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평기금 활용보다 허리띠 졸라매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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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평기금 활용보다 허리띠 졸라매는 게 먼저다
  • 박태정 기자
  • 승인 2023.09.23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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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나 한 세제 전문가는 윤석열 정부를 칭찬했다. 세수가 둘어드는 데도 적자 재정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고했다. 문재인 정부 동안 퍼주기식 정책으로 국가부채가 급증한 터라 그의 말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세수부족을 메우기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을 활용하겠다는 정부 방침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미국의 금리정책과 환율 변화, 우리의 외환보유액 수준 등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정부가 올해 59조 원에 이르는 세수결손을 메우기 위해 20조 원 규모인 외국환평형기금을 활용할 방침이다.시장에 달러를 팔고 받는 원화는 외평기금에 쌓인다. 결국 외환보유액을 헐어서 세수결손을 메우는 꼴이 된다. 미국 달러 지폐. 사진=CNews DB
정부가 올해 59조 원에 이르는 세수결손을 메우기 위해 20조 원 규모인 외국환평형기금을 활용할 방침이다.시장에 달러를 팔고 받는 원화는 외평기금에 쌓인다. 결국 외환보유액을 헐어서 세수결손을 메우는 꼴이 된다. 미국 달러 지폐. 사진=CNews DB

기획재정부는 지난 18일 올해 세수 추계를 발표했다. 기재부가 발표한 '2023년 세수 재추계 결과 및 재정 대응방향’에 따르면, 올해 국세수입은 기존 세입예산안 전망치 400조5000억 원에서 341조4000억 원으로 59조1000억 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쉽게 말하면 올해 국세가 당초 예산보다 59조 원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라고 한다. 기재부는 주요 기업의 실적 악화와 국내 자산시장 위축으로 법인세와 양도소득세수가 크게 줄어든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법인세가 예산(105조원)보다 25조4000억 원 줄어든 79조6000억 원 걷힐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세수펑크의 40%를 훌쩍 웃돈다. 

기재부는 부족한 세입을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을 등 기금 여유재원과 지난해 예산을 집행하고 남은 돈인 세계(歲計) 잉여금, 편성한 예산을 쓰지 않는 불용(不用) 등을 총동원해 메우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세수 결손을 메운 과거 정부와는 다른 모습이다.  

내국세의 40%가량을 지방교부세·지방교육재정교부금 명목으로 지방에 이전하는 법규정에 따라 세수부족 59조 원 가운데 약 23조 원은 지방부담이 된다.  나머지 36조 원이 중앙정부 부담이다. 정부는 이를 4조원 안팎의 잉여금, 약 24조원 기금 여유재원, 통상 10조원 안팎의 불용예산을 활용해 메꾸겠다는 방침이다. 여유자금을 활용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나무랄 이유가 없다.

걱정스런 대목은 20조원가량의 외국환평형기금을 활용하겠다는 점이다. 고공행진하고 있는 환율 방어를 위해 달러를 팔았다.달러를 팔아 원화로 바꾼 자금은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에 쌓인다. 이 원화를 돈을 빌려온 공공자금관리기금에 조기 상환해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게 기재부의 복안이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미국 중앙은행이 지난해 3월부터 물가억제를 위해 고강도 긴축에 나서 기준금리를 연 5.5%까지 올린 결과 달러가치는 치솟은 반면, 우리나라는 가계 부채 문제를 우려해 올 들어 연 3.5% 수준에서 계속 금리를 동결하면서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사상 최대인 2%포인트로 벌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말 1190원대 수준인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9월엔 1445원까지 치솟았다. 외환 당국은 환율 급등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장에 외환보유액에서 달러를 팔았다. 시장 개입용 달러 순매도액이 지난해 1분기 83억 달러, 2분기 154억 달러, 3분기 175억 달러, 4분기 46억 달러로 총 매도액이 458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외환보유액이 지난해 한 해 400억 달러나 줄었다. 연간으로 외환보유액이 감소한 것은 외환 위기(1997년), 글로벌 금융 위기(2008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8월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183억 달러로 석달 만에 감소했다. 외환 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달러를 사용한 것으로도 보인다. 한은에 따르면 8월 평균 원달러 환율은 1321.8원으로 7월(1274.6원) 대비 47.2원 올랐다. 환율안정을 위해 시장에 달러를 팔았다는 뜻이다. 

정부는 국가 부채를 늘리는 적자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세수 구멍을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손쉽게 외평기금을 택했을 수 있다.  그러나 외환보유액이 한국 경제에 갖는 의미를 안다면 손쉬운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 외환보유액 부족으로 금융위기를 맞지 않았는가?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방파제 역할을 하는 외평기금에 손을 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게다가 외평기금 20조 원이 정말 꼭 필요한 곳에 쓰인다고 장담할 수 없다. 국민의 인기를 얻기 위한 곳에 푸는 돈부터 줄이는 게 순서 아닌가.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적절하다'고 판단할 경우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릴 것이라고 공언해놓았다. 한미간 금리 역전폭이 더 커지면 원달러 환율은 더 뛸 수 있다.현재의 외환보유액만으로 환율 방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외환보유액이 줄어들면 국가 신인도도 떨어지는 등 온갖 악재가 한꺼번에 몰라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모를리 없다고 본다. 그런데도 정부가 손쉬운 외평기금을 손대려는 것은 국민의 인기를 얻기 위해 푸는 돈을 줄이기가 겁나고 허리 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게 더 겁나기 때문 아닐까. .쓰고 남은 돈을 활용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겠다고 맘을 먹었다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게 정공법이다.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게 가장 먼저해야 할 일이다.

박태정 기자 ttch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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