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3일 기준금리를 3.50%로 동결하고 통화 긴축 기조를 이어갔다. 지난해 2월 이후 11차례 연속 동결로이다. 물가불안이 이유다. 환율 상승 우려와 가계부채 증가 관측, 한미간 금리차이에 따른 자본유출 예상 등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열린 올해 상반기 마지막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연 3.50%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로써 한국과 미국(연 5.25~5.50%)간 기준금리 차이(최대 2%포인트)는 그대로 유지됐다.
한은은 금통위 후 배포한 통화정책 방향에서 "국내경제는 성장세가 예상보다 개선된 가운데 물가상승률의 둔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물가 전망의 상방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기 때문에 물가가 목표수준으로 수렴할 것으로 확신하기는 아직 이른 상황"이라면서 "따라서 이러한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이어 "이 과정에서 인플레이션 둔화와 성장세 개선 흐름,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 가계부채 증가 추이, 주요국 통화정책 운용의 차별화와 지정학적 리스크의 전개양상을 면밀히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한은이 금리를 또 동결환 데는 물가 불안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올해 2월(3.1%)과 3월(3.1%) 3%대를 유지하다가 4월 2.9%로 석 달 만에 2%대로 내려왔다. 그렇지만 과일을 비롯한 농축수산물이 10.6%나 치솟아 한은은 2%대 안착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도 최근 물가 상황 점검 회의에서 "앞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근원물가(에너지·식품 제외)를 중심으로 둔화하겠지만, 유가 추이나 농산물 가격 강세 기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환율 흐름 역시 한은이 금리를 섣불리 낮추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지고 이란·이스라엘 무력 충돌까지 발생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가치가 오르자 원달러 환율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16일에는 장중 1400원대까지 오른 이후 다소 진정됐지만 여전히 1360원대에 머물고 있다.
환율 상승(원화 가치가 하락)은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을 높여 수입물가 상승에 이어 국내 소비자 물가를 올리는 요인이 되는 만큼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한은이 환율 상승을 초래할 금리인하를 단행할 수 없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은은 이날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5%로 올려잡은 것도 금리인하를 막은 요인으로 꼽혔다. 성장률 전망치가 지난 2월 전망보다 0.4%포인트 높아지면서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의 명분이 사라졌다는 게 중론이다.
한은은 올해 전망치를 지난 2022년 11월에 2.3%로 제시한 이후 지난해 2월(2.4%)과 5월(2.3%), 8월(2.2%), 11월(2.1%)에 수정했다.
하나증권 김상훈 연구원은 금통위 결정에 대해 "예상보다 비둘기적이었다"고 총평했다. 김상훈 연구원은 "성장 개선으로 물가 상방 위험은 커진 상황이다"면서 "내수의 상대적 부진과 양극화를 고려해 물가는 기존 전망 경로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인하 시점 논의는 아직 없었다"고 지적했다. 하나증권은 하반기 2차례 금리인하 전망을 유지했다.
한국투자증권의 문다운 연구원은 "예상을 웃도는 성장은 물가 목표 수렴에 대한 확신을 갖기까지 인내심을 더해주는 요인"이라면서 "한투증권은 금통위가 올해 1위, 내년 2회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문다운 연구원은 "한투증권은 Fed의 금리 인하가 4분기 1회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며, 한국은행이 선제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에 부담스러운 대외여건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박태정 기자 ttchun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