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의 위로를 요청하는 신자들의 호소 폭증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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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위로를 요청하는 신자들의 호소 폭증 왜?
  • 박고몽 기자
  • 승인 2020.03.30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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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전화나 SNS를 통한 고해성사 불허

중국발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확산 사태로 캐나다 퀘벡 주 전역이 필수 서비스를 제외한 모든 활동을 중지한 지 일주일째에 이르자 퀘벡 주의 가톨릭 사제들에게 기도와 위안을 청하는 교우들의 전화와 사회관계망 메시지가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다.

캐나라 퀘벡주 셰르브루크(Sherbrooke) 시 성녀 마르그리뜨 부르쥬와 본당(la paroisse Sainte-Marguerite-Bourgeoys)의 스티브 르메(Steve Lemay) 주임 신부가 텅 빈 성당에 앉아 있다.사진=주르날드몽레알
캐나라 퀘벡주 셰르브루크(Sherbrooke) 시 성녀 마르그리뜨 부르쥬와 본당(la paroisse Sainte-Marguerite-Bourgeoys)의 스티브 르메(Steve Lemay) 주임 신부가 텅 빈 성당에 앉아 있다.사진=주르날드몽레알

30일 캐나다 몬트리올의 일간지 주르날 드 몽레알(Journal de Montréal)에 따르면, 몬트리올 동쪽 140km 거리에 있는 셰르브루크(Sherbrooke)시의 스티브 르메(Steve Lemay) 신부는 평소 주일 미사가 끝나면 교우들과 담소를 나누곤 했는데 지난 월요일 실내외 집회가 금지된 이후 새로운 수단을 써서 이들과 소통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기 이전, 르메 신부가 교우들로부터 받는 페이스북 메시지는 고작해야 하루 한두 건.  그러나 지금은 매일 열 개 가까운 메시지와 셀 수 없는 전화를 받고 인터넷 개인방송까지 하고 있다. 

르메 신부는 주르날 드 몽레알에 "어떤 사람은 외로움을 큰 부담으로 여깁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병원에서 일하는 친인척 때문에 걱정이 많지요. 코로나 사태에 따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고 전했다. 

교우들의 심정을 이렇게 요약하는 르메 신부는 사회적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데 풍부한 경험을 지녔다.지난 2013년 47명의 목숨을 앗아간 락-메강띠끄(Lac-Mégantic) 열차 대폭발 사고 당시 그곳 본당 주임신부가 바로 르메 신부였다. 

몬트리올의 알랭 몽죠(Alain Mongeau) 신부도 교우들로부터 하루 스무 통 가까운 전화를 받는다면서 사람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건 누가 자기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새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늘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르메 신부도, 몽죠 신부도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가톨릭 사제는 전화와 사회관계망 서비스 메시지를 통해 교우들과 접촉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기도할 수 있지만, 고해와 영성체 같은 성사(聖事, sacrement)를 베풀 수는 없다. 결혼식 주례도 허용되지 않는다. 가톨릭에서는 결혼 또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이는 표지로 드러내고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특별한 예식' 즉 성사이기 때문이다. 

르메 신부는 성사는 교회법에 의거, 반드시 성직자와 교우가 직접 대면한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사 집전을 위해 사제가 취해야 하는 특정한 동작도 있는 데다 제의(祭衣), 성작(聖爵) 등 여러 가지 제구(祭具)가 필요한 까닭이다. 

르메 신부와 몽죠 신부는 더군다나 최근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전화나 사회관계망을 통해 성사, 특히 고해성사를 베풀지 말라는 간곡한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다. 몽죠 신부는 사제와 교우의 만남이 갖는 의미와 그 영적인 측면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퀘벡 시의 쥘리엥 기요(Julien Guillot) 신부는 교우가 위급상황에 처했다면 당연히 사제가 찾아가야 한다면서 동시에 위생안전 수칙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르메, 몽죠, 기요 신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덕분에 가톨릭 교회가 교우들과의 소통창구를 현대화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르메 신부는  연로한 사제들 가운데 새로 사회관계망에 가입하거나 페이스북 생중계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퀘벡 주에서는 미사 중 영성체(領聖體, communion)에 필요한 성체빵(hostie 오스띠)과 축성된 성체를 보관하는 감실(龕室, tabernacle 따베르나끌르), 그리스도의 성혈로 변화한 포도주를 담는 성작(聖爵, calice 꺌리스)이 각각 '오스띠 ostie', '따바르낙 Tabarnak' '꼴리스 colice'로 변형되어 일상의 욕설로 입에 오르내린다. 

이중에서 '따바르낙'은 퀘벡인들이 입에 달고 살 정도여서 한겨울 강추위를 피해 퀘벡인들이 많이 찾는 멕시코 칸쿤(Cancún) 주민들은 아예 퀘벡인들을 '로스 따바르나꼬스 Los Tabarnacos'라고 부를 정도다.

퀘벡인들이 가톨릭의 가장 거룩한 단어들을 일상 욕설로 변화시킨 것은 1763년 영국의 뉴-프랑스 정복 이후, 영국인들에게 협조하면서 200년 이상 자기들의 모든 생활을 지배한 가톨릭 교회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1960년부터 1966년까지 정치와 종교, 정부와 교회의 분리를 성취해낸 이 움직임이 바로 '퀘벡 주의 조용한 혁명'이다.  

이토록 가톨릭 교회에 대한 반감이 큰 퀘벡인들이 다시 사제들을 찾게 되었으니 퀘벡교회로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무조건 나쁘게만 볼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나 퀘벡 주의 가톨릭 사제들은 이번 부활절(4월 12일)만큼은 텅 빈 성당에서 혼자 미사를 올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퀘벡 주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를 최소화하고자 오는 4월 13일까지 실내외를 막론하고 두 사람 이상이 모이는 모든 행사를 금지시켰다. 당연히 종교적 집회도 이에 포함된다.


몬트리올(캐나다)=박고몽 기자 clement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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