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통화완화 공식입장' 인터뷰 유감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여러 가지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1926년 생인 그는 99세의 고령으로 미국 고위 관료 중 최장수 인물로 꼽힌다. 무엇보다 그는 미국 중앙은행 격인 Fed의 최장기 의장이다. 그는 13대 의장으로 20년 재임했다.
그가 Fed 의장으로 20년간 재임한 비결은 여럿이다. 그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그의 뛰어난 '화술'을 들 수 있다. 말을 잘하기도 하지만 그의 말을 듣다보면 Fed의 의중을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는 '속내'를 꾹 감췄고 시장은 Fed가 무슨 일을 할지 궁금해하면서 Fed의 정책방향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가 20년간 재임하면서 Fed를 20년간 이끌면서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 한 것은 대단함을 넘어 경외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핵심이 시장이 Fed를 따를 수밖에 없도록 하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크게 대비된다. 그는 12일 블룸버그 인터뷰로 속을 훤히 드러낸 '투명한' 인물이 됐다. 그리고 한국의 통화정책 방향은 세계 만방에 알려졌다. 환율은 앞으로 오를 일만 남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투기 세력이든 투자자들이든 앞으로 한국을 제물로 삼도록 한국을 갖다받쳤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창용 총재가 싱가포르에서 한 인터뷰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완화적 통화 사이클(금리 인하)을 유지할 것이라는 게 우리의 공식 입장'이라는 대목이다. 이 대목이 눈에 들어온 것은 최근 환율 상승세 때문이었다.
이 총재는 최근 원화 약세와 관련해 미국 인공지능(AI) 관련 주가 변동성, 미국 정부 셧다운 우려, 달러 강세, 일본의 정책 불확실성, 미중 무역 관계, 한미 투자 패키지 등을 복합 요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현재 너무 많은 요인이 환율에 작용하고 있어 안개가 걷히기 전까지 방향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환율약세의 원인을 얼버무렸다고 본다. 국내외 요인을 열거하면서 한국 자체 약세 요인에 대해 일부만 말하고 근인은 빙빙 돌려말했다. 그가 말한 '완화적 통화 사이클'과 관계있다. '완화적 통화 사이클'이란 쉽게 말해 돈을 푼다는 뜻이다. 돈을 푸니 미국 달러화와 견줜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은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통화량의 지표인 M2(광의의 통화)가 얼마나 늘었는지는 이 총재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금식 예금을 총칭하는 M1( 협의의 통화량)에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수익증권(펀드), 양도성예금증서(CD), 어음, 만기 2년 미만 정기예적금, 만기 2년 미만 외화예수금 등을 말한다. 한은은 공개시장 조작, 은행 대출, 외환거래, 정부부문 거래를 통해 본원통화를 공급하고 이 돈이 돌고돌아서 M2가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M2 평잔은 4430조 5000억 원으로 전달보다 0.7% 증가했다. 1년 전인 지난해 9월에는 4078조 1000억 원에 비해 360조 정도가 불어났다.
이재명 정부는 올해부터 2029년까지 계속 돈을 풀 계획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중기 재정수지와 국가채무 전망'에 정부는 매년 100조 이상의 적자재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나라 살림살이를 뜻하는 관리재정수지는 올해 111조 6000억 원 적자, 내년 `109조 원 적자, 2027년 `115조 4000억 원 적자, 2028년 128조 9000억 원 적자, 2029년 124조 9000억 원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이 돈은 국채를 발행해서 조달할 예정이다.
서학개미들의 미국 주식투자, 미국의 달러강세 등이 요인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이 총재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굳이 통화정책 방향을 세상 사람이 다 알도록 말했느냐, 한은과 정부의 돈풀기가 환율상승의 근인임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이재명 정부의 돈 풀기 기관차는 앞으로 계속 돌진할 것이다. 여기에 달러강세, 서학개미의 주식투자 등을 감안하면 원화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환율은 계속 오를 것은 불문가지다. 환율상승으로 이득을 보는 쪽도 있을 것이고 손실을 보는 쪽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너무 가파른 속도는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많은 이들이 환율상승을 걱정하고 있다.
'현재 너무 많은 요인이 환율에 작용하고 있어 안개가 걷히기 전까지 방향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 총재의 발언은 변명일 수도 있고 인터뷰용 '수사'일 수도 있다. 필자같은 장삼이사도 원화 약세의 원인과 방향을 점치는 데 전문가 중의 전문가로 대접받는 한은 총재가 그 방향을 모른다면 말이 되겠는가?
그렇더라도 일국의 통화정책 방향을, 중앙은행 총재가 전 세계가 다 알라고 알려준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본다. 그런 방향을 생각하더라도 그것을 알수 없도록 하는 게 온당하다고 본다. 투기세력이 알 수 없도록 하면서도 한국 경제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게 중앙은행 총재의 진정한 면모 아닐까? 그린스펀의 무거운 입이 한국에 없다는 게 참으로 아쉽다.
이수영 기자 isuyeong202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