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와 견줜 원화의 환율이 100엔당 900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8년 사이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엔화가치가 하락하면 우리 원화 가치가 올라가는 만큼 일본 여행이 급증해 여행수지 악화를 가속할 수 있다. 일본 제품 가격도 싸져 일본의 대외 수출이 늘어 우리 수출에는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속도라면 원엔 환율을 100엔당 800원대에 진입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엔화는 서울 외환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기준 환율인 달러를 이용해 간접 계산하는 만큼 원엔 환율을 재정환율( 裁定換率)이라고 한다.
16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오후 3시 현재 100엔당 906.15엔을 기록했다. 전날에 비해 0.26%(2.39원) 하락했다. 원엔 환율은 2015년 6월 26일(905.40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 엔저 현상이 이어지고 있어 2015년 6월 이후 8년 만에 100엔당 800원대까지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4월 말 100엔당 1000원을 넘나든 원엔 환율은 현재 900엔대 초반으로 9% 넘게 떨어졌다. 이 기간 달러화 대비 엔화는 5%대 약세인 반면, 달러화 대비 원화는 4%대 강세로 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엔화 대비 원화 환율이 큰 폭으로 하락(원화 가치 상승)한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금리를 올리는 동안에도 일본만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는 등 통화 완화 정책을 펴면서 엔화가 많이 풀린 탓에 엔화가치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Fed가 14일(현지시각) 기준금리를 연 5.00~5.25% 수준에서 동결했지만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고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기준금리를 현행대로 유지하면 엔화가치 약세로 달러와 원화 가치가 오르면서 원엔 환율은 더 내려갈 가능성은 충분하다. BOJ는 15∼16일 통화정책회의를 여는데 현행 완화 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엔화는 강한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15일 미국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은 최대 1% 하락한 달러당 141.50달러까지 내려갔다.
개인들은 엔화 사모으기가 한창이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P모(58)씨는 엔화를 사모으는 투자자중 한 사람이다. 그는 "엔화가치가 하락할 때마다 조금씩 엔화를 사모으고 있다"면서 "앞으로 일본 여행을 하거나 물건을 살 때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한·KB·하나·우리 4대 시중은행 엔화예금 잔액은 11일 현재 8039억 엔(7조3300억 원)으로 4월 말(5778억 엔, 5조2670억 원) 대비 39% 늘어났다. 하루 평균 84억 엔(약 770억)씩 엔화 예금이 불어난 셈이다. 5월 말(6979억 엔)에 비해서도 1191억 엔(1조 1137억 원)이나 늘어났다.엔화 예금이 늘어나는 것은 엔화 가치가 현재는 하락하지만 중장기 관점에서는 가치가 다시 오를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환차익을 챙기려는 투자 수요가 몰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단 BOJ가 현재의 정책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가능성이 낮지만 BOJ가 40여년 만에 가장 높은 4% 상승률을 보이는 물가를 잡겠다며 정책을 전환하면 엔화가치가 오르면서 모든 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을 투자자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수영 기자 isuyeong202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