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사' 벽 허문 이창용 전 총재가 한국경제에 남긴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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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사' 벽 허문 이창용 전 총재가 한국경제에 남긴 짐
  • 박태정 기자
  • 승인 2026.04.26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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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4년의 임기를 마치고 떠났다. 이 총재의 재임 기간은 전례 없는 글로벌 고물가와 금리 역전, 한국 경제의 구조 위기가 맞물린 격변기였다. 그는 폐쇄성이 높기로 유명한 한국은행의 담장을 허물고 사회 전반의 목소리를 내는 '능동의  싱크탱크' 로 조직을 탈바꿈시켰다는 찬사와 함께, 한편으로는 경제 전반에 무거운 짐을 남겼다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4년 임기를 끝내고 한은을 떠났다. 사진은 지난 1월 금융통회원회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한국은행 유튜브 캡쳐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4년 임기를 끝내고 한은을 떠났다. 사진은 지난 1월 금융통회원회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한국은행 유튜브 캡쳐

 ‘한은사(寺)’의 벽을 허문 혁신가

이 총재의 가장 큰 공(功)은 한국은행을 세상 밖으로 끌어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한은은 시장과 소통하기보다 은둔하며 결과만을 통보해 절과 같은 의미에서 '한은사(寺)'라는 냉소 섞인 별명으로 불렸다. 이 총재는 취임 후 시장에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조건부 금리 경로 신호를 도입하고, 금통위원들의 최종 금리 전망치를 인원수까지 공개하며 시장의 불확실성을 걷어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식의 '점도표' 도입은 한은의 통화정책이 더 이상 베일에 싸인 예측 게임이 아님을 선언한 혁명과 같은 변화였다. 무엇보다 저출생·고령화, 수도권 집중, 연금 고갈, 남녀 임금격차 등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건드리는 보고서를 쏟아내며, 한은을 국가가 처한 난제의 해법을 제시하는 싱크탱크로 격상시킨 점은 역대 어느 총재도 해내지 못한 성과라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구조개혁 강조 뒤에 가려진 '경제적 부담'

그가 혁신의 깃발을 높이 든 만큼, 한국 경제가 짊어진 부담이 적지 않다. 그가 범한 과(過)라면 과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통화량의 증가와 환율 급상승이다. 두 지표의 변화는 이 총재가 남긴 숙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취임 당시인 2022년 4월 약 3667조 원인 광의의 통화(M2) 잔액은 임기말 약 4114조 원으로 450조 원 가까이 불어났다.

통화량 증가에는 나름 이유가 있고 이 전 총재나 한은의 노력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취임 초기인 2022년에는 코로아 19 대응 여파로 11~12%로 늘어났다. 이후 2023~2026년에는 긴축적 통화정책과 가계부채 관리 노력으로 증가세가 둔화됐다. M2 증가율은 4~5%로 안팎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그의 재임중 통화량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로 남았다. 

통화량 증가는 화폐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시중에 원화가 흔해지면 그만큼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고, 이는 곧 달러 대비 원화 가격인 환율의 상승 압박 요인으로 작용한다. 미국의 통화정책과  이에 따른 달러 가치 변동과 무관하게 원화가 풀리면 풀릴 수록 우리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환율은 상승은 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취임초 1240원인 원달러 환율은 지난 3월 3일 야간 거래에서 1506,5원을 찍었고 퇴임일인 20일 환율 종가는 1477.2원이었다.  과거 '위기'로 간주된 1400원대 환율은 이 총재 재임기를 거치며 일상의 '뉴노멀'이 됐다. 24일 1484.5원을 기록한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향해 튀어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환보유액도 줄었다. 그가 취임한 2022년 4월 말 외환보유액은 4493억 달러였으나 퇴임하기 전달인 지난 3월 말 4236억 6000만 달러로 줄었다. 256억 4000만 달러나 감소했다. 2월 기준 외환보유액(4276억 2000만 달러) 순위는 세계 12위로 밀려나면서 우리나라는 26년 만에 10위권 밖으로 이탈했다.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상승을 막기 위해 달러를 시중에 푼 결과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돌파하자 한은은 달러를 내다 팔아 원화 가치 하락 속도를 늦췄다. '외환보유액은 장식품이 아니라 변동성이 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라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정책이었다. 

소비자물가 상승이라는 짐도 남겼다. M2 증가와 환율 상승은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를 올리는 핵심 요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M2가 1%포인트 상승하면 소비자물가는 향후 2년에 걸쳐 약 0.51%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앞으로 2~3년 뒤에 우리 경제는 '고물가'를 맞이할 것으로 봐야 한다.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에 비해 2.2% 상승했다. 전달에 비해 0.2%포인트 오른 것이다. 변동성이 심한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도 2.2% 뛰었다. 2%대 물가는 '까마득한 옛날'의 수치로 변모할 가능성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이 모든 게 이 전 총재의 책임은 아니다. 그에게는 대단히 억울한 주장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이임사에서 "통화·재정정책만으로 우리 경제를 지키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가 강조한 구조개혁이 정치권과 사회의 반향을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당장 서민들이 체감하는 고금리·고물가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의 임기 중 안착해버린 '고환율 뉴노멀'과 꺾이지 않는 가계부채의 고착화는 차기 한은과 차기 한은 총재가 짊어져야 할 뼈아픈 짐이 아닐 수 없다. 한은 본연의 임무인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 사이에서 실익을 충분히 챙기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이창용의 4년은 한은 체질을 바꾸느라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럼에도 한국 경제가 치러야 하는 후과는 너무 크고 무겁다.  고생하고 떠난 그에게 이런 평가를 해 미안할 뿐이다. 

박태정 기자 ttch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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