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호황이 횡재라는 착각, 김용범의 국민배당금제
이재명 정부의 정책 사령탑인 김용범 정책실장이 던진 '국민배당금제' 제안이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AI(인공지능) 산업의 호황으로 곳간에 들어온 '초과 세수'를 전 국민에게 배당금 형태로 돌려주겠다는 게 골자다. 언뜻 매력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는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포퓰리즘의 변주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나와 표심을 겨낭한 선거공학에서 나온 발상이라는 의구심도 든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소취소와 박상용 검사의 징계 등의 잡음이 지방선거에서 악재가 되지 않도록 돕기 위해 내놓은 처방전이라는 일각의 지적도 설득력을 갖는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12일 페이스북에 "AI 인프라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을 만들고 그것이 역대급 초과세수로 이어진다면, 그 돈을 어떻게 쓸지는 응당 고민해야 할 문제”라면서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다"며 초과 세수 일부를 국민에게 환원하는 국민배당금제를 제안했다.
그는 구조적인 초과 이윤을 제도화한 모델로 노르웨이 국부펀드 사례를 들었다. 김 실장은 "노르웨이는 1990년대 석유 수익을 국부펀드에 적립하고, 그 운용 수익을 재정 원칙에 따라 사회 전체에 환원하는 구조를 설계했다"면서 "자원 호황을 일시 횡재로 소비하지 않고 장기적 사회 자산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국민배당금은 개별 프로그램이 아니라 원칙이라면서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아온 산업 기반 위에서 나온다"면서 "그렇다면 그 과실의 일부는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이것이 설계의 정당성이자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삼성전자 노조 파업을 계기로 반도체 기업의 초과 이익을 재투자와 주주 환원, 원·하청 노동자 분배 중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지를 두고 논란이 커지는 시점에 나와 큰 파장을 낳고 있다.
그가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이재명 정부의 속내로 보는 게 옳다. 그리고 그 속내는 자유시장 경제와 정면 배치되는 위험한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AI 산업의 성과는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의 산물이지, 국가가 거저 준 행운이 아니며 국민이 준 것도 아니다. 기업가와 연구개발자, 기업의 피땀어린 노력의 산물이다. 엄밀히 말해 이번 AI산업의 호황은 한국이 단초를 제공한 게 아니며 노조가 일궈낸 성과물도 아니다.
성장의 과실을 '초과 세수'라는 이름으로 환수하겠다면 기업들에게 '많이 벌면 뺏긴다'는 공포를 심어주게 마련이다. 국민배당제가 알려진 직후 코스피가 5% 넘게 급락한 게 그 증거다. 자본은 속성상 수익을 좇고 규제를 피한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 기지와 자본을 옮기는 '코리아 엑소더스'를 정부가 자초하고 있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 한마디로 투자 유인을 말살하고 자본유출의 빌미를 제공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그는 노르웨이 모델을 오독(誤讀)했다고 본다 .김 실장은 노르웨이 국부펀드를 사례로 들었지만, 노르웨이는 자원을 팔아 얻은 수익을 배당으로 뿌리기보다 철저히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 펀드로 관리한다. 표심을 위해 세금을 현금으로 살포하는 행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김 실장은 세수의 지속 불가능성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AI 산업의 호황은 변동성이 큰 기술 사이클 덕분이다. 이 사이클이 언제 꺾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시 현상으로 보고 대비하는 게 온당하다. 그런데도 일시 세수 증가를 영속하는 복지 제도인 배당금과 연결짓는 것은 재정 정책의 기본인 안정성을 망각한 처사다. 호황이 끝났을 때 이미 불어난 배당금을 줄일 용기가 정부에게 있을까. 결국 그 뒷감당은 증세나 국채 발행, 즉 미래 세대의 빚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재정경제부에서 잔뼈가 굵은 김 실장이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배당제를 제안하는 것은 선거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할 수 없다.
진정으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초과 세수는 현금 배당이 아니라 AI 인프라 확충, 인재 양성, 원천 기술 확보 등 '미래 먹을거리'에 재투자하는 게 온당하다.
국가는 가계의 지갑을 채워주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경제 성과를 정치 논리로 배분하려 들 때, 시장은 응답하지 않는다. '국민배당금'이라는 달콤한 이름표가 붙은 이 정책은 결국 한국 경제의 체력을 약화시키고 성장의 엔진을 꺼뜨리는 독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달콤한 현금 살포의 유혹이 담긴 설익은 배당론이 아니다. AI 시대를 이끌고, 미중 패권 시대에 한국 경제의 차기 먹을거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냉철한 산업 전략과 규제 혁파다.
박태정 기자 ttchun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