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자보호한도 올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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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자보호한도 올릴 때다
  • 이수영 기자
  • 승인 2023.03.2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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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을 계기로 우리나라 예금자보호 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예금자보호한도를 높여서 불안심리를 잠재워야 유사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을 막아 금융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다. 우리나라가 예금자보호정책을 도입한 지도 어언 20년이 넘었고 경제규모도 커진 만큼 한도액 상향조정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금융회사 파산시 5000만 원 한도내에서 보험금을 지급하는 예금보험공사.예금보험한도를 현행 5000만 원에서 더 올리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사진=예금보험공사
금융회사 파산시 5000만 원 한도내에서 보험금을 지급하는 예금보험공사.예금보험한도를 현행 5000만 원에서 더 올리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사진=예금보험공사

예금자보호한도는 금융회사가 파산 등으로 예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됐을 때 예금보험공사가 금융회사 대신 지급해주는 최대한도 금액으로 금융회사들이 판매하는 원금 보장형 상품에 적용된다. 그런데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 미국 SVB에서 하룻만에 예금 55조 원이 빠져나가는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즉 '뱅크런'이 발생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예금자보호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무엇보다 은행이 아닌 저축은행 예금자가 많이 늘어난 탓이다. 

우니라라 예금자보호한도는 외환위기 직후라고 할 수 있는 지난 2001년 도입됐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5736달러였는데 그 세 배 수준인 5000만 원으로 정해졌다.  

예금보험공사의 예금보험의 구조.사진=예금보험공사
예금보험공사의 예금보험의 구조.사진=예금보험공사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커진 것이다. 우리나라 1인당 GDP는 지난해 3만5003달러로 2배 이상 불어났다.그런데도 예금자보호한도는 22년째 그대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도 낮은 수준이다. 미국은 25만 달러(약 3억2700만 원), 영국 8만5000파운드(약 1억3500만 원), 일본 1000만 엔(약 1억 원) 등이다.

게다가 예금자보호한도를 넘어서는 은행과 저축은행 예금 비율이 상승했다. 예금보험공사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희곤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예금자보호법상 보호 한도 5000만 원을 넘어서는 은행 예금의 비율은 2017년 61.8%(724조3000억 원)에서 지난해 6월 기준 65.7%(1152조7000억 원)로 상승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 정치권은 물론 금융당국은 예금자보호한도를 살피고 있다. 우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4일 신한은행에서 열린 '상생금융 간담회'에서 "예금자보호한도에 대한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저축은행업계는 우리나라의 예금자보호한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낮으며 저축은행에 대한 금융 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 개선, 한도 상향에 따른 수신고 확대 등을 위해 한도를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축은행에 돈 맏겨도 돼?'라는 식의 인식을 깨려면 보호한도를 1억 원 정도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축은행은 수신고 확대라는 부수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죽기살기로 물고 뜯는 정쟁을 벌이는 여야 정치권도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의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지난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2001년 기존 2000만 원 한도에서 상향된 이후로 20년 넘게 그대로 묶여있는 것으로 시대에 맞게 예금보호 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양기대 의원은 예금자 보호 한도의 최소 금액을 1억 원으로 상향하고 예금보험공사가 매년 금융업종별로 한도를 결정하도록 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지난 24일 대표발의했다. 민주당은 SVB 파산 사태로 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5000만 원인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억 원으로 대폭 높일 방침을 정했다.

물론 부작용을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예금자보호한도가 늘어나면 과도한 예금금리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 은행이 망해도 예금을 많이 보장하니 은행은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고위험·고수익 투자를 늘리고, 예금자들도 위험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높은 수익을 주는 은행으로 몰려갈 가능성이 높다.

고액 자산가들이 높은 금리를 주는 은행이나 주식과 채권으로 한꺼번에 자금이 이동하는 새로운 형태의 뱅크런이 발생하면서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반면, 예금보호한도를 높이면 예금보험료가 올라가는데 금융사들은 소의 고액 예치자 탓에 올라간 예금보호료를 전체 금융소비자들에게 전가할 게 뻔하다.

한마디로 은행과 예금자의 모럴해저드, 금융소비자 이익훼손 등이 예상되는 만큼 예금자보호한도를 높이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즉 현행 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찬반 양론 모두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고공행진하는 인플레이션과 이를 억제하기 위한 금리인상, 국내외 불안 심리를 두루 감안한다면 예금자보호 제도는 손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경제규모에 맞게 적정한 수준으로 고칠 때가 왔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미국과 스위스와 같은 선진국에서도 뱅크런이 발생하는데 한국이라고 해서 뱅크런이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예상되는 부작용, 도덕적 해이는 보완책을 마련해서 대응하면 될 것이다. 

이수영 기자 isuyeong20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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