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 9000원 넘은 사과에 붙인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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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 9000원 넘은 사과에 붙인 명상
  • 이수영 기자
  • 승인 2024.03.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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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앞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증권가와 이웃한 H 백화점 지하 1층 과일 코너.'금사과'라는 말이 나돌 만큼 비싸진 사과 등 과일 값이 물가상승을 주도 한다는 확인했다.  

서울 여의도 H백화점 과일 코너에 진열된 4개 3700원 가격표가 붙은 사과. 사진=이수영 기자
서울 여의도 H백화점 과일 코너에 진열된 4개 3700원 가격표가 붙은 사과. 사진=이수영 기자

과일 코너에 붙은 가격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탄소 사과 국내산' 1개에 5500원이라고 적혀있었다. 더 비싼 것과 더 저렴한 것도 있었다. 저탄소의성사과는 6개가 2만 원이었고 저탄소 청송사과는 4개가 무려 3만7000원이었다.  

다른 과일값도 비싸기는 마찬 가지였다. 저탄소 신고배 한 개는 20% 할인한 값이 1만 원이었다. 유기농 배는 한 개가 9000원이었다. 국내산 천혜향 한 개가 7000원이었다.

6개 2만 원짜리 저탄소 사과. 사진=이수영 기자
6개 2만 원짜리 저탄소 사과. 사진=이수영 기자

이날 확인한 과일값은 백화점 가격이어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농수산물유통공사(AT)에 올라온 가격도 1년 전과 비교하면 꽤 높다는 점에서 과일 값 상승은 '하나의 사실'로 봐도 틀림없어 보인다.

AT가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8일 '후지' 사과 일반 소비용 중품 가격은 10개가 평균 2만30007원으로나타났다. 최고값은 3만4500원, 최저값은 1만7680원이었다. 1년 전 평균가격은 1만6429원, 평년 가격은 1만7549원이었다.

최고값도 1년 전에는 2만 원, 평년에는 2만3875원이었다. 최고값만 보더라도 1년 전에 비해 1.7배가 올랐다, 평균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40.2%, 평년에 비해 31.2% 상승했다.

 '신고' 배도 같은날 10개 평균 가격이 4만2793원, 최고값은 6만9000원으로 조사됐다. 평균 가격은 1년 전 2만7479원, 평균 3만6941원이었다.  1년 전에 비해 55.7%, 평년에 비해 15.8% 오른 것이다. 

최고값은 10개가 6만9900원으로 1년전 4만1385원, 평년 5만333원에 껑충 올랐다. 

설명절이 낀 지난달 과일값이 많이 올랐는데 그 오름세가 이달에도 계속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았다. 

통계청이 6일 내놓은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2월 과일값은 1년 전에 비해 38.3% 올랐다. 1991년 9월(43.3%) 이후 32년 5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사과는 1년 전에 비해 71% 올랐고 귤은 78.1%, 배는 61.1%, 복숭아는 63.2% 뛰었다. 

소비자물가 조사 대상에 포함되는 과일 품목 20개 가운데 상승률이 10%가 넘는 품목이 11개에 이르렀다. 3월 소비자물가가 3.1% 뛰는 데 과일값 상승이 상당한 기여를 했음은 두말이 필요없다. 

한개 5500원인 사과와 7000원인 천혜향. 사진=이수영 기자 
한개 5500원인 사과와 7000원인 천혜향. 사진=이수영 기자 

과일값이 이처럼 급등한 것은 농가 고령화 등으로 재배면적 자체가 줄어드는 가운데 이상기후로 생산량이 감소한 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사과는 경북 안동과 청송과 영주, 의성, 경남 거창 등지에서 주로 생산된다.

농가 일손이 부족해지고 인건비 부담이 증가하면서 생산량이 준 탓에 사과와 배값이 오르고 있는데 일손부족과 인건비 부담이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과일 값은 계속 오를 가능성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사과 생산량은 연평균 50만9000t이었는데, 지난해에는 77.4% 수준인 39만4000t에 그쳤다. 전년과 견줘 사과 생산량은 30%, 배는 27% 감소했다. 지난해 생산량은 농촌경제연구원이 12월에 추정한 42만5400t보다 적은 것이다. 

사과는 2033년까지 재배면적이 연평균 1%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까다로운 검역 절차로 수입도 사실상 봉쇄돼  값이 뛸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사과 재배면적이 올해 3만3800ha에서 2033년 3만900ha로 8.6%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앞으로 9년 동안 축구장 4061개 면적에 이르는 사과밭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사과 생산량은 올해 50만2000t에서 2033년 48만5000t 안팎까지 감소할 것으로 농촌경제연구원은 예상하고 있지만 지난해 생산량이 40만t을 밑돈 만큼 실제 생산량은 이보다 더 적을 공산이 커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과일 수입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사과와 배는 병해충의 유입을 막기 위해 복잡한 검역 과정을 거쳐야 하고 농가의 강한 반발을 우려한 정부의 뜨뜻미지근한 태도로 수입이 제한돼 있다.

정부는 과일값 안정을 위해 대체 과일 수입을 늘리고 농축수산물 할인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정부는 600억 원을 지원해 사과, 배 가격을 최대 절반까지 할인해주고 수입 과일 관세도 깎아주기로 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참외가 본격 출하되는 4월까지 소비자가격이 높은 과일과 채소를 중심으로 전방위 대책을 추진해 국민 체감물가를 낮추겠다"고 밝혔다.

aT가 오렌지, 바나나를 직수입해 저렴한 가격으로 시중에 공급하고 만다린, 두리안, 파인애플주스 등에 대해서는 추가로 관세를 인하할 계획이다. 또 4월까지 204억 원을 투입해 사과 등 13개 품목의 납품단가 인하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의 이런 정책들이 효험을 발휘하면 좋겠지만 '미봉책'에 그칠 공산이 크다. 소비자들이 사과와 배 대신 만다린과 두리안을 애써 먹으려 들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설과 추석 등 과일 수요가 집중하는 시기에 소비자들이 사과와 배 대신 외국산 대체과일을 찾을 지는미지수다.

이수영 기자 isuyeong20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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