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달러'와 중국 '경기부양책' 협공받는 구리 가격
'박사 금속(닥터 코퍼) 가격이 미국과 중국의 협공을 받고 있다. 감세와 보편관세를 공약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인플레이션 악화에 따른 금리 인상 가능성과 중국이 경기부양책을 쏟아냈지만 미흡하다는 지적 때문에 구리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미국달러로 금액이 표시되고 거래되는 구리를 비롯한 상품 가격은 미국달러 가치와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즉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달러가치가 오르면 상품 가격은 반대로 내려간다.
미국이 관세, 특히 대중국 관세를 올리면 미국에 수입되는 재화와 서비스 가격이 올라가고 소비자물가가 상승하며 이를 억제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올리면 결국 달러가치가 상승한다. 다른 한편으로 감세 정책으로 재정수입이 줄어들어 재정적자가 커지게 마련이다. 미국 정부는 재원조달을 위해 막대한 국채를 찍어내야 하는데 자본유치를 위해 채권 금리를 올리면 유휴 자금을 빨아들이고 금리를 끌어올리게 된다.
구리든 원유든 상품 가격은 이 두 가지 덫에 갇혔다고 보는 게 온당하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에 당선된 6일(현지시각)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된 현금결제 즉시 인도 구리 가격은 전날에 비해 3.51%(337달러) 급락한 t당 9250.50달러를 기록했다.
이날 낙폭은 지난 8월 이후 최대였다.
같은날 미국 선물시장인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거래된 선물가격도 4.3% 급락한 파운드당 4.2460달러(t당 9389달러)로 내려앉았다.
광산업 전문 매체 마이닝닷컴은 "중국에 대한 강경한 정치·경제 정책 기조를 가진 트럼프 후보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가운데, 미중 무역갈등 심화 전망으로 미 달러가 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구리 최대 소비국인 중국도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지난 8일 폐막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지방정부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향후 5년간 10조 위안(약 1935조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한다고 밝혔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선 직접 소비진작책이 없다며 경기부양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중국 중앙정부의 재정지출 승인 권한을 갖고 있는 전인대 상무위는 이날 지방정부의 잠재 부채를 대환하기 위한 재원을 기존 4조 위안에서 6조 위안 추가해 10조 위안으로 늘리는 안건을 승인했다. 올해부터 5년 동안 매년 지방정부 특별채권 중에서 8000억 위안을 부채 해결에 배정해 총 4조 위안을 지방정부의 숨겨진 부채와 교환해 시간을 두고 상환할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이 재원을 6조 위안 더 늘린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매체 CNBC 방송은 "부채 교환 프로그램은 많은 투자자들이 더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기대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앞서 중국 당국은 지난 9월 말 이후 지급준비율(RRR) 0.5%포인트 인하와 장기 유동성 1조 위안(약 190조 원) 공급, 정책 금리·부동산 대출 금리 인하, 증시 안정화 자금 투입 등 경기 부양 대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런데도 경기는 살아나지 못했다. 중국 통계국이 9일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에 비해 0.3%에 그친 게 좋은 예이다. 지난 2월 이후 9개월 연속 오르고 있지만 상승폭은 지난 9월 0.4%에 비해 둔화했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0.2% 상승했다. 10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1년 전에 비해 2.9% 떨어지면서 25개월 연속 하락했다. 시장 예상치(-2.5%)보다 큰 하락폭이다.
이 모든 것은 중국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물이다. 중국은 구리와 철광석 등 거의 모든 원자재의 최대 소비국이다. 중국이 소비를 하지 않는 이상 상품 가격이 과거 영화를 되찾기란 어렵다.
LME 구리가격은 7일 반등했지만 그것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COMEX 구리 선물가격은 7일 파운드당 4.315달러로 회복했다가 8일에는 다시 4.3060달러로 내려간 것만 봐도 그렇다. 중국 수요가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한 후 달러가 맹위를 떨친다면 닥터코퍼는 고래를 바싹 숙일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패권을 절대 내주지 않으려는 트럼프 정부 앞에 국제 상품 시장은 떨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구릿값 하락은 먼나라 일만은 아니다. 한국의 방산업체이자 신동사업체인 풍산을 비롯한 구리 관련 기업들은 국제 구리 가격 변동을 제품에 반영하고 있다. 금속 가격 하락은 바로 실적과 주가에 반영되는 만큼 쉽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될 일이다.
박태정 기자 ttchung@daum..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