습니다. 평화. 그것뿐이었습니다.

잠시 뒤 옷을 갈아입고 온천으로 갔습니다. 일본 료칸은 남탕과 여탕을 하루하루 번갈아 운영합니다. 물은 그리 뜨겁지 않았습니다. 밖에 커다란 가마솥에 물이 넘치고 있어 가봤습니다. 아무도 없는 야외,가마솥에서 새소리와 바람소리,서서히 다가오는 어둠과 함께 온천물을 몸에 감으니 피로가 싹 사라졌습니다. 물 온도는 섭씨 26도라고 하지만 더 따뜻했습니다.

깊어가는 겨울, 새소리, 서늘한 바람, 하늘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별을 보면서 지난 세월, 다가올 시간을 생각했습니다. 

잠시 뒤 방으로 와서 식당으로 갔습니다. 일본의 료칸은 저녁이 없다고 했지만 이곳은 달랐습니다. 이곳의 명물인 두부 '유도후(#湯豆腐)' 전골이 나왔습니다. 물이 맑기로 유명한 곳에서 재배한 콩으로 만든 두부,버섯, 양파 등 야채를 넣었습니다. 맛은 가히 일품이었습니다. 여기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일본 사케를 더 겼들였습니다.​

기린 식당 옆 작은 카페. 식당에서 뷔페 점심을 먹고 나서 흐르는 개울물을 보면서 커피 한 잔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카페였다. 사진=이수영 기자
기린 식당 옆 작은 카페. 식당에서 뷔페 점심을 먹고 나서 흐르는 개울물을 보면서 커피 한 잔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카페였다. 사진=이수영 기자

다음날 새벽, 깨자마자 오하라노사토 마을 뒷산을 걸었습니다. 뻭빽히 들어선 키큰 삼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는 수림, 들리는 것은 물쇠와 바람소리뿐이었습니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매실 짱아지(우매보시)를 샀습니다. 나무향을 맡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신사를 돌아보려다 그냥 동네를 둘러본 뒤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리버사이드 식당'으로 걸어갔습니다.

가는 길에 본 일본의 시골 주택은 정갈했습니다. 단층이나 2층 집이었는데 깔끔하게 단장이 돼 있었습니다. 지붕은 개량식 기와로 덮여 있었습니다. 종종 동백으로 울타리로 친 집이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집을 보면서 등장한 '기린' 리버사이드 식당은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말이 '리버(강)'이지 우리나라로 치면 그냥 '개울'입니다.개울옆 식당이 더 어울립니다. 그런데 뷔페식으로하는 하는 음식맛은 호텔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일본에서는 손님들이 자기 순서를 써넣고 기다리기 때문에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는 볼썽사나움은 볼 수 없었습니다.

오하라 리버사이드 식당 '기린'. 예약제로 운영되는 만큼 여행객들은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가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적고 기다려야 한다.사진=이수영 기자
오하라 리버사이드 식당 '기린'. 예약제로 운영되는 만큼 여행객들은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가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적고 기다려야 한다.사진=이수영 기자

듬직하게 먹고 난 뒤 바로 옆에 있는 자그만 카페에서 하우스 커피 한 잔, 일본의 명품 위스키 야마자키 한 방울을 넣은맥주 한 잔을 마셔봤습니다. 카페와 건너편 교토 오하라 학교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782년에 창건된 절인 교토 오하라 산젠인. 입장료가 어른 700엔이다.들어가면 신발을 벗고 비닐봉지에 담아 객전을 둘러봐야 한다.염불소리나 풍경소리는 들리지 않고 스님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사진=이수영 기자
782년에 창건된 절인 교토 오하라 산젠인. 입장료가 어른 700엔이다.들어가면 신발을 벗고 비닐봉지에 담아 객전을 둘러봐야 한다.염불소리나 풍경소리는 들리지 않고 스님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사진=이수영 기자

가페를 나와 유명한 사찰과 정원으로 이뤄진 산젠인으로 향했습니다. 걸어서 족히 10분만 가면 도착합니다. 길을 잃어 정반대 방향으로 가다 다시 돌아갔습니다. 오히려 일본 농촌의 들녘을 구경해 좋았습니다. 무나 배추를 심어놓은 듯한 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역시 조용했습니다. 바람과 정적만이 한국에서 온 여행객을 맞이했습니다.

산젠인 객전에서 밖을 보니 오하라와 둘러싸고 있는 산맥이 눈에 들어왔다.사진=이수영 기자
산젠인 객전에서 밖을 보니 오하라와 둘러싸고 있는 산맥이 눈에 들어왔다.사진=이수영 기자

어른 한 사람에 700엔을 내고 들어간 산젠인도 쥐죽은 듯 고요했습니다. 782년에 창건됐다는 암자에 뿔리를 둔 산젠인은 메이지시대 이후부터 '산젠인'으로 칭해졌으며 메이지유신 이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고 합니다.경내에는 왕생극락원이라는 불당이 있고 국보 아미타삼존상이 진좌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부에는 슈헤키엔(취벽원)과 유세이엔(유청원)2개의 정원이 있습니다.슈헤키엔은 연못과 방위 등을 배치해 꾸민 정원이고세이엔은 삼나무와 단풍나무를 중심으로 꾸민 간소한 정원입니다.

신발을 벗고 비닐 봉지에 담아서 내부를 둘러봤습니다. 긴 복도로 이어진 다다미 방들이 많았습니다. 어느 방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밖을 보니 오하라와 산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절이긴 하되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승려들은 없었습니다. 한 분이 대웅전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정원이긴 하되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키큰 삼나무,이끼밭, 어디든 흐르는 맑은 물, 잘 정리된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다다미 방으로 둘러싸인 정원에는 동백나무가 붉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분수대 끝 대나무에서 맑은 물이 쉼없이 흘러내리면 정적을 깨뜨렸습니다.

내부를 다 둘러보고 침전을 나오면 이끼정원 유세이엔이 손님을 맞이 합니다. 키 큰 삼나무가 늘어선 정원에 융단같은 이끼가 깔려있었습니다. 이승의 세계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이끼 정원'이라는 별명이 그냥 붙은 게 아니었습니다. 이끼가 다칠새라 들어가지 못하고 조심조심 둘러보면서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키큰 삼나무가 서 있는 산젠인 침전 앞 이끼정원. 뒤에 보이는 건물이  왕생극락원 건물이다.사진=이수영기자
키큰 삼나무가 서 있는 산젠인 침전 앞 이끼정원. 뒤에 보이는 건물이  왕생극락원 건물이다.사진=이수영기자

도착한 곳이 무료 시음장. 건강에 좋다는 '다시마 차' 한 잔을 마셨습니다. 곱게 늙은 여성 판매원이 한국을 둘러보고 만들어 건강에 좋다며 살 것을 권했지만 차마 사지 못하고 그냥 돌아섰습니다. 아무도 없는 절에서 혼자 온 친절해 보이는 일본인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해 찍었습니다. 그는 신심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두 손을 합장하고 기도를 올리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돈을 내고  몇 글자를 적은 책자를 받았습니다.  

일본 교토 외곽 오하라의 사찰 산젠인의 관음당 앞  전경. 사진=이수영 기자
일본 교토 외곽 오하라의 사찰 산젠인의 관음당 앞  전경. 사진=이수영 기자

삶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나와 가족의 건강, 자식의 성공을 빌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발을 돌렸습니다. 제법 찬바람이 옷깃을 스쳤습니다. 어느새 갈길은 산젠인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산젠인 박물관에 닿았습니다. 주저않고 들어가니  일본 근대 수묵화들이 걸려있었습니다. 아마도 일본 근대 수묵화의 정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젠인 연못에 있는 이끼낀 돌들.사진=이수영 기자
산젠인 연못에 있는 이끼낀 돌들.사진=이수영 기자

키큰 나무와 일본식 사찰, 일본식 정원,일본식 수묵화를 둘러보는 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오후 2시8분에 표를 사서 들어갔는데 나와보니 3시18분이었습니다. 너무 빨리 둘러봤다는 후회가 막심했습니다.

산진인 객전에 걸여있는 그림. 사진=이수영 기자
산진인 객전에 걸여있는 그림. 사진=이수영 기자

산젠인을 나와 곱게 물든 단풍이 많은 마을의 굽어진 길을 걸어내려왔습니다. 일본 어딜 가나 그렇듯 깨끗한 시골 마을의 가게들은 온갖 '짱아찌'상품을 팔고 있었습니다. 산젠인에서 다시 료칸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길은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하루에 근 2만보를 걸어니 피로가 몰료왔습니다. 료칸으로 돌아오자 마자 다시 뜨거운 온천에 몸을 담갔다가 노천탕에서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다음날 교토로 가는 발걸음은 그 어느때보다 가벼웠습니다. 

오하라의 사찰 산젠인 입구를 알리는 비명.사진=이수영 기자
오하라의 사찰 산젠인 입구를 알리는 비명.사진=이수영 기자

오하라는 걷기에 안성맞춤인 시골입니다. 걷는다는 것은 몸을 고달프게 하지만 생각을 하는 좋은 기회를 줍니다. 걸으면 지난날을 반성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그래서 성숙해지겠죠. 여행이 견문을 넓힌다는 게 빈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isuyeong20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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