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곡선의 예외 美경제...스태그플레이션 경고음 해법은?

2025-09-08     박태정 기자

경제학에서 '필립스곡선' 이란 용어가 있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사이엔 역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곡선이다.  이 곡선은 실업률이 낮아지면 물가 상승률이 높아지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반대로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는 경향을 나타낸다. 1958년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필립스가 실증한 곡선이다. 이 곡선은 실업률을 낮추려면 물가상승을,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실업률을 감수해야 하는 상충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8월 실업률이 4.3%를 기록하고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9%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등 미국 경제에서 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한 빌딩 창에 채용 안내판이 붙어 있다. 사진=CNN비즈니스

미국에서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 동시에 높아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필립스곡선의 예외현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유력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가 6일(현지시각) 미국 경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과 이민 정책 영향으로 고용 증가가 급격히 둔화하고 물가 상승이 계속되면서 경기침체 위험에 직면했다고 전한 것은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에 처했음을 보여준다.

마국의 고용은 하반기 들어 급격히 둔화하고 있다. 8월 신규 고용 증가가 2만2000명에 그쳐 7월 7만2000명보다 크게 줄었다. 6월 신규고용은 1만 3000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실업률은 7월 4.2%에서 4.3%로 높아졌다.

고용이 줄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게 마련이다. 수요가 줄면서 물가가 내려가는 게 자연스런 이치다. 반대로 고용이 늘고 실업률이 낮아지고 임금이 오른다면 소비자들은 돈을 더 많이 쓰고 물가는 오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미국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고용이 급격히 둔화하고 있고 실업률이 높은 데도 물가는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필립스곡서의 예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물가지수(CPI)는 7월에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했는데 8월에도 2.9%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달과 비교한 상승률도 7월 0.2%에서 8월 0.3%로 상승폭이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고율의 관세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이민자 단속이 가져온 노동력 부족과 이에 따른 인건비 상승, 기업의 비용전가 등의 합작 결과라는 추정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 행정부는 고율의 수입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에 기준금리를 인하하라고압박하고 있다. 사진=백악관

 

트럼프 행정부가 1930년대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린 관세는 2월 이후 공장 제조업 고용을 4만 1000명 줄였으며, 광업과 도매업, 석유·가스 추출 산업의 고용도 줄었다. 기업 투자 심리 위축은 고용 의욕을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미국 제조업 부문의 경기는 위축되지만 가격은 올라가는 모양새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에 따르면,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8.7로 6개월 연속 위축 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다. 동시에 제조업 가격지수는 63.7로, 최근 9개월간 가격 확장 국면이 이어졌다.

불법 이민 단속 강화로 미국 내 외국인 노동력이 올해 상반기에만 100만 명 이상 감소했다. 바클레이즈는 엄격한 이민 정책과 고령화가 매달 10만 명 이상의 잠재 신규고용을 막는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은 그동안 저임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노동시장의 인력 부족을 메우면서 인건비 상승을 억제하는 정책을 펴왔다. 미국은 저임 이민자 노동력에 '중독' 돼 있다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시장의 물가상승 압력은 어떤 의미에서 미국 경제가 저임 노동력 중독을 벗어나기 위한 '해독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늘 그렇듯이 해독 과정은 순탄하지 않고 고통스럽게 마련이다. 미국에서도 인력 부족, 인건비 상승, 물가 상승이라는 '지독한' 삼중고통을 견뎌야 한다. 

이는 미국의 수입 상품 시장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전세계는 3억 5000만 미국 시장을 겨냥해 최고 품질의 제품을 최적 가격에 판매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그야말로  양질의 제품을 싸게 구매하는 특혜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특혜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미국 소비자들은 심각한 중독 현상을 보였다. 트럼프의 고율 관세는  이런 중독 현상을 깨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본다. 미국 소비자들은 수입물가발 소비자물가 상승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함은 물론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오는 16~1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연다. 금리를 내려 '스태그플레이션' 조짐 탈출을 꾀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하는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를 0.25%포인트 낮출 가능성이 90%, 0.5%포인트 인하는 10%로 나타났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노동시장 위험 증가를 언급하며 인플레이션 제에서 고용 부양으로 정책 방향 전환을 시사했다.

관세와 이민자 단속에 따른 고용둔화와 물가압력이 상존하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Fed에 금리를 내리라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Fed가 고용이 둔화됐다고 무턱대고 금리 인하를 한다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 등 지정학 리스크에 따른 국제유가 등 공급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이라는 불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고 본다. 금리인하 처방전이 효험을 낼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최근 조짐을 보이는 '침체'의 요인이 민간소비와 투자 위축 같은 수요 측 충격에 따른 것이라면 수요를 살리기 위한 금리인하는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고 본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 투자가 위축되도록 하는 요인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을 엄습한 고율의 관세와 이민 제한, Fed의 금리 정책 등 여러 요인은 경기 흐름에 부정의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고용과 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 필립스곡선의 예외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혜안이 나타나길 기대한다.  

 박태정 기자 ttchun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