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푸드뱅크에 손 벌려... 자존심이 무너진 캐나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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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푸드뱅크에 손 벌려... 자존심이 무너진 캐나다 사람들
  • 에스델 리 기자
  • 승인 2020.04.23 0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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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주 인구의 11% 80만 명이 푸드 뱅크 의존

캐나다 퀘벡 주 전역에서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확산에 따른 경제활동 중단으로 실직한 이후 끼니를 잇기 위해 푸드뱅크를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난생 처음으로 푸드뱅크를 이용한 사람도 생겨 퀘벡주 인구의 약 11%인 80만 명이 세끼를 푸드뱅크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진국 캐나다인들의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했다. 경기악화로 음식물 수요가 곧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경기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게 큰 문제다.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시에서 푸드뱅크 시설에서 음식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주르날드몽레알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시에서 푸드뱅크 시설에서 음식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주르날드몽레알

 

23일 몬트리올의 일간지 주르날 드 몽레알(Le Journal de Montréal)에 따르면, 푸드뱅크 이용자는 최근 두 배 가까이 폭증해 매주 8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6일(현지 시각) 퀘벡 주의 주도(州都)인 퀘벡 시 리무왈루(Limoilou) 구에 있는 구호기관 라 부셰 제네뢰즈(La Bouchée généreuse: '한 입 크게') 앞에는 긴긴 줄이 이어졌다.  COVID-19 때문에 배를 곯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줄지어 선 수십 명 중에는 난생 처음 푸드뱅크를 찾았다는 이들이 드물지 않았다.

윌리 알시스(Willy Alcis)와 로리안나 플로리안(Laurianna Florian) 부부는 구호기관에 먹을 것을 얻으러 갈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른 도리가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둘 다 일자리를 잃자 푸드뱅크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알시스 씨는 세 아이를 먹여야 하는 데다 아파트 임대료, 자동차 할부금, 이런저런 공과금도 밀렸고, 실업수당을 신청했지만, 아직 회신을 못 받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몬트리올의 푸드뱅크 관계자들은 이용객 중에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일례로 에드가 오마르 에레라(Edgar Omar Herrera)는 2주일 전까지 신발가게 점원으로 일하다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단돈 7달러로 한 바구니 가득 먹을 것을 살 수 있는 몬트리올 빌르레(Villeray) 구의 '착한 사마리아인' 식료품점에 처음 왔다면서 이런 구호단체가 없으면 버티기가 훨씬 어려울 것이라고 털어놨다. 

아훈스띡-꺄르띠에빌르(Ahuntsic-Cartierville)에 자리 잡은 아르메니아 제일복음교회(la Première église évangélique arménienne)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여기서는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고자 자원봉사들이 식료품을 직접 이용객의 자동차 짐칸에 실어주고 있었다.

에브 쥐뱅빌르(Eve Jubinville)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식료품 구호단체에 손을 벌렸다고 밝혔다. 최근까지 통학버스 운전사로 일했다는 그녀는 그래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불안하고, 현재로서는 일자리도 없지만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힘을 얻는다면서 앞으로 자기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돕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퀘벡 주 푸드뱅크(Banques Alimentaires du Québec) 관계자는 음식물 수요가 곧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끌로디아 갸스똥게(Claudia Gastonguay) 씨는 원래 주간 이용자가 45만 명 수준이었는데 최근에 크게 늘어 지금은 주간 이용자가 80만 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9월 1일 조사 당시 퀘벡 주 인구가 848만 명이었으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퀘벡 주민의 10.6%가 매주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해 구호단체에 손을 벌린다는 얘기다.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언론이 신규확진자 숫자가 하루 스무 명 안팎으로 뚝 떨어진 외에 총선까지 훌륭히 치러낸 대한민국에 대해 놀라움과 찬사를 아끼지 않는데도 퀘벡 주 언론에는 대한민국에 관한 뉴스는 전혀 없다.  

대한민국의 성공을 전하기에는 하루가 무섭게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어나고 주민 열 명 중 한 명이 끼니를 제대로 못 잇는 퀘벡 주의 상황이 너무 참담한 탓에, 자존심에 너무 큰 상처가 날까 두려운 까닭이 아닐까?

몬트리올(캐나다)=에스델 리 기자 esdelkh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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