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호황 정유사에 '횡재세'?...반시장 발상
상태바
초호황 정유사에 '횡재세'?...반시장 발상
  • 박태정 기자
  • 승인 2022.07.05 1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내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에도 천정부지로 치솟자 정치권에서 '횡재세(Windfall tax)'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횡재세를 물려 정유사들이 챙기는 초과이익을 환수하자는 것이다. 영국이 최근 정유업체에 초과 이윤세를 물리고 있고 미국도 이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는 만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과연 횡재세는 타당한 대책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시장에 어긋나는 발상'이다. 

국제유가 상승에 정유사 이익이 늘자 정치권에서 초과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횡재세를 물리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리그존(Rigzone)닷컴
국제유가 상승에 정유사 이익이 늘자 정치권에서 초과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횡재세를 물리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리그존(Rigzone)닷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달 21일 "고유가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정유업계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 의장도 "정유사의 초과 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 등을 통해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거들었다. 소수 여당인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도 "정유사들도 혼자만 배 불리려 해선 안 된다"며 야당 편을 들었다. 

국내에서 횡재세 도입 주장이 나온 것은 최근의 국제유가 급등으로 정유업체가 큰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탓이 크다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S-OIL),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가 올해 1분기 총 4조7668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고 2분기에도 1분기에 버금가는 실적을 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회사인 에쓰오일의 경우 영업이익이 1분기 1조2000억 원에서 2분기 1조 70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증권사 전망이 나와 있다. 

이처럼 많은 이익을 챙기니 세금으로 환수하자는 주장이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이들은 정유사들은 고유가 시기에 폭리(margin)를 거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최근 "유류세 30% 인하 조치가 시행된 지난 5월 이후 휘발유는 지난달 16일까지 세금 인하액 247원 중 129.7원만 가격 하락에 반영됐고, 같은 기간 경유는 인하액 174원 중 67.7원만 하락했다"고 발표한 것은 좋은 사례이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 조치 이후 정유사의 리터(L)당 평균 마진이 오히려 더 커졌다는 게 용 의원실의 분석이다. 유류세 인하 전(지난해 4월12일~11월11일)엔 휘발유의 정유사 세전 공급가에서 우리나라가 주로 수입하는 원유인 두바이유 가격을 뺀 평균 마진이 L당 177.2원이었는데, 유류세 인하 후에는 270.7원으로 늘어 52.7% 증가했다는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은 국내 주유소의 판매가격 상승 폭이 국제 가격 상승 폭보다 더 커 유류세 인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는 주장도 한다. 정유사·주유가 마진과 유통비용을 더 남기고 있으니 횡재세 등으로 대응이 필요하다고 한다. 

경윳값과 휘발윳값이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6월16일 낮 12시 서울 필동의 한 주유소에 경윳값과 휘발윳값 안내 표지판이 서 있다. 사진=박준환 기자
경윳값과 휘발윳값이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6월16일 낮 12시 서울 필동의 한 주유소에 경윳값과 휘발윳값 안내 표지판이 서 있다. 사진=박준환 기자

정유사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우선, 정유사들은 유류세 인하 전·후 유통비용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용 의원실 등이 분석에 이용한 주간 단위 가격은 사후정산이 반영되지 않은 가격이어서 정확하지 않으며 주유소 사후정산이 반영된 실제 판매가격으로 분석하면 정유사들은 유류세 인하 전보다 인하 후 유통비용을 줄인 것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둘째, 정부의 유류세 인하에 따른 효과로 정유사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는 지적 역시 잘못됐다는 게 정유업계의 판단이다. 정유사들은 매출은 수출증가 덕분이 크다고 주장한다. 정유업계 매출액 중 수출액 비중은 지난 2년간 53~54%라고 한다.

또 경영실적 호조 원인 중 하나는 재고 관련 평가이익이라는 것이다. 정유 4사가 1분기에 거둔 영업이익의 40%는 재고 물량의 평가이익이 늘어난 결과라고 정유사들은 입을 모은다. 기름값이 상승할 때에는 싼 가격에 사둔 재고 물량에서 이익이 발생하지만 반대로 기름값이 하락할 때에는 미리 사둔 재고 물량에서 손실이 생긴다. 현재 고유가 국면에서는 원유의 평가이익도 덩달어 늘어나 영업이익 증가에 기여한다는 설명이다.

셋째, 국내 정유사와 해외 정유사들은 전혀 다른 처지에서 영업한다고 정유사들은 주장한다. 즉 국내 정유사들은 해외에서 원유를 사서 국내에 들여와 정제한 다음 석유제품을 국내외에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 정제마진이 수익의 주요 원천이다.

반면,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로열더치쉘, 셰브런과 엑슨모빌 등 석유메이저들은 전세계 자체 유전에서 원유를 채굴하고 정제해 판매한다. 유가가 오르면 '문자그대로' 횡재를 하게 된다. 그런 만큼 석유메이저들에게 횡재세를 물리듯 정유사들에게 초과이익 환수세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정유사들은 주장한다.

넷째, 국내 정유사들은 가격 등락의 위험(리스크)을 정유사가 전부 안고 제품을 생산,판매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하소연한다.

금융위기 발생 이전인 2008년 7월 글로벌 기준유인 브렌트유 평균은 배럴당 135달러로 월 평균으로는 사상 최고점을 찍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2008년 7월11일 배럴당 147.27달러를 기록했다. 2008년에는 연평균 97달러까지 치솟으면서 배럴당 100달러 시대가 시작됐다.

같은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충격으로 급격한 자본유출과 주가폭락, 환율급등이 일어난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이듬해 2월에는 39달러대로 폭락했다. 국제유가가 롤러코스터를 타자 정유사들은 연초이후 높은 정제마진 덕분에 많은 이익을 남겼으나 유가 폭락 후 정제마진이 없어지고 손실을 봐 연간으로는 경우 수지를 맞추느라 진땀을 흘렸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유가상승기에 초과이익을 환수한다면 유가 하락으로 정유사들이 손실을 보면 손실을 보전해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유가 폭락으로 정유사들이 2조 원대 손실을 낸 2014년은 물론, 코로나19 사태로 적자 5조 원을 기록한 2020년 정부와 정치권은 정유회사의 손실을 보전해주지 않았다. 가격 상승과 하락에 따른 이익과 손실은 민간기업이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유가 상승에 따른 일시 수익에 세금 폭탄을 퍼부으려는 것은 시장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는 반시장 행태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 관계자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생각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동시에 정유사들이 겪는 어려움도 감안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다른 관계자는 "외부 요인에 일시 생기는 수익에 횡재세를 매긴다면 기업의 투자를 막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이 나서 지금 횡재세를 부과하도록 한다면 유가가 떨어질 때에는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할 것인지 궁금하다. 물가 안정을 위한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인하는 게 아니다. 그렇더라도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혹은 그런 기류에 편승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정책을 남발하면 부작용을 초래할 뿐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박태정 기자 ttchung@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