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차기 총리에 오를 집권 자민당 총재로 당내 비주류이자 온건파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7) 전 자민당 간사장이 선출됐다. 이시바 총재는 다음 달 1일 임시국회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뒤를 잇는 차기 총리로 공식 취임하면서 새 내각을 출범시킨다. 그는 한일 관계에 대해 '비교적 전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정치인이다.한국 윤석열 대통령도 한일 관계개선에 적극성을 보여왔다. 따라서 그가 공식 취임해 집권한다면 한일관계는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일 관계는 그동안 현상 유지나 퇴보에 퇴보를 거듭해왔다. 과거사 문제와 위안부 문제는 양국간 관계를 급랭시키는 주요 쟁점이었다. 그는 과거 국내 유력 일간지 인터뷰에서 "역대 총리가 사죄의 뜻을 밝혔음에도 한국에서 수용되지 않는 것에 좌절감이 크다. 그럼에도 납득을 얻을 때까지 계속 사죄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의 집권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크다.
대통령실도 "새로 출범하는 일본 내각과 긴밀히 소통하는 가운데 한일 관계의 긍정적 흐름을 이어 나가기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면서 "양국이 전향적인 자세로 미래 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혀 양국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한일 양국이 풀어야 할 숙제는 한둘이 아니다. 과거사 문제와 위안부 문제는 최우선 과제라고 본다. 한국이 독립한 지 80년이 지났고 한국이 전세계에서 존중받는 선진국이 됐지만 여전히 한국내에서는 친일과 반일이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고 독도문제로 한일양국은 핏발 선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기 일쑤다.
경제분야에서는 갈등과 대립보다는 협력해야 할 사안이 더 많다. 그 중 하나가 7광구 공동개발이다. 한일공동개발구역(JDZ) 협정은 오는 2028년 6월 발효 종료를 앞두고 있다. 중동의 불안, 산유국들의 가격 올리기 정책 등으로 유가가 춤출 때마다 원유 소비대국인 한국과 일본은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는 점에서 공동개발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두 나라는 협정 만료 3년을 앞두고 27일에서야 자리에 마주 앉았다. 한일 정부가 JDZ 협정에 따른 6차 한일 공동위원회를 도쿄에서 연 것이다.1985년 5차 회의 때 만난 후 무려 39년 만이다.
7광구는 제주도 남쪽 200km 지점 바닷 속 땅이다. 이런 땅이 주목받는 것은 그 아래에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유 때문이다. 유엔 아시아극동경제개발위원회는 1969년 관련 보고서를 처음 펴냈다. 보고서는 "한국 서해와 동중국해 대륙붕에 바다 기준 세계 최대 매장량의 석유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는 2005년 보고서에서 석유 1000억 배럴과 천연가스 200Tcf가 매장돼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이는 2020년 기준 중국 전체 석유 매장량의 4배, 가스 매장량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이후 한국석유공사와 일본석유산업단이 1978∼1987년, 2002년 두 차례 7개 시추공을 뚫는 등 공동 탐사를 벌였지만 경제성 있는 유정을 찾지 못했다. 2000년대 초 공동 연구에서 한국 정부는 5개 유망 구조, 13개 잠재 구조의 매장량을 약 3600만t(우리나라 1년 석유 소비량의 30%에 해당)을 추정했다. 일본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공동 연구 철회를 선언했다
협력을 계속할 생각이 있다면 양국이 더는 협상을 미뤄서는 안 된다고 본다. 협정은 발효로부터 50년이 지난 2028년 6월에 종료된다. 자동 종료 시점으로부터 역산해서 3년 전인 내년 6월부터는 양국 중 어느 쪽이라도 종료를 선언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단독으로 이 광대한 지역에서 시추공을 뚫어 석유를 찾아내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본다.
더욱이 동북아의 군사패권국이 되려는 중국의 심상찮은 움직임도 있다. 중국은 한일 협정 초기부터 7광구가 중국에서 뻗은 대륙붕이라는 주장을 편 나라다. 이후 JDZ에 이웃한 핑후 등 해상 유전에서 석유가스 개발에 성공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해군력 증강을 통해 동중국해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영유권을 주장하고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하려는 JDZ도 자기네 광구라고 주장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시간이 남지 않았다. 양국 정부는 적극 나서야 한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 간사장도 바뀌었다. 그는 다음달 1일 차기 총리로 취임하면 강경 일변도인 일본의 정치권 지형도 바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그동안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한일관계 개선이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미래를 지향하는 두 지도자의 협력에 따라 양국관계는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할 수 있다. 석유자원 독립 지위 확보와 중국 견제, 동북아 안정 등 '세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길을 개척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이 마음을 열고 7광구를 협력의 장으로 키워낼 것을 당부한다.
박태정 기자 ttchun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