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불임수술을 위해 전투를 벌인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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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불임수술을 위해 전투를 벌인 여성
  • 에스델 리 기자
  • 승인 2020.03.0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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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선 영구불임 수술을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출산을 원하지 않아도 의료진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의 정관수술을 쉽게 허락해주면서 여성의 난관수술은 까다롭게 처리하는 것은 남녀 차별이라는 주장도 있고 의료상 굉장히 까다로운 수술이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다. 

몬트리올의 일간지 주르날 드 몽레알(Le Journal de Montréal)은 2년에 걸친 끈질긴 투쟁 끝에 28세에 난관결찰술, 즉 나팔관을 묶는 영구 불임수술을 받은 어느 여성의 사연을 소개했다.

영국 불임수술 받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빠트리시아 벨랑제. 사진=주르날드몽레알
영국 불임수술 받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빠트리시아 벨랑제. 사진=주르날드몽레알

보도에 따르면, 빠트리시아 벨랑졔(Patricia Bélanger)는 불임 수술을 받으려고 십자군 전쟁에 버금가는 투쟁을 벌였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고, 지구의 미래를 위해서는 출산을 제한해야 한다고 믿는 그녀였지만, 의료진을 설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올해 30세가 된 빠트리시아는 2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2016년 9월, 의사를 찾아가 나팔관을 묶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가 '가서 발 닦고 주무시라'는 말을 들었다. 

게다가 그 의사는 기어이 수술을 받고 싶으면 배우자를 데려오라고 요구했다. 현재 퀘벡 주 의사회는 누구나 자기 신체에 대한 자율권, 자주권을 지닌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불임 수술 받으려면 배우자를 데려오라' 식의 얘기는 이제 옛말이 됐다.

어쨌든 6개월을 기다린 끝에 빠트리시아는 배우자와 함께 다시 그 의사를 찾았다.  가벼운 실어증을 앓는 다니 꾸르뜨망슈(Dany Courtemanche, 당시 31세)는 아이에게 '정확하고 올바른 낱말을 선택해 가르치는 데' 큰 부담을 느끼던 터라 빠트리시아의 불임 수술에 당연히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의사는 두 사람에게 정신과 상담을 요구했다.  2017년 7월, 빠트리시아는 정신과 의사를 만나면서 그저 아이 낳기를 원하지 않는 자기가 마치 심각한 정신질환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한 달 후, 정신과 의사의 상담보고서를 받은 가정의가 인근 병원에 수술 의뢰서를 보냈고, 6개월을 기다린 끝에 2018년 2월, 수술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수술을 집도할 산부인과 의사와의 면담은 그 이전의 어떤 대화보다 힘들었다.  자손 번식의 욕구는 환경보호 의지보다 훨씬 뿌리깊고 원초적이므로 앞으로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라는 의사의 논리는 치밀하고도 강력했다. 

그러나 빠트리시아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2018년 5월 11일, 빠트리시아는 2년 여에 걸친 투쟁 끝에 마침내 영구 불임수술을 받았다.

현재 리비에르-루쥬 병원(l’hôpital de Rivière-Rouge) 간호 조무사로 일하는 빠트리시아는 생활 쓰레기와 탄소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차도 전기차를 타고, 개인 위생용품도 직접 만들어 쓸 뿐 아니라 사는 집  또한 재활용 자재만으로 지었다.  

양성애자(Bisexual)라고 밝힌 그녀는 동성애인과 여러 번 동거생활을 했는데, 동성애인들이 자신을 떠나간 이유가 하나 같이 아이를 낳고 싶은 욕망이었다고 덧붙였다.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면서부터 항상 피임 걱정에 시달리던 빠트리시아는 영구 불임수술 덕분에 마음의 평안도 얻고, 아이를 낳지 않으니 지구 생태계에 끼치는 피해도 줄일 수 있게 됐다고 만족해 한다.

라발대학교 여성 보건의료 교육지도자회의 공동의장인 마띠외 르뵈프(Mathieu Leboeuf) 박사는 남성의 정관수술을 쉽게 허락해주면서 여성의 난관수술은 까다롭게 처리한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이는 남녀차별의 문제가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정관수술은 비교적 간단한 '시술'인 반면 난관결찰술은 훨씬 복잡한 '수술'인 데다 나중에 다시 아기를 갖고자 묶은 나팔관을 푸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지극히 어렵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 그간의 통계를 보면 30세 이후에 난관결찰술을 받은 여성보다 30세 이전에 수술받은 여성이 후회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고 르뵈프 박사는 덧붙였다.  

몬트리올(캐나다)=에스델 리 기자 esdelkh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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