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급락으로 주목받는 '쿠싱' 도대체 어디냐
상태바
국제유가 급락으로 주목받는 '쿠싱' 도대체 어디냐
  • 박태정 기자
  • 승인 2020.04.27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거래가가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가격’을 기록하면서 난데 없이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쿠싱'이라는 도시가 주목받고 있다. 이번 유가하락의 근본 원인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확산에 따른 산업활동 마비과 이에 따른 원유수요 감소이지만 원유를 저장할 곳이 부족해진 거래자들이 다음달 가져가야 할 상품의 인수를 거부한 것이어서 원유저장소로 유명한 쿠싱이 남다른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플레인스올어메리칸 송유관회사의 쿠싱 원유 저장 탱크 전경. 사진=제이미마틴 트위터
플레인스올어메리칸 송유관회사의 쿠싱 원유 저장 탱크 전경. 사진=제이미마틴 트위터

쿠싱은 미국 석유의 집산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산 원유의 기준유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거래되는 곳이자 미국 전역의 송유관이 교차하는 '송유관 교차로'이다. 엑손모빌, 텍사코같은 원유생산업체와 트레이더들이 쿠싱에서 거래를 하면 그 가격이 먼 뉴욕의 선물시장인 상업거래소(NYMEX)에서 선물가격으로 표시된다.

이 곳에는 플레인스올어메리칸파이프라인(PAAP), 엔브리지, 엑스플로러, 제이호크, 마젤란미드스트림파트너스 등 8개 기업이 운영하는 총 8000만 배럴 용량의 저장탱크가 있다. PAAP와 엔브리지가 각각 2006만배럴과 2000만 배럴, 마젤란이 780만배럴, 셈그룹이 760만 배럴, 엔터프라이즈 프로턱츠가 310만 배럴,JP에너지가 30만 배럴  정도의 저유 탱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싱 전역의 저장용량은 9100만 배럴로 추산된다.

또 PAAP가 운영하는 베이슨오일, 셈그룹이 운영하는 셈크루드, 플레인스올어메리칸, 센투리온, 호손, 글래스마운틴, 그레이트솔트플레인스,키스톤,포이닉스프레스 등등 수십 개의 기업이 운영하는 송유관들이 텍사스, 뉴멕시코, 노스다코타 등 미국 전역의 유전들을 쿠싱과 연결한다. 

쿠싱 주간 저장현황(4월17일 현재)
쿠싱 주간 저장현황(4월17일 현재)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엔브리지와 마젤란 등은 지난 10년간 엄청난 투자를 해 저장용량을 절반 이상으로 늘려 현재 가동중인 저장용량은 총 7600만 배럴로 증가했다.  17일 현재 실제 충유량은 5974만1000만 배럴이다. 이에 따라 남은 것은 1600만 배럴 정도다.

5000에이커(20㎢) 면적의 쿠싱에 있는 저유소들은  ‘탱크 팜(tank farm)’이라고 부른다. 석유가 들어찬 저장탱크 350여 개가 늘어서 있다. 탱크는 지름 90m에 높이가 14m에 이르는 것도 있다. 탱크에 기름이 얼마나 차 있는지는 인공위성으로 측정한다. 에너지시장 조사회사 케이로스( Kayrros)는 쿠싱과 기타 지역에 저장된 원유량을 측정하기 위해 인공위성을 이용한다.탱커트랙커스닷컴은 위성사진에 나타난 그림자를 근거로 18일과 20일 사이에 2000만 배럴이 저장탱크에 추가됐다고 주장한다.

미국 CME그룹은 5월 달에 선물계약 이행을 위해 240만 배럴 이상이 쿠싱에서 계약자에게 인도된다고 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석유컨설팅업체 리스타드에너지 자료를 인용해 쿠싱의 저장용량이 2100만 배럴 정도 남아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그나마 남은 공간은 여러 업체가 이미 선점해 임대했다고 전했다. 지난 2월에는 절반도 안 찼는데, 지금 추세대로라면 5월 중으로 탱크들이 꽉 차는 ‘탱크톱(tank top)’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오클라호마 원유 저장 탱크 위성 사진. 사진=탱커트랙커스닷컴
오클라호마 원유 저장 탱크 위성 사진. 사진=탱커트랙커스닷컴

쿠싱은 오클라호마주 페인 카운티의 주민 7800명의 작은 도시다.  이 곳은 1891년 인디언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기 위해 만든 ‘랜드런법’에 따라 백인 정착민들의 땅이 됐다. 쿠싱이라는 이름은 유통 재벌로 벤저민 해리슨 행정부의 체신장관을 지낸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가 1891년 11월10일 우체국을 열고 개인 비서 마샬 쿠싱의 이름을 딴 이름을 붙인데서 비롯됐다.

1912년 토마스 슬릭이 쿠싱 동쪽에서  분유정을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쿠싱 드럼라이트 유전의 유정이 시추되면서 쿠싱은 원유탐사와 생산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컨슈머 오일 컴퍼니가 1913년 정유공장을 열면서 쿠싱은 정유산업의 중심시지로 부상했다. 23개 석유회사와 50여개 정유공장이 가동했고 송유관과 저유소가 곳곳에 들어찼다. 

20세기 초반 오일붐이 일기 시작했을 때 마샬이 이곳에 정유공장을 지었다.

붐은 오래가지 않았다. 원유생산은 1915년 850만 배럴로 정점에 도달했지만 이듬해 절반으로 줄었다. 1940년대 유정이 고갈되면서 생산과 정유시설도 하나둘 떠나기 시작해 커 맥기와 허드슨 1980년대 마지막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그러다가 하루 150만 배럴의 송유능력을 가진 쉘사의 송유관 터미널과 39개 저유소를 유치하면서 쿠싱은 다시 살아났다.

박태정기자 ttchung@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