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도 뜨거운 예금자보호한도 인상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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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도 뜨거운 예금자보호한도 인상 논란
  • 박고몽 기자
  • 승인 2023.03.2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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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캐나다에서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예금자보호법상 보호한도를 높리자는 것이다. 미국 은행 파산 사태 후 "내 예금은 안전한가"라는 질문을 하는 캐나다인들이 많아진 결과로 보인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솓뚜껑 보고 놀란다'는 한국 속담이 캐나다에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잇는 모습이다. 캐나다의 현행 예금자보호한도는 10만 캐나다달러인데 이것을 20만 달러로 높이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내돈이 안전한지' 신뢰하지 못할 경우 대규모 예금인출사태(뱅크런)이 발생하고 은행을 비롯한 예금기관들이 결국 도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정 수준'으로 높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유동성 위기 후 대규모 예금인출사태(뱅크런)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후 캐나다에서도 예금자보호한도를 높이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사진은 캐나다 은행권 지폐. 사진=뱅크오브캐나다
유동성 위기 후 대규모 예금인출사태(뱅크런)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후 캐나다에서도 예금자보호한도를 높이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사진은 캐나다 은행권 지폐. 사진=뱅크오브캐나다

캐나다 유력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포스트가 지난 15일에 보도한데 이어 CBC 방송이 26일(현지시각) '미국 은행 파산 후 캐나다가 예금보험한도를 올릴 때가 됐나'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런 보도는 그만큼 미국 은행 파산 이후 캐나다에서도 은행 파산으로 예금을 날릴 것이라는 걱정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미국에서 예금자보호제도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보험가입 금융기관의 예금자가 보유한 적격 계좌에 대해 최대 25만 달러까지 보호한다. 예금보험에 가입한 은행 등이 파산하면 FDIC가 25만 달러 범위안에서 예금을 지급한다. 그 이상은 보호대상이 아니어서 예금자는 다 날릴 수도 있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일부 은행의 파산이 은행시스템 전체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예금전액을 보장하겠다고 밝혀 큰 파문을 낳았다. 

현재 캐나다의 예금보자보호제도는 미국과 흡사하다. 연방기관인 예금보험공사(CDIC)가 수십개의 회원 금융회사들이 파산할 경우 회원 금융회사들을 대신해 적격 예금자들에게 보호한도 내에서 예금액을 지급도록 하고 있다. 예금자들은 예금하는 은행에서 8종류의 계좌에 대해 1인당 최대 10만 캐나다달러까지 예금보호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예금자들은 자산을 여러 은행에 예치할 수 있고 보호받는 예금액은 10만 달러를 훌쩍 넘어간다.

1967년 설립된 CDIC는 그동안 보험한도를 꾸준히 늘려왔다. 설립 초기에는 적격 예금에 대한 보호한도가 2만 캐나다달러였다. 그 수치는 16년 만인 1983년 6만 캐나다달러로 올라갔다. 온타리오 주정부가 3개 신탁은행 자산을 몰수한 직후였다. 이어 22년 후인 2005년 이 한도는 10만 캐나다달러로 높여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0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CDIC의 보호한도 10만 캐나다달러는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긴급기금이 궁할 때 보장받도록 한다는 캐나다 연방기금공사(CDIC)의 트위터 선전물. 사진=CDIC 트위터
긴급기금이 궁할 때 보장받도록 한다는 캐나다 연방기금공사(CDIC)의 트위터 선전물. 사진=CDIC 트위터

문제는 3년 전에는 적절했을지 몰라도 미국의 SVB가 파산하고 스위스의 크레디트스위도 UBS에 합병되고 독일의 도이체방크 주가가 급락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캐나다 예금보호한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보호한도 25만 달러는 캐나돈으로는 34만 달러다. 약 3.4배다. 그것도 10년 전에 두 배로 올린 것으로 캐나다의 보호한도는 턱없이 낮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2005년 정해진 10만 캐나다달러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14만 캐나다달러 이상이라고 조언한다. 즉 최소 14만 캐나다달러 이상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캐나다은행신탁회사협회(Banks and Trust Companies Association, BATCA)가 지난달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재무장관에게 보호한도 인상을 건의했다. 이 단체는 보호한도를 20만 캐나다달러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BATCA는 한도를 올리면 뱅크런이 은행과 예금자에게 줄 손실에 대한 염려를 줄이면서도 캐나다 금융시스템은 안정돼 있다는 강한신호를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캐나다은퇴자협회(Canadi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 CARP)는 한도를 최도한 두 배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금 뭉칫돈이 든 계좌 보호한도가 10만 달러라는 것은 너무 적다고 한다. 은행 파산시 보호한도가 낮아 은퇴자들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이 협회는 주장한다.

그러나 캐나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은 캐나다에서 주요 은행이 파산할 리스크는 매우 낮다고 강조한다. 캐나다 은행업계는 다각화한 예금기반을 가진 소수의 대형 은행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60여개 은행을 대표하는 단체인 캐나다은행협회(Canadian Bankers Association)가 대표 단체이다. 은행협회는 엄격한 CDIC와 연방정부가 예금을 보호하고 있고 금융시스템은 안전하고 회복력이 있으니 예금자들은 안심하라는 메일을 보냈다.

또 전문가들 사이에 정확히 어느 정도의 예금보호가 필요한 지에 대한 컨센서스는 없다고 한다. 예금보호제도는 은행들이 과도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예금유치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면서도 예금자들에게 "돈이 안전하다"는 신뢰를 주는 정도라면 충분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럼에도 미국 SVB파산 후폭풍이 가라앉으면 캐나다도 예금자보호제도를 꼼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은행협회도 보호한도 인상에 응할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은행협회는 캐나다 언론인  CBC에 "CDIC와 현재의 틀이 적절한지를 계속 탐색하는 작업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보호한도 인상이 필요한다는 결과가 나와도 곧바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며 보호한도 검토 권한을 가진 재무부 승인도 받아야 하고 입법절차도 거쳐야 하는 만큼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예금보험제도는 은행 파산시 예금자의 돈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한도를 올리면 위기 발생 시 예금자를 보호하고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다. 반면, 예금보험 가입 금융회사들은 고금리를 제시하면서 고액자산가 유치에 나설 수 있다. 고액 자산사들도 고금리를 주는 은행으로 몰려드는 새로운 '뱅크런'이 발생하는 부작용을 경계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캐나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한도를 높인지도 18년이 지났고 금융회사들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캐나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1967년 3217.달러에서 1983년 1만3425.1달러, 2005년 3만6382.5달러, 2021년 5만1987.9달러로 증가했다. 16년 사이에 경제규모가 약 1.4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경제규모에 걸맞은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예금자보호한도를 훨씬 초과하는 예금규모다 늘어났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CDIC의 결심만 남은 것 같다.  예금을 보호하고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몬트리올(캐나다)=박고몽 기자 clement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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