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피보다 진하다'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 통합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을 놓고 이런 말이 다시 확인됐다. 통합에 반대하는 한미약품 장남이 막내인 차남과 손잡고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꺾고 이사회 다수를 차지했다. 한미약품그룹 경영진은 앞으로 통합에 반대한 장·차남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8일 경기 화성시 수원과학대 신텍스(SINTEX)에서 열린 한미약품그룹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고(故) 임성기 창업주의 장남인 임종윤 디엑스엔브이엑스 이사(전 한미사이언스 사장)과 차남이자 막내인 임종훈 한미정미로하학 대표(전 한미약품 사장) 등 5명이 나란히 사내 이사에 선임됐다. 모두 OCI그룹과 통합에 반대하는 장남과 차남 측 이사다.
그룹 통합을 이끌어온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대표 등 기존 이사진은 4명만 남았다. 이로써 통합 반대 측이 이사회(9명) 다수를 차지했다.
주총 직후 이우현 OCI 회장은 임종윤 전 사장 측에 '앞으로 한미약품을 잘 이끌어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결정에 승복한다는 의미다.
이날 주총에서 이우현 회장과 함께 통합에 찬성한 송 대표의 딸이자 둘째인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의 이사 선임건은 과반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지난 1월 한미약품그룹이 OCI그룹과 통합을 선언하며 시작된 경영권 다툼은 결국 아들들의 승리로 끝났다. 이에 따라 앞으로 한미약품 경영진은 통합 반대 측의 인사로 짜여질 전망이다.
주총 개표 후 임종윤 사내이사는 "주주친화책으로 보답하겠다"고 밝혔고 임종훈 사내이사도 "주주가 원하는 회사로 나아가고 주주환원책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임종윤·임종훈 사내이사는 지난 25일 OCI그룹과 통합 반대를 외치다 한미사이언스 사장과 한미약품 사장직에서 각각 해임됐다. 임종윤 전 사장은 27일 열린 한미약품 주총에서도 재선임 안건이 올라오지 않아 한미약품 이사회에서 제외됐다.
주총 전 지분은 통합 찬승쪽이 조금 많았다. 송영숙 대표이사 회장이 12.56%로 가장 높고 이어 임종윤 12.12%, 임주현 부회장 7.29%, 임종훈 7.20%다.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12.15%, 국민연금공단 7.60%였다. 지분 12.15%를 보유한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통합 반대 측을, 국민연금이 찬성 측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양측 지분율은 40.56% 대 42.67%로 찬성 측이 2%포인트가량 앞섰다.
그런데 투표결과 임주현 부회장의 이사 선임에 찬성한 표는 의결권 있는 발행 주식 총수의 42.2%에 불과했다. 과반을 얻지 못한 것이다. 모녀 측으로 분류된 주주에서 이탈표가 나왔음을 보여준다.
한미약품그룹 주주들은 OCI그룹과의 통합에 반대표를 던졌다. 한미약품과 OCI 통합을 추진해온 창업주 임성기 선대회장의 딸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과 이우현 OCI그룹 회장의 이사회 진입을 반대했다.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 한미정밀화학 임직원 약 3000명이 모인 한미 사우회는 보유 주식 23만여 주에 대해 이번 주주총회에서 '통합 찬성'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했다. 한미 사우회는 지난 24일 연 사우회 운영 회의에서 'OCI그룹과의 통합을 찬성한다'고 입장을 결정했다.
박준환 기자 naulb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