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물가·3% 금리'의 귀환, 내실을 다질 때다

2026-05-28     박태정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8일 신현송 총재 취임 이후 첫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8회 연속 동결했다. 이와 함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7%로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국책연구기관들을 웃도는 이 파격의 수치들은 얼핏 '반도체 붐'에 올라탄 한국 경제의 질주를 예고하는 듯하다.

그러나 시장은 환호하기보다 깊은 고민에 빠지고 있다. 화려한 지표 이면에는 '3%대 고물가' 장기화 압력과 2000조 원을 눈앞에 둔 가계부채라는 차가운 현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눈앞의 반도체 랠리에 취할 것이 아니라, 바짝 다가온 '3% 물가, 3% 금리' 시대에 대비한 생존 전략을 짜야 한다.

가계신용 추이. 사진=한국은행

한은이 올해 물가 전망치를 2월 전망치 2.2%에서 2.7%로, 근원물가 전망치를 2.1%에서 2.4%로 대폭 올린 것은 물가 압력이 문자 그대로 끈적끈적하다는 뜻이다. 한은은 앞으로도 물가 오름세는 국제유가 상승의 파급영향이 확대되는 가운데 소득 증가에 따른 수요측 압력도 점차 증대되면서 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은 국제유가와 환율 움직임, 비용상승의 파급 정도, 정부 물가안정 대책의 효과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자극하고 결국 국내 소비자물가를 올리는 주범이다.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른 각종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공급망 블록화에 따른 비용 압박과 맞물린다면 물가를 언제든지 3%대 위로 올릴 수 있는 '불씨'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이 촉발한 대규모 증시 자금 유입으로 원달러 환율이 1500선으로 소폭 안정됐다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금융당국이 내놓을 수 있는 처방전으로는 금리인상을 떠올리기 쉽다. 증권가는 올해 7월과 10월, 그리고 내년 1분기에 한 차례 등 3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한다. 각각 0.25%포인트를 올린다고 가정하면 내년 1분기에는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연 3.25%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금리인상 카드는 금융당국이 쉽게 꺼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가계부채가 걸림돌이다. 올해 1분기 말 가계신용은 1993조 1000억 원으로 또다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한 분기 만에 대출이 14조 원이나 불어난 상황에서 한은이 섣불리 올렸다간 가계에서 비명이 터질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금리를 내릴 경우 부채의 둑이 터지고 부동산 시장 폭등을 자극하게 된다. 그럼에도 물가 상승 압력을 외면할 수도 없다.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전문가들이 예측하듯 올해 두 차례, 내년 한 차례 기준금리를 올린다면 우리나라는 시장금리가 3%대를 웃도는 '고금리 장기화(Higher for longer)' 환경에 진입할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반도체 호황으로 일부 수출 대기업이 벌어들이는 온기가 내수 소비나 영세 자영업자에게 전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금리·고물가가 지속되면 '내수 부진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3% 물가·3% 금리' 시대에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금리를 내릴 수 없다면 재정과 규제 혁신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범용 내수 진작을 위해 무차별로 돈을 푸는 것은 물가를 자극해 경제에는 독이 된다. 철저하게 취약 가계의 채무 조정과 영세 자영업자의 금융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핀셋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또한 대외 신인도를 위해 재정 건전성을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기업 역시 부채 축소와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 자금 조달 비용(금리)이 3%대 이상에서 내려오지 않는 구조적 환경을 기본 시나리오로 세우는 게 현명하다. 무리한 레버리지 기반 투자를 지양하고 현금 흐름 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특히 반도체 낙수효과에만 기대지 말고 구조적 인플레이션 환경에서도 가격 전가력을 가질 수 있는 독점 기술력을 개발하거나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개인과 가계는 '빚 다이어트'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가계대출 2000조 원도 결국 가계와 개인이 무리한 빚내기가 근인이다. '조금만 버티면 금리가 내려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버리는 게 상책이다.

금융당국, 기업, 가계 모두 반도체 호황이 가져온 '착시'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글로벌 AI 혁명이라는 거대한 시황이 안겨준  선물에 가깝다. 이란전 장기화와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은 앞으로도 물가가 높은 수준에 이를 것임을 예고한다. 하반기에도 물가가 계속 오르고 기대인플레이션도 지속해서 오를 가능성은 열려있다. '물가 3%, 금리 3%'는 일시 소동이 아닌 우리 경제의 새로운 기본값(뉴 노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반도체 호황이 가져온 지표의 착시에서 깨어나 경제 주체 모두가 펀더멘털을 재점검하고 내실을 다지는 것만이 다가올 장기 긴축의 겨울을 버텨낼 수 있는 해법일 것이다. 

박태정 기자  ttchun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