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 안정의 고삐를 죄고 있다.정부는 하반기에 물가를 2%대로 안정시키겠다며 국민들이 물가급등을 체감하고 있는 식품업체들에게 가격 인상을 자제하거나 인상시기를 분산할 것을 요청하고있다. 물가가 급등하면 경제주체인 가계의 소득을 갉아먹는 것과 같은 만큼 정부 당국의 물가 안정 노력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에도 가격 인상폭이 크고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공공요금에 대해 입을 닫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전기요금과 지하철 요금,버스요금 등 공공요금은 필요할 때마다 올리면서 기업들의 가격 인상은 '소통'을 핑계로 자제를 요청하는 것은 기업에게 손실을 감수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부도 공공요금 인상분을 국민에게 오로지 전가하지 않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할 것을 당부한다.
최근 주요 생산국의 작황부진에 따른 코코아콩과 과일 농축액,올리브유 등 일부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국제유가와 환율이 뛰면서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인건비와 물류비, 임대료 등이 가중되면서 기업들은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을 내리고 있다. 정부는 일부 식품기업의 가격 인상 계획에 대해 어려운 물가 여건을 감안하여 최대한 자제하여 줄 것을 요청해왔다. 지난 4~5월 가격 인상 계획을 밝힌 기업들과 수십차례 협의했다.
정부의 요청을 받은 기업들은 인상시기를 6월 이후로 미루거나 인상률·인상 품목을 최소화하는 한편, 자체 할인행사을 벌이기로 결정했다.소비자 장바구니 부담 완화를 위해 가격 인상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협조 요청을 기업이 받아들인 결과다.
물가부담을 낮추려는 정부와 기업의 협력은 환영한다. 그리고 원가 부담 완화를 위한 과제를 적극 발굴·해소하겠다는 정부의 방침도 높이 평가한다.
문제는 물가 상승 압력이 외생변수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주요 생산국의 작황부진,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물류비 증가, 환율상승 등으로 원가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 기업만 부담을 감수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원가요인 생겼다고 즉시 가격을 올리면 물가상승은 물론, 당장 소비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정부와 기업간 협력은 적절하다.
그다음으로 짚어봐야 할 점은 공공요금 부분이다. 식품 물가 상승에 가려진 공공요금 상승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일례로 지하철 요금과 버스요금을 보자. 서울시는 지난해 8월 버스요금을 300원, 지하철 요금을 150원 인상했다. 버스 요금만 보면 버스 이용자 부담은 하루 600원, 일주일에 3000원, 한 달 1만2000원 늘어났다. 1년 이면 14만 4000원 증가한다.
한 달 1만 2000원의 추가 부담이 생기려면 라면을 과연 몇개나 먹어야 할까? 식품업계가 정부에 던지는 불만의 목소리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모든 국민들이 어쩔 수없이 이용하고 비용이 전가되는 공공부문 물가안정이 필요하다고 기업들은 목소리를 높인다.다시말해 전기와 가스요금, 지하철 요금과 버스요금 등이 그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공공부문 물가흡수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상반기 전기·가스요금을 동결 기조로 운영하고 지방자치단체에도 교통 요금 등을 동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공공기관, 지자체의 부담이 가중되면서 요금 인상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말을 흘린다. 서울시는 지하철 요금을 150원 인상하겠다고 밝혀놓았다. 이상을 위한 예정된 순서를 밟고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지하철 노조와 버스노조가 파업을 벌이거나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적자가 누적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틀림없이 요금 인상을 단행하거나 허용할 것이다.전례를 보면 그렇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하반기 전기·가스·지하철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 여지를 남겨놓았다. 최 부총리는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물가 불안품목에 대한 할당관세를 유지하고 중장기로 기후변화·고령화에 대응해 농업생산력 향상, 유통구조 개선 노력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체감 물가를 낮추는것과는 거리가 먼 고담준론 수준의 발언이다.
최 부총리는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 여부와 관련해선 말을 앗꼈다고 한다. 최 부총리는 "전기요금, 가스요금, 서울시 지하철 등 이야기는 좀 더 파악해 보려 한다"면서 "하반기 전기요금, 가스요금은 지금은 말씀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는 또 "기본적으로 공공요금 (인상) 요인이 생겼으면, 공공기관이 자체 흡수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는) 맞다"면서 "한국전력·가스공사의 상황이 다 다르고, 글로벌 시장의 가격 동향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로 말씀드리기 어렵고, 지하철 부분은 (서울시와)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최 부총리는 아무런 확답을 하지 않았다. 기업들은 물가 인상요인을 자체 흡수하도록 협조 요청하는 정부가 공공기관이 자체 흡수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상황이 다르고 글로벌시장 가격 동향이 다르다는 말을 하는지 묻고 싶다. 공공기관도 마땅히 이상요인을 자체 흡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공공기관의 부담이 는다고 무조건 민간에게 떠넘기는 일은 책무 회피란 말을 피하기 어렵다. 물가인상 요인을 오로지 부담하는 소비자, 자체 부담하는 기업만큼은아니더라도 시늉은 내야 하지 않을까?
박태정 기자 ttchun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