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조항 미국 반도체법, 민관 지혜 모아 해법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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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조항 미국 반도체법, 민관 지혜 모아 해법찾아야
  • 박태정 기자
  • 승인 2023.03.03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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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반도체법 때문에 말이 많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과 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주겠다는 게 이 법의 골자다.그런데 이 법을 두고 말이 많은 것은 법안 내용이 한국에게는 '독소조항'이 많기 때문이다. 받아들이기 힘들고 거부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 조건 탓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나라 간판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반도체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기업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오른쪽)이 지난 2월1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돈 그레이브스 미국 상무부 부장관과 면담을 갖고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 통상현안, 수출통제 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양국간 첨단산업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기념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오른쪽)이 지난 2월1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돈 그레이브스 미국 상무부 부장관과 면담을 갖고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 통상현안, 수출통제 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양국간 첨단산업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기념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 따라 52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보조금과 25%의 투자세액공제를 해주는 6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1억5000만 달러 이상 지원금을 받는 기업이 예상을 초과하는 이익을 올릴 경우 일부를 미국 정부가 환수하고,  반도체 생산과 연구 시설을 미국 정부에 공개하는 기업에 보조금 우선순위를 두며, 보조금을 활용한 배당금, 자사주 매입을 제한하고 보육 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등의 극히 부담스러운 조건을 붙였다.

우리는 미국 정부의 조건이 지나치다고 판단한다. 반도체 업계에 첨단기술을 두고 치열한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핵심 보안시설의 문을 열라는 것은 지극히 무리한 요구다. 초과이익을 환수하고 기업의 회계장부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경영 간섭은 물론이요 시장 경제 국가에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든 처사다.

이러니 미국 내에서도 기업들에 부담을 주면서 반도체 공장 건설을 어렵게 하는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진퇴양난'의 처지가 된 삼성과 SK하이닉스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 반도체를 생산하고,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서 D램을 만든다.  보조금을 받으면 중국 등에 10년간 신규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가드레일' 조항을 준수해야 한다. 가드레일 조항은 향후 10년간 우려대상국에서 반도체 제조능력 확장과 관련된 거래를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우리 기업들이 가장 크게 걱정한 사항이었는데 현실화한 것이다. 

이 때문에 득실 계산이 대단히 복잡해졌다. 미국의 요구에 미국에 투자를 하고 조금을 받았다가는 미국에 발목을 잡히는 것은 물론, 추가 투자를 못해 거대한 중국 시장을 결국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참여는 우리나라에겐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라는 점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반도체 지식재산권과 생산에 필요한 장비 공급망을 장악한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반도체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중국을 배척하는 일은 우리 경제를 수렁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만큼 부작용이 지나치게 큰 선택지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도, 중국 시장도 모두 필요한 우리나라와 우리기업들이 이런 난제를 풀 해법을 찾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다.

이는 삼성과 SK  두 기업의 노력에만 맡겨 둘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나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해서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고, 미국 대통령도 거듭 감사를 표시했다는 점을 미국 정부와 의회, 미국 국민, 전문가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이를 통해 보조금 조건의 예외 인정, 반도체 중국 수출 제한 유예 기간 연장 등의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반도체 생산국인 일본과 대만 등과도 공조하는 일도 필요하다.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제정으로 한국 기업이 보조금 차별을 당할 때처럼 뒷북 대응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미국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되 무리한 요구에는 적극 대응해야 한다. 한미와 한중이 모두 '상생'하는 해법을 이끌어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가드레일 세부규정 마련 과정에서 우리 기업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관계당국과 계속 협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외교부도 지원을 다하기로 했다고 하나 행정부 수반인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중국과 등을 지고, 미국과 손을 잡는 게 국익을 위한 유일한 길은 아니다. 수면 위 '공식 외교' 와 수사 아래 수면 밑에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호수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듯한 백조가 물밑에서 발을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정부는 이럴 때 정치한 대응전략을 짜고 민간 기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한편,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라섰다. 

박태정 기자 tt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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