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기침체(recession)에 따른 원유수요 감소 우려 등에 국제유가가 3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미국산 원유의 기준유인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약 9개월 만에 배럴당 70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씨티그룹은 감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제유가가 내년에 글로벌 기준유인 브렌트유가 배럴당 60달러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금융시장 전문 매체 마켓워치 등에 따르면, 4일(현지시각) 미국 선물시장인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 WTI선물은 전날에 비해 1.6%(1.14달러) 내린 배럴당 69.20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12일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WTI는 시간외거래에서 배럴당 68달러 후반대까지 떨어졌다.
같은 시각 연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글로벌 기준유인 북해산 브렌트유 11월 인도분은 1.4%(1.05달러) 하락한 72.70달러에 거래됐다. 브렌트유도 지난해 6월 이후 가장 낮았다.
국제 유가는 'OPEC플러스(+)'의 증산 연기방안 논의 소식도 유가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석유 수출국 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산유국간 협의체인 OPEC+는 당초 10월부터 하루 18만 배럴의 증산(감산 축소)을 연기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가 최근 크게 하락하자 시장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경제침체 공포가 유가를 짓눌렀다. 이날 나온 7월 구인(job openings) 건수는 767만3000명으로 전달에 비해 23만7000명 줄면서 2021년 1월 이후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시장 예상치(809만 명)를 크게 밑돈 수치다. 해고는 176만 명으로 지난해 3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고, 고용은 2020년 4월 이후 최저 수준을 소폭 웃돌고 노동자 1명 당 일자리 수도 1.1개를 밑돌면서 3년 만에 최저를 나타냈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번 결과는 노동시장이 냉각되고 있음을 재차 보여주었고, Fed가 경기둔화가 예상보다 심각할 수 있다는 경계감을 갖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조업 업황도 부진했다.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3일 내놓은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7.2로 시장 예상치(47.5)를 조금 밑돌았다. ISM 제조업 PMI는 미국의 제조업황이 다섯 달 연속 위축 국면에 있음을 시사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의 8월 미국 제조업 PMI는 47.9를 기록했다. 7월치(49.6)보다 낮은 수준으로, 시장 예상치(47.5)에 못미쳤다. S&P글로벌 제조업 PMI도 두 달 연속 위축했다.
여기에미국 경제성장률을 실시간으로 추정하는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GDP 나우(now)' 모델이 3분기 성장률을 전분기 대비 연율 환산 기준 2.0%로 제시하며 지난 7월 26일 개시(2.8%)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어 5일에는 8월 민간 고용 보고서와 서비스업 PMI, 오는 6일에는 8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 지표와 실업률이 각각 나올 예정인데 역시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금융시장에서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달에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내리는 '빅 컷'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강해졌다. 시카고파생상품거래소그룹(CME Group)의 페드워치(FedWatch) 툴에 따르면 이날 마감 시간 기준으로 Fed가 9월에 금리를 0.25% 포인트 인하할 확률은 61.0%, 0.50% 포인트 내릴 률은 39.0%로 반영됐다. 경기침체 우려가 되살아난 영향으로 0.50% 포인트인하 가능성이 전날에 비해 9%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프라이스 퓨처스 그룹의 필 플린 수석 분석가는 "제조업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는 분명하다"면서 "이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유일한 부정의 요소다"고 평가했다.
씨티그룹은 지정학 위험보다는 공급이 유가에 하락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오일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씨티는 이날 고객들에게 보낸 서한에서OPEC+가 추가 감산을 하지 않으면 수요 감소와 비(非)OPEC 산유국들의 탄탄한 공급 증가로 내년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평균 60달러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씨티는 앞서 지난 6월 OPEC+의 감산에도 내년에 전 세계 과잉을 예상하고 브렌트유가 배럴당 60달러에 이를 것이란 '암울한' 전만을 제시했다.
박태정 기자 ttchun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