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루블 부채상환 결정, 한국 기업 뒤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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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루블 부채상환 결정, 한국 기업 뒤통수
  • 이정숙 기자
  • 승인 2022.03.0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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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한국을 비롯해 '비우호국가'로 지정된 나라에는 러시아 기업들이 자국 통화인 루블화로 부채를 지급하는 것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국가들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루블화 가치가 폭락했기 때문에 루블을 받아 다른 원자재를 구입해야 하는 우리기업들이 막대한 환차손을 감수하는 등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러시아에는 모스크바 인근에서 TV를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상트페트르부르크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현대자동차 등 40여개 기업이 진출해 있고 4700여 중소기업이 수출하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 시민이 달러 루블 환전 전광판 앞에 서 있다. 사진=타스
러시아 모스크바 시민이 달러 루블 환전 전광판 앞에 서 있다. 사진=타스

8일(현지 시각)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7일 우호국으로 지정한 나라에 대한 부채 지급이 미국과 유럽 등의 제재로 어려워짐에 따라 이를 임시로 루블로 상환할 수 있게 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러시아와 러시아 기업, 시민에 비호적인 조치를 한 국가들과 영토 명단을 승인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명단에 포함된 국가에는 우리나라 외에 미국과 캐나다, 유럽연합(EU), 영국과 영국령 버진군도,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대만, 몬테네그로, 스위스, 알바니아, 안도라,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모나코, 노르웨이, 산마리노, 북마케도니아, 미크로네시아 등이 포함됐다.

러시아는 비우호국가 목록에 대해 "이 정부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5일 지시한 '일부 외국 채권자에 대한 한시적 의무 이행 절차에 관한 대통령령'에 따라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법령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 기업과 개인이 비우호국의 외국 채권자에게 러시아 루블화로 부채를 상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조치는 월 상환액이 1000만 루블이거나 외화로 이에 상당한 금액에 적용된다.

비우호국들에 루블로 부채 지급을 위해 러시아 은행 한 곳에 특별 루블 계좌가 만들어지고, 이 계좌를 통해 외국 채권자들에게 중앙은행이 매일 정하는 기준환율에 따라 루블로 채권 원리금이 지급된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제재에 맞서 러시아가 최초로 내놓은 '보복 수단' 중 하나로, 제재에 따른 피해를 제재국 기업들도 부담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문제는 루블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외환시장에서 7일 오후 7시48분 1달러는 154루블, 1유로는 168.9루블에 거래되고 있다. 연초에 비하면 달러화에 대한 루블화 가치는 90% 폭락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엔 보통 달러당 70~80루블에 거래됐지만 이후 루블가치는 폭락하고 환율은 급등하고 있다.지난 3일 오전 11시44분에 달러가치는 전날에 비해 11.63% 오르면서 1달러에 118.35루블에 거래됐다. 유로 역시 8.38% 오른 1유로에 125.06루블에 거래됐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환율이 폭등한 것이다. 

이는 달러표시 외화부채를 루블로 갚기 위해서는 러시아 기업과 개인은 천문학 수준의 루블을 긁어모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채권국이나 기업들은 루블로 받을 경우 가치 하락에 따른 환차손이 나기 때문에 루블화 상환금액을 기피할 수 있다.

루블로 받아서 나중에 가치가 오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력을 갖춘 기업은 루블 대금을 받을 경우 큰 영향이 없지만 받은 그동안 달러로 받은 수출 대금으로 다른 원자재를 구입해온 기업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환전을 해서 원자재를 사야하기 때문에 러시아 루블 결제를 꺼릴 수 있다.

현대자동차 러시아 공장. 사진=현대자동차 유튜브 캡쳐
현대자동차 러시아 공장. 사진=현대자동차 유튜브 캡쳐

 

이에 따라 러시아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거나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에도 비상등이 켜졌다.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러시아에는 현재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 40여곳이 진출해 있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각각 생산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중소기업 4759곳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러시아에 수출하고 있다. 이들은 평균 57만9000달러어치를 러시아에 수출했다. 이미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루블화 결제 또는 가격인하를 요구하게 되면, 루블화 평가절하에 따른 환차손이 우려된다"면서 "중소기업의 주요 수출 비중이 큰 자동차·중고차(24.4%), 화장품(9.9%), 철강판(5.1%) 순으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뒤늦게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한국은 러시아의 결정으로 다른 나라들보다 먼저 경제 타격을 입는 나라가 됐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정숙 기자 kontrakr@naver.com

이정숙 기자 kontrak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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