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횡재세', 포퓰리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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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횡재세', 포퓰리즘일 뿐이다
  • 박태정 기자
  • 승인 2023.11.2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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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꺼낸 '횡재세'로 말이 많다. 횡재세(windfall tax)란 일정 기준 이상의 이익을 얻은 법인이나 자연인에게 그 초과분에 보통 소득세나 법인세 외에 추가로 물리는 세금을 통칭한다. 흔히 '초과이윤세'라고도 한다. 정상 범위를 넘어섰다고 여기는 수익에 대해 징수하는 세금이어서 '횡재세'라는 이름을 붙였다. 노력없이 굴러들어온 이익에는 노력으로 얻은 이익보다 더 높은 세금을 물리자는 취재를 담고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해 석유·가스 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손에 쥐자 전 세계에서 이들 기업에 횡재세를 물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횡재세는 자기 노력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 지원 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업종에 부과해 그 재원을 사회 복지 등 분배 정책을 통해 취약층을 돕는 데 사용한다는 선의가 깔려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권 특히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표를 겨냥해 횡재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에는 막대한 영업이익을 거둔 은행권을 겨냥해 횡재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힘없는 서민층을 지원하기 위해 횡재세라는 세금을 도입하겠다고 하지만 횡재세의 근본 취지를 교묘히 왜곡하고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4일 횡재세 관련 전문가 간담회를 갖고 있다.사진=김성주 의원실
더불어민주당이 24일 횡재세 관련 전문가 간담회를 갖고 있다.사진=김성주 의원실

온 국민이 고금리, 고물가에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서 은행들은 대규모 영업이익을 거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2일 금융당국과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상생금융' 면담자리에서 "(정부는) '자릿세'를 뜯지 말고 정당하게 세금을 걷어야 한다"며 횡재세 도입을 주창했다.

이 대표는 "코로나 사태와 경제 위기 사태에서 이 위기 덕분에 과도한 이익을 얻는 영역이 있다. 대표적으로 금융, 에너지 기업"이라면서 "부당하게 얻은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고통 속에서 그 고통을 기회로 얻은 과도한 이이그이 일부를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제대로 사용하자는 것이 바로 서구 선진국가들이 도입하고 있는 횡재세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횡재세는 우리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면서 "고금리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어려움을 덜고, 고에너지 물가 때문에 고통받는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횡재세 도입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이익이 늘어난 정유사에게 횡재세를 물리는 방안을 추진했다.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뒤 휘발유 등의 제품으로 가공해 판매하는 ‘정제마진’으로 이익을 내고 있는데도 횡재세를 물려야 한다는 게 민주당 시각이다. 원유 가격과 석유제품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이 심한데도 유가가 올라 돈을 번 것만 보고 세금으로 환수하겠다는 으름장을 펴고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의 횡재세 도입 주장은 문제의 한 면만 볼 뿐더러 본질을 왜곡한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고금리는 에너지 가격 급등 등에 따라 급등하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의 산물이다. 고금리로 국민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은행권만의 책임은 아니다. 고금리의 근본 원인은 물가급등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원 처방은 물가 안정이지 '횡재세'를 물려 은행들의 이익을 합법을 가장해 빼앗는 게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 대표의 주장은 국민의 올바른 판단을 흐리는 선동일 뿐이다.

이익을 많이 올렸다고 세금으로 '징벌'한다면 금융 기업이 존재할 필요는 없어진다. 은행들은 고금리로 많은 이익을 챙겼고 세금과 배당 등으로 합당한 책임을 지고 있다. 국민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이와 별개의 차원이다.  

은행권이 거대 영업이익을 누렸다고 횡재세를 물린다면 주식회사인 은행들이 열심히 일해서 많은 영업이익을 남길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은행 주주들은 배당감소 등으로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정치권 논리대로라면 은행이 손실을 보면 은행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있다. 그럴 경우 누가 납득하겠는가? 정유사 4사가 지난해 총 약 15조 원의 이익을 내자 이런 주장이 나왔다. 그렇지만 2020년 5조 원의 손실을 봤을 때 정유사를 도와야 한다고 정치권은 말했는가?

은행이 큰 돈을 벌지 못하도록 강제하기 보다는 은행이 돈을 벌되 사회공헌, 손해분담 등의 방법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게 올바른 방법이라고 우리는 본다. 근본치유책은 고금리 정책을 종결하는 것이다. 그 첩경은 물가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원유 등의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원달러 환율도 등락을 거듭하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환율이 높으면 수입물가 상승에 이어 국내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는 우리정부나 은행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외생 변수다. 횡재세를 물려서 은행권의 이익을 환수한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고물가, 고금리' 여건은 지속하고 은행의 이익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횡재세 세율을 또 올리고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할 것인가? 그게 해법인가?

답은 "아니다"이다. 금융당국이 정치권의 횡재세 논의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도 우리의 논리와 일맥상통하다고 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3일 야당권이 논의하는 은행 횡재세에 대해 "거위 배 가르자는 것"이라며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복현 원장은 23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호텔에서 금융투자협회 창립 70주년 기념식에 앞서 기자들을 만나 이같이 말했다.

민주당의 주장은 금융회사의 사정과 글로벌 에너지 시장 상황, 거시경제 여건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금융회사와 정유회사는 '국민'이 아니라 가진 자요 '대다수 국민'의 주머니를 트는 수탈자로만 보이는 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인식 지평에서는 은행권과 정유산업계가 누린 막대한 이익을 정부와 기업, 국민이 공유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은 요원할 뿐이다. 그렇기에 은행권과 정유사들의 이익을 영원히 뺏겠다는 민주당의 방안에는 동의할 수 없다.

박태정 기자  tt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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