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속도로 엔화 가치가 오른다면 앞으로 일본 여행은 고려대상에서 제외하겠다"
최근 일본 나고야 여행을 다녀온 A씨(여, 58)의 말이다. 엔화가치가 오르면 일본을 가는 비용은 물론, 일본에서 지출하는 금액이 늘어나기 때문에 한 말이다. A씨는 엔화가치가 하락할 때마다 엔화를 사들였고 그돈으로 일본 여행을 여러 차례 했다. 여행당시 원엔 환율이 830~40원이어서 일본 물가가 서울보다 낮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제 일본 여행을 그만둘 때가 온 것으로 그는 판단하고 있다. 16일 원엔 환율은 940원대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엔화를 사기 위해 원화를 더 많이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늘어나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일본 엔화는 과거 '고물줄 돈'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미국달러 앞에 서면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최근 엔화 가치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오는 17~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으면서 달러약세, 엔화 강세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일본의 영자신문 재팬타임스와 일본의 경제신문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엔화 가치는 최근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통하는 달러당 140엔선을 넘어섰다. 엔화가치는 지난 7월 근 3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가 급등한 뒤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16일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는 장중 139.96엔으로 0.6% 평가절상되는 기염을 토했다.
재팬타임스는 "일본 엔화는 이번 분기에 투자자들이 미일간 금리격차 축소를 대비함에 따라 15% 평가절상되는 등 10개 통화 그룹 중 최고의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엔시세 139엔대는 미일 금리차이의 연동성 회복"이라고 진단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미 Fed가 대폭 금리 인하를 할 것이라는 관측의 재연이 계기이지만, 미국 경기의 선행 우려와 미일 금리 차이의 축소가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현재 기준금리는 연 5.25~5.50%이며 일본의 기준금리는 연 0.25% 수준이다. 과거 일본의 기준금리는 과거 0% 수준에서 25배 상승했다.
미국은 코로나 이전에는 사실상 제로 금리 수준을 유지하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2022년 1월 0.25%에서 11차례 기준금리를 올려 연 5.50%까지 높였다. 그 결과 전 세계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자본 블랙홀' 역할을 했다. 달러 가치는 올라가고 엔화를 비롯한 다른 통화 가치는 하락했다. 엔달러 환율은 4월29일 달러당 160엔을 돌파했다. 1990년 4월 이후 34년 만에 가장 높은 환율이다. 이날 오전 엔달러 환율은 160.245엔까지 올랐다가 오후 들어 154엔대로 급락했다. 원엔환율도 100엔당 876.15원으로 내려앉아 5개월여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Fed가 예측대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고, 제롬 파월 의장이 금리인상 향방에 대한 새로운 발언을 할 경우 달러가치는 더 내려가고 미국달러와 견준 엔화 가치는 더 오르고 그 결과 엔달러 환율은 추가 하락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엔화가치가 어느 수준까지는 현재로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금리가 싼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미국 등지의 자산을 매입하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여전해 '엔고가 한 방향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한 니혼게이자이의 진단이 적중할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수영 기자 isuyeong202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