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상적자, 미국 물가, 한국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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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상적자, 미국 물가, 한국 대응
  • 박준환 기자
  • 승인 2022.04.1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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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가 국제유가와 밀과 옥수수 등 농산물 원자재 가격 상승에 몸살을 앓고 있다. 고유가에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일본은  40여 년 만에 경상수지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미국과 한국은 원자재발 인플레이션이 극심하다.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억제를 기준금리 인상이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국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이창용 한국은행 후보자. 사진은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 때의 모습. 사진=IMF
이창용 한국은행 후보자. 사진은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 때의 모습. 사진=IMF

문제는 노도처럼 밀려오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려는 한국의 가계부채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점이다. 물가 억제를 위해 금리를 올리자니 가계부담 증가가 가져올 연쇄효과로 선뜻 빼들기 힘들다. 과거 어느 때보다 정책당국이 국제 경제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국내 경제의 취약점을 미세조정할 수 있는 기술력을 발휘할 시점이다.

일본 경제는 거의 그로기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 수입 가격 급등으로 경상수지가 1980년 오일쇼크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달러가 빠져나가니 엔화 약세가 가속화한다. 엔화 약세는 일본 수출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요소가 된다. 그러나 수출로 번 돈보다 빠져나가는 돈이 더 많으니 경상수지는 적자가 되고 다시 엔화는 약세가 되는 악순환이 벌어질 조짐이다.

엔화 약세는 수입물가를 올려 저성장속 물가하락인 스테그네이션 상태인 일본 경제를 부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현실은 전혀 다르다. 물가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대표 경제신문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올해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16엔,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5달러일 경우 2022회계연도(올해 4월부터 내년 3월)에 경상수지 적자가 8조6000억엔(약 85조원)을 기록할 것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9일 보도했다.

일본이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다면 이는 2차 오일쇼크 후폭풍에 시달린 1980년 이후 처음이 된다. 그만큼 일본은 탄탄히 축적한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엔화가치를 떠받쳐왔다. 엔화는 기축통화가 아니면서도 기축통화와 비슷한 '안전자산'의 지위를 누려왔다.

'안전자산'의 대명사로 통한 일본 엔화 가치가 추락하고 있다 일본경제는 엔화약세, 경상수지 적자라는 덫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CME그룹/비즈니스인사이더
'안전자산'의 대명사로 통한 일본 엔화 가치가 추락하고 있다 일본경제는 엔화약세, 경상수지 적자라는 덫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CME그룹/비즈니스인사이더

그렇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우선 10일 1달러당 엔화 환율은 124.3엔으로 니혼게이자이의 전망치를 넘어섰다.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8일 배럴당 98.26달러로 낮아졌지만 3월 초 120달러까지 오른 적이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기속돼 공급차질이 벌어진다면 얼마든지 급등할 여지가 있는 게 유가다.

니혼게이자이는 달러당 환율이 120엔, 원유 가격이 배럴당 130달러일 경우에는 일본 경상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인 16조 엔(약 158조원)까지 급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의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은 에너지 가격 상승 탓이다. 일본은 원유와 천연가스를 모두 수입에 의존한다. 유가가 오르고 엔화가치가 떨어진다면 일본이 해외에 지급해야 할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경상수지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미 일본은 지난 1월 1조1887억 엔(약 11조7600억원)의 적자를 냈다. 2월에는 1조6483억 엔(약 16조3000억 원)의 흑자로 돌아서긴 했지만 흑자 규모는 1년 전과 비교해 42.5%나 줄었다.

일본의 경상수지 적자 폭이 커지면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일본 경제에는 위협 요인이다. 달러화와 견준 엔화 가치는 1분기에 5.7% 하락했다. 1분기에 주요 25국 화폐 가운데 엔화 하락 폭은 러시아 루블화에 이어 둘째로 컸다.

엔화 가치는 3월 말 한때 달러당 125엔까지 밀렸다. 2015년 달러당 125엔이 됐을 때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더 이상 엔저는 없을 것"이라고 말해 달러당 125엔이 이른바 '구로다 라인"이라고 불렸다. 7년 만에 다시 구로다 라인에 닿을 정도로 엔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금융외환시장에선 '엔화=안전자산'이라는 공식은 이미 깨졌다.

엔화 약세가 물가에 보탬을 줄 것이라는 통념도 깨졌다. 높은 국제유가, 높은 상품가격으로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법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0%대 물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엔화 약세, 수입물가상승, 소비자물가 상승이라는 순환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2022년 3월 소비자물가 동향. 사진=통계청
2022년 3월 소비자물가 동향. 사진=통계청

한국은 소비자물기자수가 3월에 4.1%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도 12일 발표할 예정인 3월 소비자무 물가가 2월(7.9%)보다 높은 8.5%를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오는 5월 3~4일 예정된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Fed0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발표를 앞두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예상치를 넘어서지 않고 전망치에 부합하는 수준만 나와도 Fed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일본은 예외다.

그렇기에 한국은행의 고심의 골이 깊어질 전망이다. 미국을 따를 것이냐, 일본을 예의주시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 떠올랐다. 한국은행은 14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통화정책을 결정한다.  한국은행 총재가 사상 처음으로 공석인 상황에서 금리인상 압력이 심해지고 있어 한은의 고민은 적지 않다. 자칫 적기에 통화정책 운용을 제대로 못하는 실책을 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부담은 매우 크다.

14일 열리는 금통위는 상영 금통위원이 의장을 대행해 주관한다. 한은이 총재없이 금통위를 여는 것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겸직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처음이다.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이 다수결로 금리 인상 혹은 동결 여부를 결정한다.

금통위는 지난해 8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해 같은 해 11월과 올해 1월까지 모두 세 차례에 기준 금리를 1.25%까지 끌어올렸다. 추가 인상은 2분기(4~5월)로 넘겨 놓았다.

그동안 시장 분위기는 4월은 건너뛰고 5월에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쪽이었다. 그렇지만 최근 기류는 확연히 달라졌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Fed의 매파  쏠림 등이 3각 파고가 돼 한국경제를 덮치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 8월부터 선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미국 기준금리보다 높아 그동안 여유가 있었다. 한은이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으면 자칫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은 역전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이렇게 되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한은은 Fed의 긴축 속도에 발걸음을 맞추는 게 순리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미국 금리 인상에 동조하지 않을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이 31억5000만 달러가량 순유출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금통위가 이달 금리 인상이라는 강수를 둘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외 악재는 큰 부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을 키울 가능성은 불을 보듯 훤하다.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4%대 물가상승률,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이 큰 시점에 한은이 기준금리 결정에 머뭇거릴수록 통화정책 역사상 오점을 남길 수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을 찾아야 한다. 전세계 시장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팩트(사실)을 확인하고 대응하는 게 순리라고 본다. 이미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요 측면의 물가 상방 압력이 커진 가운데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공급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 또한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물가오름세가 크게 둔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을 금융정책의 출발점으로 삼는 게 현명하리라고 본다. 가계부채가 많다고 고삐풀린 물가를 잡지 않는 것은 더 큰 우를 범하는 것과 같다. 노도처럼 밀려오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면서도 가계부채 부담이 큰 금융소비자의 이자부담을 줄이는 미세조정 능력 발휘가 새 정부 경제팀이 발휘해야할 첫 번째 과제다. 

박준환 기자 naulb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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