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성장률 역전과 일본의 숙제 '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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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성장률 역전과 일본의 숙제 '물가'
  • 박태정 기자
  • 승인 2023.08.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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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2분기 성장률이 1분기에 비해 1.5%, 전년 동기에 비해 6% 각각 증가했다고 일본 내각부가 밝히면서 한일 경제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그동안 일본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한국의 성장률이 으레 일본 보다가 높다는 게 통설이었는데 이 통설이 깨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1분기 성장룰도 일본이 앞섰다. 그럼에도 일본의 성장률 이면에는 일본이 풀어야 할 근본 숙제가 도사리고 있다.  

올해 일본의 성장률이 한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엔화. 사진=CME그룹/비즈니스인사이더
올해 일본의 성장률이 한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엔화. 사진=CME그룹/비즈니스인사이더

일본 내각부는 올해 2분기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이 561조 엔(약 5164조 원)으로 1분기보다 1.5% 증가했다고 15일 밝혔다.이로써 일본 경제는 지난해 4분기(0.1%)부터 올해 1분기(0.7%), 2분기까지 3분기 연속 성장했다.전년 동기에 비해서는 일본 경제는 무려 6% 증가했다고 니혼게이자신문은 평가했다.

일본의 2분기 성장률은 미국(2.4%)이나 유로존 성장률(1.1%)을 크게 압도한다. 미국과 유로존이야 성장이 노쇠한 선진국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성장속도가 빠른 것은 놀랄 일은 아니다. 놀라운 점은 일본의 성장률이 한국의 그것을 앞질렀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2분기 GDP 성장률은 0.6%에 그쳤다. 일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생산과 소비, 투자 등 모든 면에서 위축된 결과로 풀이된다. 

일본의 성장률은 이미 1분기에 한국을 앞섰다. 1분기 일본은 0.9% 성장한 반면 한국은 0.3% 성장에 그쳤다. 이 같은 기조가 이어진다면 연간 기준 한국의 성장률은 일본에 크게 뒤처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성장률을 일본과 같은 1.4%로 내다봤는데 이 예상이 깨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의 성장률이 일본보다 낮은 때는 25년 전인 1998년이다. 이 때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상태였다. 한국의 성장률은 그해 -5.1%였고 일본은 -1.3%였다. 한국의 성장률이 일본보다 낮은 유일한 해였다. 

IMF는 지난해 4월엔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2.9%까지 내다봤지만 이후 2.1%→2.0%→1.7%→1.5%→1.4% 등 5번 연속 낮췄다. 

일본의 놀라운 성장 뒤에는 '엔저'가 자리잡고 있다. 니혼게이자이 등 리본 매체 보도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은 현재 달러당 145엔대 후반, 유로엔 환율은 유로당 158엔 대 수준이다. 이 같은 엔저 덕분에 가격 경쟁력이 살아난 자동차 등 주력 품목 수출이 늘어났다. 여기에 엔화가 쌀 때 일본을 방문하려는 해외 관광객이 밀물처럼 밀려들면서 경제에 활기가 넘치고 있는 게 요즘 일본 경제의 생생산 현실이다.  

일본의 2분기 GDP 증가는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 주요 경제 매체들이 전문가 설문을 통해 취합한 예상치(전년 동기 대비 3.1%)의 2배에 이른다. 코로나 침체 후 기저효과로 반짝 반등한 2020년 4분기(전년 동기 대비 7.9%) 이후 2년 반 만에 기록한 최고 성장세다.

경제 성장을 이끈 일등 공신은 수출이었다. 수출은 전 분기보다 3.2% 증가하면서 성장률을 1.8%포인트 끌어올렸다. 수출을 제외한 다른 요인들은 성장률을 갉아먹었는데, 수출이 나 홀로 성장을 견인했다. 일본자동차공업회에 따르면 2분기 자동차 수출이 총 107만여 대로 지난해보다 29% 급증했다. 특히 북미로의 수출이 32% 늘어나며 달러 대비 크게 낮아진 엔화 가치 효과를 증명했다.

밀려든 외국인 관광객들의 소비도 성장률을 끌어올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한국 관광객들의 역할이 컸다. 일본정부관광국(JNTO)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6월까지  상반기 동안 일본을 방문한 관광객은 총 1072만여 명인데 이중 한국인이 313만명으로 전체의 29.2%를 차지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상반기 한국 관광객은 전체 일본 관광객 중 23.2% 수준이었지만, 중국 단체 관광객이 줄어든 빈자리를 한국인들이 메우면서 한국이 일본 여행객 1위 국가가 됐다.

올해는 엔화 환율이 100엔당 평균 900엔 대를 기록하는 등 엔화 가치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한국인들은 북부의 홋카이도는 물론, 중부의 도쿄, 나고야까지 일본 전역을 누비고 다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일본 성장률이 1.4%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반기 성장률이 2분기보다 낮아진다는 뜻이다. 고속성장세가 지속되기는 힘들다고 본 것이다. 

민간 소비에 크게 의존하는 일본 경제가 물가 상승에 발목에 잡힐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외식과 숙박  서비스 분야에서 소비가 늘었지만, 물가상승으로 실질 임금이 줄어들면서 식품과 가전제품 소비가 위축됐다.  6월 일본 근로자 임금상승률은 2.3%로 5월(2.9%)에 비해 상승률이 낮다. 물가를 반영한 실질 임금상승률은 1.6%에 그쳤다.

실질임금이 높아져야 일본인들의 구매력이 커지고 더 많은 소비가 일어나 장기 디플레에서 완전히 탈출할 수 있는 것은 두말이 필요없다. 미국이 고금리를 지속하는 반면 일본은 여전히 양적 완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5.25~5.50%인 반면, 일본의 금리는 제로금리 수준이다. 이러니 달러화에 대한 일본 엔화 가치는  하락 일로다.

통화정책 정상화라는 절체절명의 숙제를 풀어야 하는 우에다 가즈오 일본 중앙은행 일본은행 총재가 19일 강연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아시아파이낸셜
통화정책 정상화라는 절체절명의 숙제를 풀어야 하는 우에다 가즈오 일본 중앙은행 일본은행 총재가 19일 강연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아시아파이낸셜

엔저는 일본 상품의 수출 가격 경쟁력을 높이지만 수입 상품 가격을 올려 수입물가를 자극하고 국내 소비자물가를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물가의 지속 상승)은 일본 경제의 고질인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기 위한 방안으로 간주된다. 그렇더라도 일본의 경제주체인 소비자,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 이내여야 하지 않을까?

경제를 살리기 위한 '엔저'가 경제의 목을 위협하는 양날의 칼로 보이는 지점이다.현재의 엔저가 지속되는 한 일본 정부가 바라는 '지속 가능한 인플레이션'은 달성하기가 요원한 목표라는 생각이 든다. 통화정책을 정사화하지 않는 이상 저성장으로 잃어버린 30년을 보낸 일본 국민이 고물가에 또 30년을 보내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하겠는가?

박태정 기자 tt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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