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전나무 숲 짙은 향
상태바
오대산 전나무 숲 짙은 향
  • 박준환 기자
  • 승인 2021.06.14 22: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시 달랐습니다. 진한 전나무 향이 코끝을 찌르니 온갖 스트레스가 싹 날아갔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올걸,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대산 전나무숲길. 사진=박준환 기자
오대산 전나무숲길. 사진=박준환 기자

주말인 6월12일 1박2일 일정으로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월정사에 도착해 전나무숲길 초입에 이르렀을 때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곧게 하늘 높이 치솟은 전나무가 줄지은 1km 남짓한 숲길을 걷다보니 그야말로 무아지경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족히 30m는 되어보이는 전나무 앞에 서니 우리는 아주 작아보엿습니다. 멀리서 보면 이런 난장이가 있을 수없습니다.  

오대산 월정사로 가는 전나무숲 . 사진=박준환 기자
오대산 월정사로 가는 전나무숲 . 사진=박준환 기자

저멀리서 또렷하게 들려오는 저만 모르는 새 소리, 진한 나무향, 앞에서 비켜주지 않고 먹이할동을 하는 다람쥐를 보는 사람치고 어찌 속세를 생각하겠습니까? 전나무숲 초입 일주문에서 숲을 들어서면 내가 산 곳은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낮에, 그리고 새벽 등 세 번을 걸었습니다. 어떤 이는 맨 발로 걸었습니다.어떤 남녀는 손을 잡고, 어떤 가족들은 나란히 걸었습니다. 어른 아이,남녀 노소 할 것 없이 한결 같이 숲에 대한 감탄사를 쏟아냈습니다.

오대산 월정사 일주문. 사진=박준환 기자
오대산 월정사 일주문. 사진=박준환 기자

월정사 전나무길은 제게는 큰 충격을 준 적이 있습니다. 수십년 전 고등학교 수학여행일 때였습니다. 시골에서 자라서 나무가 이렇게 굵으면서 하늘 높이 치솟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랐습니다. 시골 주변에서 본 휘어진 소나무만 보다가 죽죽 뻗은 굵은 전나무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수십년 동안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대산 하면 항상 굵고 키 큰 전나무를 떠올렸습니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의 고목. 사진=박준환 기자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의 고목. 사진=박준환 기자

2017년 1월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밟은 지  4년 여 만에 전나무 숲에 들어섰을 때도 어린 시절 각인된 기억이 살아났습니다. 족히 수백년은 됐을 법한 저 나무들은 그동안 무슨 생각으로 이 세상을 살았을까? 강한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가 많지만 살아남은 나무들은 살아남은 자들의 강인한 자긍심을 웅변하는 듯했습니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 고목은 누운채 속을 비우고.사진=박준환 기자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 고목은 누운채 속을 비우고.사진=박준환 기자

쓰러진 나무가 한둘이 아니건만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저 새소리,바람소리,물소리만 들립니다. 아름드리 나무는 생을 마감했으되 오가는 방문객들에게 긴 세월 동안 큰 키를 자랑했건만 이 자리에 왜 누워있는지를 깊이 새겨보라고 묻는 듯 합니다.  모든 것은 내가 나에게 던진 질문과 답의 연속일 뿐입니다. 이 길이 좋은 점은 이런저런 쉴 곳과 생각할 곳이 있다는 점일 겁니다. 가만히 앉아서 바람소리,물소리, 새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 발을 담글까요 아니면 그냥 앉아 있을까요.참 망설여집니다.

월정사 전나무숲길에 마련된 쉼터. 사진=박준환 기자
월정사 전나무숲길에 마련된 쉼터. 사진=박준환 기자

장구한 세월 동안 이 길을 걸었을 수많은 사람들과 이 깊은 산중에 절을 세운 구도자의 용맹정진을 생각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월정사 앞에 도착해 있음을 발견합니다. 

전나무숲길 끝에 나타난 월정사. 사진=박준환 기자
전나무숲길 끝에 나타난 월정사. 사진=박준환 기자

월정사는 오대산의 사철 침여수림에 둘러싸인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라고 합니다. 신라 선덕여왕 12년 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해 근 1400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장엄한 규모를 자랑하는 절로 천왕문을 들어서면 금강루가 나옵니다. 공사중인 동별당을 옆으로 하고 지나면 적광전과 팔각구층석탑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저 옛날 어찌 저런 탑을 쌓았을까요?

고요한 오대산 월정사.사진=박준환 기자
고요한 오대산 월정사.사진=박준환 기자

불교 신자든 아니든 전나무 숲을 지나면서 정화된 마음으로 탑 앞에 서면 경건한 마음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도움을 주신 한 분 한 분들의 이름을 입에 올리면서 그 분들에게 복이 가기를 기도했습니다. 늘 해온 질문도 해봤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까요"" 

월정사 팔각구층탑과 기도. 사진=박준환 기자
월정사 팔각구층탑과 기도. 사진=박준환 기자

적광전 앞 용금루 아래로 나가면 오대천의 맑으면서 웅장한 물소리가 대향연을 펼칩니다. 금강교 앞 금강연에 나무와 바람과 전나무 향이 녹은 무색무취 녹색의 물이 흐릅니다. 그 물에 마음의 때를 흘려보냈습니다. 

오대산 월정사 금강교와 금강연.사진=박준환 기자
오대산 월정사 금강교와 금강연.사진=박준환 기자

적광전에 모셔진 부처님의 미소를 보면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속세의 번뇌를 모두 떨쳐버리는 것도 가치있는 일입니다. 템플스테이를 위한 숙소는 깔끔하고 편안합니다.절의 왼쪽에 마련된 지월당 등 숙소에 누워있으면 저멀리 오대천을 흐르는 물소기가 귀에 와닿습니다. 공양간에서 밥 한 술 뜨고 오면 어느새 어둠이 짙게 드리웁니다. 새벽 일찍 빛과 어둠, 새 소리, 그리고 대자대비한 부처님을 뵙기 위해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오대산 월정사 금강교와 금강연. 사진=박준환 기자
오대산 월정사 금강교와 금강연. 사진=박준환 기자

서울에서 가는 길도 머지 않았습니다. 배가 출출하면 오대산국립 공원을 나서자마자 도착하는 음식촌에 들러 더덕볶음을 먹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원주로 빠지는 길을 타고 죽 달리면 진부IC가 나옵니다. 세 시간 남짓이면 서울과는 완전히 다른 녹음과 반성, 사색의 숲에 도착합니다. 숲속에 앉아 걸어온 길을 하나둘 짚어보는 것도 가치있습니다. 

박준환 기자 naulboo@gmail.comㅇ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