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키스톤송유관 취소 OPEC에 증산 요청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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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키스톤송유관 취소 OPEC에 증산 요청 '위선'
  • 박고몽 기자
  • 승인 2021.08.1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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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타주 OPEC에 증산 요구한 미국 위선 맹공

"내가 하면 로맨스,남이 하면 불륜, 내로남불"

한국에서 이런 말이 유행하고 있다. 세상 만사를 자기 위주로만 하는 사람들의 위선을 비꼬는 말이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증산을 요구한 미국의 '위선'을 비난하는 앨버타주 정부의 비난을 보면 이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을 이유로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원유수송관 사업인 키스톤XL 프로젝트를 거부했다. 그런에 원유가격이 올라 미국내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자 부랴부랴 OPEC에 증산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키스톤 XL을 가동하면 미국과 가까운 나라에서 온실가스가 대량으로 발생하니 싫지만 저 멀리 중동에서 원유를 생산하느라 온실가스가 배출되건 말건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게 아니고 무엇일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백악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백악관

조 바이든 대통령이 키스톤 XL 프로젝트를 취소하면서 캐나다는 엄청난 경제 타격을 받았다.  캐나다산 중유를 미국에 수출하지 못해 손실을 본 것도 있지만 그동안 건설하느라 들인 수십억 달러의 비용은 물론이요 이 일이 가져다 줄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캐나다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이러니 석유산업 중심지 앨버타주가 OPEC에 산유량을 계획보다 빨리 늘릴 것을 압박하는 미국 백악관을 곱게 볼리가 없다. 

미국이 OPEC에 증산을 요구하는 것은 순전히 자기 나라 사정 때문이다. 여름철 운전시즌이 다가오고 휘발유값이 오르니 이를 진정시키려는 속내다. 휘발유 값을 비롯한 석유제품 값이 오르면 물가가 오르고 올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테이퍼링 즉 자산매입 축소 시기를 더욱 앞당길 게 분명하다. 그럴 경우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겨우 회복하는 미국 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현재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68달러 수준으로 70달러에 육박했고 북해산 브렌트유는 이미 70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 이맘때에 비교하면 거의 두 배수준이다. 미국 CNBC방송에 따르면,  WTI 가격은 올들어 41.38% 올랐다. 1년 전에 비하면 무려 52.09%나 상승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운전자들이 거리로 나서면 수요증가로 유가는 더 뛸 수 있다.

미국은 물가상승이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OPEC을 압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OPEC과 러시아 등 산유국들은 유가를 과거 수준으로 되돌려놓겠다며 감산합의를 이행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합의를 깨고 미국을 위해 증산을 하라고 하는 미국은 "참으로 뻔뻔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제이슨 케니 캐나다 앨버타주 수상. 사진=라프레스
제이슨 케니 캐나다 앨버타주 수상. 사진=라프레스

앨버타주도 그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비판론자 중의 하나일 것이다.제이슨 케니 앨버타주 수상과 소냐 새비지(Sonya Savage) 앨버타주 에너지장관은 11일 성명을 내고 미국을 맹 비난했다. 새비지 장관은 "키스톤 XL 소유관 사업을 취소한지 몇 달 만에 미국을 비싼 연료값으로부터 구해달라고 OPEC에 증산을 구하는 것은 위선의 낌새가 난다"고 비난했다. 새비지 장관은 "키스트논XL은 미국인들에게 신뢰받는 동맹국이자 친구로부터 안정된 에너지원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새비지 장관은 이런 비판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 성명문과 함께 올렸다. 새비지 장관은 "미국의 증산 요청은 러시아가 미국의 제2 원유 수출국이 된 지금 일어난 일"이라고 꼬집었다.

소냐 새비지 앨버타주 에너지 장관. 사진=소냐 새비지 장관 트위터
소냐 새비지 앨버타주 에너지 장관. 사진=소냐 새비지 장관 트위터

캐나다 유력 일간지 파이낸셜포스트(FP)도 비판에 가담했다.FP는 키스톤 송유관 프로젝트는 앨버타산 원유를 하루 83만배럴 미국 네브라스카로 보내 텍사스 정유공장으로 갔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1월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대통령 허가를 취소하자 TC에너지는 지난 6월 사업을 포기했다. 이로써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막았다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부활시킨 사업은 완전히 중단됐다.

사업중단으로 방치된 캐나다 앨버타주의 키스톤XL 송유관 공사 현장. 사진=CBC캐나다
사업중단으로 방치된 캐나다 앨버타주의 키스톤XL 송유관 공사 현장. 사진=CBC캐나다

이런 미국 정부였으니 캐나다에 원유수출을 늘려달라고 요청하지 않는 염치는 있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대신 화살을 전세계 석유생산국으로 돌렸다. 그는 지난 10일 성명을 내고 "세계 경제가 회복하는 이 중요한 때에 이게(산유량)이 충분하지 않다"면서 "비싼 휘발유 값을 내버려둔다면 현재 세계 경제 회복에 해를 가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유수출국인 캐나다를 옆에 두고 미국이 먼 산유국에 생산량을 늘릴 것을 요청하니 캐나다의 비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캐나다는 지난 5월 하루 400만 배럴의 원유를 미국에 수출했다. 송유관 사업이 계속됐더라면 미국의 경제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를 충분히 감당할 만한 양의 원유를 미국에 수출했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스스로 이를 막았다. 

말이 안 되는 것은 미국의 이웃국가이자 산유국인 멕시코를 제치고 러시아가 미국의 2대 석유 수출국이 된 점이다. 러시아는 지난 5월 84만4000배럴의 원유를 미국에 수출했다.  이는 미국이 에너지를 외국에 의존하는 일을 바이든 정부가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조지 애벗 텍사스주 공화당 주지사는 트위터에 적은 글에서 "당신 행정부가 방해만 않는다면 우리 생산업체들은 원유를 쉽게 생산할 수 있다"면서 "OPEC이 아니라 미국 노동자들이 휘발유값을 낮출 수 있는 원유를 생산하도록 허락하라. 우리를 외국 에너지원에 의존하하게 하지 말라"고 적었다.존 코닌 텍사스주 상웡의원도 "대통령이 갑자기 휘발유 가격 상승이 걱정스럽다면 미국 땅에서 에너지 생산을 죽이는 일을 멈춰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사우디에 증산하라고 구걸하면서 백악관이 미국 에너지 회사의 한 손을 등뒤에 비틀어매는 것은 불쌍하고 부끄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과연 OPEC이 미국말을 고분고분하게 들을지는 미지수다.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글로벌 경제회복이 타격을 입고 이에 따라 원유수요가 줄 수도 있는 전망이 나오는데 미국내 휘발유값을 내리려고 무턱대고 생산을 늘릴까?

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미국내 휘발유 가격 상승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캐나다산 원유를 들여오지 않겠다는 이념에 따라 내린 게 근본원인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지구 온난화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차근차근, 각국이 처한 사정과 역량을 감안하고 협의를 통해 하는 게 순리라고 생각한다. 힘있는나라가 '내로남불'식으로 처신하거나 지금처럼 거대 금융회사가 나서 기업을 압박하고 힘있는 선진국이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압박해서는 달성될 수 없는 일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순제로로 가는 길은 길고도 험하다.

몬트리올(캐나다)=박고몽 기자 celment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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