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밀 가격 하락…라면값도 내려야"
국내 1위 라면 업체 농심이 정부 압력에 라면 가격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농심이 라면 가격을 내린 것은 2010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라면의 소비자물가지수가 사실상 최고치를 찍으면서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라면값 인하' 발언을 하는 등 정부가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업계 1위 농심리 라면 출고가격을 내리기로 함에 따라 라면 업계는 물론 가공식품·외식유통업계로 가격인하가 확산될지 주목된다.
■신라면 50원·새우깡 100원 내린다
농심은 7월1일부터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가를 각각 4.5%, 6.9% 인하한다고 27일 발표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라면 값 적정성을 언급한 지 9일 만이다. 이번 인하로 농심은 소매점 기준 1000원에 판매되는 신라면 한 봉지의 가격을 50원, 1500원인 새우깡은 100원 낮아질 것으로 농심은 예상하고 있다.
이는 농심이 국내 6개 제분회사에서 공급받는 소맥분 가격이 7월부터 5% 인하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농심 관계자는 "제분사들의 제안가격을 분석하니 5%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농심이 얻는 비용 절감액은 연간 약 80억 원 수준으로 이번 가격 인하로 연간 200억 원 이상의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심이 라면 출고가를 내린것은 2010년 이후 13년 만이다. 2010년 당시 밀가룻값이 떨어지자 라면업계는 라면값을 20~50원 낮췄다. 농심은 신라면 등 핵심 제품 가격을 2.7~7.1% 인하했고 오뚜기, 삼양식품은 최대 6.7%까지 내렸다. 올해는 오뚜기가 지난 4월 '진짜쫄면'의 편의점 판매가를 10.5% 내리고 편의점 CU도 자체 원두커피의 가격을 100원 낮췄다. 이는 고물가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추경호, 가격 인하 압박
정부는 최근 물가가 둔화세를 보이면서 하반기 정책기조를 물가 안정에서 경기 부양으로 전환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전체 물가상승률이 상방 압력을 받으면, 정부 정책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가격인하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라면물가는 약 13% 뛰었다. 지난달 가공식품 소비자물가상승률(7.3%)을 두 배 가까이 웃도는 수치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라면 소비자물가지수는 124.04로 2009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지난해 9월 농심은 라면 출고가를 평균 11.3% 인상했고 뒤이어 오뚜기는 11%, 삼양식품은 9.7% 가격을 올렸다.
추경호 부총리는 지난 18일 KBS 방송 프로그램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난해 9~10월 (라면값이) 많이 인상됐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1년 전보다 약 50% 내려갔다"면서 "기업들이 밀 가격 하락에 맞춰 적정하게 판매가를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그는 "라면과 같은 품목은 시장에서 업체와 소비자가 가격을 결정해 나가야 한다"며 "정부가 개입해서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소비자 단체에서 적극 나서 견제하고 압력을 행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어 26일 라면 원료인 밀가루를 공급하는 제분사와 간담회를 가졌다. 농축산식품부는 간담회에서 CJ제일제당과 대한제분 등 7개사에 밀 수입 가격 하락을 밀가루 가격에 반영해달라고 요청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라면 등 국민 생활에 밀접한 주요 식품의 가격 등을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담합 가능성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공정위가 나섰다는 분석이다.
제분업계가 7월 출하가격을 인하하면서 라면업체로서는 사실상 가격 인하를 거부할 명분이 사라졌다. 당초 라면업체들은 밀가루 가격을 제외한 원료비, 물류비, 인건비 등 생산 비용이 높아 라면값 인하에 어렵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농심의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농심이 생산하는 라면과 스낵제조용 원재료 중 소맥분(밀가루)과 팜오일 등이 전체의 56.8%를 차지한다. 농심은 자체 밀가루 회사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대한제분,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등에서 공급받고 있다.
그러나 농심이 라면업체 중 가격 인하에 첫 물꼬를 트면서 삼양식품 등 다른 라면업체들도 조만간 가격 인하에 동참할 것으로 전망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복잡한 유통 구조에서 제분사 등 원재료 담당 기업부터 가격을 크게 낮추면 최종 제품 생산 유통기업들도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환 기자 naulboo@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