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심초사'와 '토적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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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심초사'와 '토적성산'
  • 박태정 기자
  • 승인 2020.12.15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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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인이 뽑은 사자성어

경기가 어렵다보니 이곳저곳에서 '노심초사(勞心焦思)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글자 그대로의 뜻은 '수고하는 마음 타는 생각'이라고 한다.

'노심초사(勞心焦思)'라는 사자성어는 '노심(勞心)'과 초사(焦思)'를 합친 말로 그 뿌리가 오래된 말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그러했다는 뜻이다. 무려 2000여년은 됐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인 전한의 역사학자 사마천이 쓴 '사기'에 나온다고 한다. 

고베항으로 회황한 컨테이너선 원아푸스호에 실린 컨테이너가 바다로 쏟아질지 위태위태한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전세계가 전대미문의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경제주체들이 생존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사진=지캡틴
고베항으로 회황한 컨테이너선 원아푸스호에 실린 컨테이너가 바다로 쏟아질지 위태위태한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전세계가 전대미문의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경제주체들이 생존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사진=지캡틴

사기(史記)는 중국 전한시대 태초 원년(기원전 104년) 태사령 사마천(司馬遷)이 아버지 사마담의 작업을 이어받아 전한 3년(기원전 98년)에 완성한 역사서이다. 중국 상고시대의 오제(五帝)시기부터 한나라 무제 태초 년간 (BC 104〜101년)까지 중국과 주변 민족의 수천년 역사를 포괄해 저술한 책이다.

노심(勞心)은 사기 '등문공'의 "故曰 或勞心 或勞力 勞心者 治人 勞力者 治於人(고왈 혹노심 혹노력 노심자 치인 노력자 치어인"에 나온다. 맹자의 말이다. 풀어보면 '혹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도 있고 힘을 수고롭게 하는 자도 있다.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당한다'는 말이라고 한다.

초사(焦思)는 '사기'의 '월왕구천세가'에 나온다. 구천이 오왕 부차의 똥까지 맛을 보며  환심을 산 후 풀려나 돌아온 후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를 남긴 인고의 삶을 표현한 데서 유래한다. '吳旣赦越 越王句踐反國 乃苦身蕉思 置膽於坐 坐臥卽仰膽 飮食亦嘗膽也(오기사월 월왕구천반국 내고신초사 치담어좌 좌와즉앙담 음식역상담야'라는 문장에 나온다. 이 문장의 뜻은 '오나라가 이미 월나라의 구천을 풀어주자 월왕 구천이 나라로 돌아와서 몸을 수고롭게 하고 속을 태우면서 앉는 자리 옆에 쓸개를 놓아두고 앉거나 누우면 쓸개를 바라보았으며 먹거나 마실 때 또한 쓸개를 맛 보았다'이다.

쓰디쓴 쓸개를 보면서 과거에 당한 치욕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처신할지 각오를 다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반추와 반성, 고민과 고심이 노심초사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난국 타개에 꼭 필요한 결단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우리 중소기업인들이 올해 경영환경을 진단하는 사자성어로 '노심초사'를 선택했다. 중소기업 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2~7일 3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사자성어로 풀어 본 중소기업 경영환경 전망조사'를 한 결과 노심초사를 가장 많은 36.3%가 선택했다.

중기중앙회는 "이는 전대미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비상 경제 상황에서 경영 위기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기업 유지를 위해 고민이 많은 해로 진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심초사는 사자성어는 중소기업들이 내년에 맞는 사자성어로 선택한   '토적성산(土積成山)'과 무관하지 않다. 29.7%가 선택한 말로 '흙을 쌓아 산을 이룬다'는 것쯤 된다. 즉 작은 것이 쌓여 큰일을 성취한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티끌모아 태산이란 말고 맞아떨어진다. 노심초사하지 않고 어찌 흙을 매일 쌓고 또 쌓겠는가? 쌓이고 쌓여야만 넘치고 산이 되는 게 아닌가?

중앙회는 "내년에는 내실 경영으로 코로나19 경영 위기를 벗어나 성과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심초사든 토적성산이든 불굴의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기업인들이 토적성산 다음으로는 백번 꺾여도 굴하지 않는다는 뜻의 백절불굴(百折不屈)(22.3%)을 선택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현재 경제사황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어렵다. 코로나19로 내수는 얼어붙고 수출시장도 막히고 있다. 경제는 내리막길인데 부동산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주 52시간제 시행, 최저임금인상에 이어 코로나19 광풍으로 매출이 급감해 임대료를 못낼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경제는 사면초가 신세로 미래가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암울하다. 이러니 중소기업인들의 애간장이 다 녹아내릴 지경이다. 그래서 노심초사하고 토적성산을 꿈꾼다.

인간이 어찌 미래를 내다보겠는가? 그것은 신의 경지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대비하는 것만이 인간의 몫이다. 그것이 노심초사요 토적성산이다. 깊이 성찰해 대비하고 꾸준히 한다면 성을 쌓고 산을 움직인다. 코로나19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하고 불투명한 현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속으로는 애를 끓이되 겉으로는 차분하게 걸어가는 '우보천리'의 인내심을 발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태정 기자 tt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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